2002년 22세 다방 여종업원 손발 묶인 시신으로 바다에서 발견
경찰 재수사, 피해자 예금 인출하는 CCTV 찾아내 용의자 특정
1.2심 무기징역... 대법원 "살인 직접증거 없다" 파기환송 '무죄'

[법률방송뉴스] 2002년 발생한 ‘부산 태양다방 여종업원 강도살인’ 피고인에 대해 무죄가 최종 확정됐습니다. ‘판결로 보는 세상’입니다.

월드컵 개막전이 열렸던 지난 2002년 5월 31일 부산 강서구의 한 제방 바다에서 손발이 묶인 상태로 마대 자루에 담긴 당시 22살이던 다방 종업원 A씨의 시신이 발견됩니다.

주변 진술과 부검을 해보니 퇴근하던 길에 납치돼 시신 발견 9일 전에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됐지만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사건은 십여년간 미궁에 빠졌습니다.

그러던 2015년 살인사건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일명 ‘태완이법’이 통과되자 재수사에 나선 경찰은 2017년 숨진 A씨의 적금을 해지하고 통장에 있는 돈을 인출하는 CCTV를 찾아내 48살 양모씨를 용의자로 특정해 재판에 넘겼습니다.

경찰은 CCTV 외에도 당시 양씨 동거녀로부터 “물컹한 물건을 마대자루에 담아 자동차 트렁크게 실었다”는 진술도 확보했습니다.

1.2심은 양씨의 강도살인을 유죄로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대법원은 하지만 “중대범죄에서 유죄를 인정하는 데 한 치의 의혹도 있어서는 안 된다‘며 재판을 다시 하라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에 부산고법은 양씨의 동거녀가 경찰 최초 조사에서 애초 마대 자루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가 이후 양씨와 마대 자루를 들고 옮겼다고 진술을 번복한 점 등을 들어 양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진술 변경이 경찰관의 암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의문이다. 마대 자루를 옮긴 이후 구체적 상황을 진술하지 못하는 것도 증거 가치가 제한적이고 수사기관의 정보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자신의 기억으로 재구성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습니다.

재판부는 양씨가 숨진 피해자의 통장에 있는 돈을 인출한데 대해서도 “피해자가 수첩 등에 비밀번호를 기재해놨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며 “특히 범행 20일이 지난 시점에서 자칫 검거돼 살인 혐의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적금을 해지한 것도 의문”이라고 판시했습니다.

1.2심에서 유죄 증거로 인정된 양씨가 ‘살인 공소시효 폐지’를 검색한 사실도 그 자체론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직접증거가 존재하는 경우에 버금갈 정도의 증명력을 가지는 간접증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인정된 간접증거를 관련지어 보더라도 유죄 증명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 판단입니다.

대법원 무죄 취지 파기환송의 귀속력에 따른 판결입니다.

검찰은 이에 불복해 간접증거의 증거능력에 대한 판단을 다시 받아보겠다며 대법원에 상고 했지만 대법원은 오늘 무죄를 확정한 원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습니다.

"원심이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것은 대법원 환송판결의 취지에 따른 것으로 정당하다. 원심 판단이 검찰 상고 주장처럼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거나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결입니다.

대법원 파기환송 취지에 따라 양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부산고법은 ‘피해자를 폭행·협박·고문해 예금 비밀번호를 알아냈을 것으로 추론이 가능하다“며 ”2002년 피해자 적금 인출 당시 피고인을 검거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경찰이 양씨 동거녀의 진술을 녹화하지 않는 등 진술이 바뀐 경위를 파악할 수 있는 근거를 남기지 않은 것도 아쉬운 점으로 지적했습니다.

22살 다방종업원의 죽음, 그 살인범 ‘진범’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판결로 보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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