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유족, 손배소 부분승소에 '다른 병원 진료기록부'가 결정적 역할 의료사고 원고 승소율 30%도 안돼... "진료기록부 관련 법도 정비해야"

 

 

[유재광 앵커] 의료사고로 사망한 가수 고 신해철 씨의 유족이 병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는 판결 내용, 어제 전해드렸는데요. 사안의 이면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이슈 플러스’, 오늘은 이 의료소송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어제 고 신해철 씨 관련 판결을 보도한 장한지 기자가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장한지 기자, 우선 고 신해철 씨 의료사고 사망 사건 경위부터 좀 간략하게 말씀해 주시죠.

[기자] 네, 신해철 씨는 지난 2014년 10월 복통을 일으켜 병원을 찾았는데, 이 병원 원장 강모씨는 장 협착 수술로 복통 원인을 제거했습니다. 문제는 다른 수술을 하나 더 했다는 겁니다.

[앵커] 다른 수술이요.

[기자] 네, 흔히 ‘비만 수술’ 이라고 하죠, 신씨에게 위 축소 수술을 시술한 겁니다.

[앵커] 아니, 배 아파서 갔으면 배 아픈 거만 낫게 하면 되지, 비만 수술은 왜 한 건가요.

[기자] 이게 강 전 원장 답변이 또 참 ‘걸작’입니다. 신해철 씨가 평소 ‘비만’에 관심이 많아 ‘보너스’로 수술을 해줬다는 게 당시 강 전 원장의 답변이었습니다.

[앵커] 보너스요?

[기자] 네.

[앵커] 아니, 수술이 무슨 원 플러스 원 행사도 아니고 보너스라니.

[기자] 네, 참 그렇긴 한데 아무든 이 비만 수술 이후 신씨는 복막염 증상 등을 보이며 극도의 고통을 호소하다 사흘 뒤에 숨졌습니다.

검찰은 강 전 원장을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했고, 지난해 11월 1심은 강 전 원장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를 유죄로 인정해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앵커] 업무상 과실치사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판결 사유, 그러니까 뭐를 근거로 유죄 판결이 내려졌나요.

[기자] 네, 진료기록부라는 게 있는데요. 진료기록부는 병원에서 특정 환자에 대해 진료의 개시부터 완결까지 의사가 환자에게 행한 의료행위, 환자의 상태, 경과 등을 기록한, 한마디로 ‘환자 치료 일기’ 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런데 고 신해철 씨에 대한 진료기록부가 어떻게 돼 있기에 법원이 강 전 원장의 의료상 과실을 인정한 건가요.

[기자] 네, 사건 당시 강 전 원장은 신씨에 대한 진료 기록을 인터넷에 공개했는데요. 강 전 원장이 스스로 신씨 진료 기록을 공개한 이유는 자명합니다.

‘나는 적절한 조치를 다 취했고, 신씨의 죽음은 그 어떤 돌발적인 사태로 인한, 한마디로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었다’ 뭐 이렇게 주장하기 위해서인데요.

[앵커] 그렇겠죠. ‘내가 잘못해서 신해철 씨가 죽었다’ 뭐 그런 내용의 진료 기록을 인터넷에 올리진 않았겠죠. 그런데 어떻게 해서, 어떤 경위로 법원이 강 전 원장의 주장을 배격하고 유죄를 선고한 건가요.

[기자] 네, 신해철 씨 유족 입장에선 천만다행으로 ‘다른’ 진료기록부가 있었습니다.

[앵커] 다른 진료기록부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신해철 씨는 사망 전에 강 전 원장 병원에서 서울아산병원으로 이송됐는데요. 이 아산병원에서 작성한 진료기록부가 결정적 증거가 됐습니다.

[앵커] 어떤 내용이기에 결정적 증거가 됐나요.

[기자] 네, 강 전 원장이 작성한 진료기록부는 비만수술을 ‘위 성형수술’ 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강 전 원장은 이 수술을 위를 강화시켜주는, 그러니까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수술이다, 이렇게 주장했는데요.

아산병원 진료기록부에는 이 수술을 위 축소 시술, 즉 비만수술이라고 적시하면서 강 전 원장이 행한 수술로 인한 여러 부작용을 기재하고 있습니다. 고 신해철 씨 유족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박호균 변호사 말을 한번 들어보시죠.

[박호균 변호사 / 故신해철 측 변호사]

“아산병원 자료는 중요한 자료죠. 왜냐하면 그분들은 제3자니까. 제3자니까 본인들이 보고 수술한 부분을 객관적으로 기록을 해 놓는 것이죠. 사진도 찍어놓고 실제 수술하면서 받던 것을 수술기록지에 기록도 해놓고, 그래서 천공이 있다는 것도 확인을 했었고, 실제 육안으로도. 그렇죠 아산병원 자료는 중요한 자료죠.”

[기자] 법원은 이 아산병원 진료기록부와 신해철 씨 부검 기록, 이에 대한 의사들의 판단을 토대로 강 전 원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앵커] 아산병원 진료기록부가 없었다면 강 전 원장의 유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았겠어요.

[기자] 네, 말씀하신 대로 아산병원 진료기록부가 유죄 입증의 결정적 증거가 됐는데요. 거꾸로 보면 그게 의료사고 소송의 허점이자 맹점이 되기도 합니다.

[앵커] 그게 무슨 말인가요.

[기자] ‘내가 실수로, 내가 잘못해서 환자가 죽었다’ 이런 식으로 진료기록부를 작성하는 의사는 아마 단 한 명도 없을 겁니다. 특히 환자가 사망했을 경우, 의료 소송이 예상되는 경우 같은 증상, 같은 경과라 해도 어떤 식으로든 의사 자신의 책임을 피할 수 있도록 진료기록부를 작성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앵커] 그렇겠지요 아마.

[기자] 그런데 문제는 이 진료기록부가 의료사고 소송에서 결정적이고도 거의 유일한 증거 자료로 쓰인다는 점입니다. 즉 재판의 당사자인 의사가 작성한 진료기록부를 가지고 해당 의사의 과실 등을 입증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재판정에서 벌어지는 겁니다.

[앵커] 듣고보니 그렇네요. 의료사고 소송 통계 같은 게 있나요.

[기자] 네, 손해배상 청구 민사소송 통계가 있는데요.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16년 사법연감’을 보면요. 2015년도 의료사고 손배소송 1심 판결이 내려진 963건 가운데 일부 승소를 포함,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진 경우는 274건입니다. 비율로 보면 28%, 원고가 이긴 건 10건 중 3건이 채 안됩니다.

[앵커] 10건 중 3건 이면 아주 낮다고는 할 수 없는 거 아닌가요.

[기자] 이게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데요. 원고 승소 판결 거의 모두가 ‘일부 승소’입니다. ‘전부 승소’는 단 3건에 불과합니다.

요약하면,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선 의사가 무죄를 선고받는 경우가 많고, 지엽적이고 부차적인 부분에서 유죄를 선고받는 경우가 많다는, 피해자 입장에선 만족할 만한 결과를 거두기가 하늘의 별따기와 비슷하다는 얘기입니다.

[앵커] 그렇군요. 하긴 개인이 의사와 병원을 상대로 의료사고 소송까지 낼 정도면 정말 억울해서 낸 경우일 텐데, 의료분쟁이 터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러면.

[기자] 네, 지난 월요일 대한변협 주최로 관련 세미나가 열렸는데요. 의료 분쟁이나 소송 가능성이 있으면 일단 무조건 기존 작성된 진료기록부부터 확보하라는 것이 변호사들의 조언입니다.

작성을 안했으면 왜 작성을 안했냐고 따지고, 혹시 있을지 모를 위조나 변조 전에 진료기록부를 반드시 입수하고, 관련된 내용은 다 녹취를 하거나 사진을 찍는 등 이른바 ‘물증’을 확보해야 한다는 겁니다. 주제 발표를 한 김성주 변호사의 얘기를 들어보시죠.

[김성주 변호사 / 의료법률사무소]

“개인 병원 같은 경우는 진료기록을 발급을 안 해주려고 하더라고요. 병원장의 허가가 필요한다거나, 왜 필요하다고 따져 묻는다거나.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발급을 해줘야 되는 의무가 있기 때문에 / 일단 무엇보다 진료기록을 확보해야지 가장 중요한 증거, 의료사건은 진료기록을 가지고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감정을 해서 판단도 하기 때문에...”

[앵커] 그런 것과 별개로, 기본적으로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점은 없을까요.

[기자] 네, 앞서 말씀드렸는데 현행 의료법엔 진료기록부에 작성 시기를 기재해야 한다고만 돼 있을 뿐, 언제까지 작성해야 한다는 시한 같은 건 없습니다.

의사 입장에선 치료가 제대로 안되거나, ‘어 이거 뭐 잘못되는거 아니냐’ 하는 감이나 느낌이 들 경우 아무래도 진료기록부를 허위까진 아니어도 부실하게 작성할 유혹과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얘기입니다.

일단 이 부분부터, 이 부분이라도 관련법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지만 특별한 진전은 없는 상태입니다.

[앵커] 그렇군요. 의사단체들의 힘이 세서 그런 건지 국회의원들이 주변에 의료소송에 휘말린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긴 이뤄져야 할 필요성은 있어 보입니다. 잘 들었습니다. ‘이슈 플러스’ 장한지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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