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 트레일러 운전자, 부산 거가대교에서 난동
출동 경찰차 들이받고 도주... 다리 5시간 마비
법원 "국가 중요시설 마비" 징역3년 실형 선고
"절망은 제 얼굴을 안 보려고 술에 머리를 처박는다"

[법률방송뉴스] 술에 만취해 트레일러를 운전하며 난동을 부려 부산과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교를 5시간이나 마비시킨 50대 운전기사에 대해 1심 법원이 오늘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판결로 보는 세상’ 오늘(2일)은 자포자기 얘기해 보겠습니다.

최승호 시인의 ‘죽어봤자 고깃덩어리’라는 얼마간 섬뜩함과 절망이 느껴지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내용 일부는 이렇습니다.  

삼겹살집으로 멧돼지가 돌진했다/대담한 놈이다/절망한 놈이다/더 이상 잃을 게 없는 놈이다/잃어봤자/삼겹살 정도?

지난해 7월 펴낸 ‘방부제가 썩는 나라’라는 제목의 시집에 수록된 시로 부패하고 뻔뻔한 현실과 그 부조리 속에서 좌절하고 무너지는 사람들의 절망과 허무를 그린 시집입니다.

‘삼겹살집으로 멧돼지가 돌진했다. 대담한 놈이다. 절망한 놈이다’는 시 구절을 딱 연상시키는 사건이 지난해 9월 침매터널 포함 총 연장 길이 8.2km 부산 거가대교에서 벌어졌습니다.    

화물차 운전기사 58살 A씨는 지난해 9월 10일 오후 11시 36분쯤 부산과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교에서 트레일러를 몰고 가다 터널 벽면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습니다.

사고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준을 상회하는 0.119% 만취 상태.

A씨는 하지만 차량에서 내릴 것을 요구하는 순찰 요원과 순찰차를 들이받는가 하면 출동한 경찰 지시에도 불응하고 경찰차를 또 세게 들이받고는 거제도 방면으로 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벌어진 일은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합니다. 

경찰은 만취 운전자의 트레일러 운행을 막으려고 권총 3발을 쏴 바퀴를 펑크 냈지만 A씨는 타이어 펑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트레일러를 몰아 질주했습니다.   

경찰차와 소방차 여러 대와 경찰관·소방대원 수십 명이 A씨를 제지했지만 A씨는 트레일러를 4㎞가량 지그재그로 운전하며 경찰차를 들이받는 난동을 부렸습니다.

광란의 질주와 난동은 A씨가 거가대교 위에서 바다로 투신하려고 트레일러를 세우고 트레일러 문을 여는 순간 경찰 특공대가 A씨를 제압하면서 끝났습니다.

만취한 A씨가 하차를 요구하는 경찰을 위협하며 난동을 부리는 5시간 동안 거가대교 거제도 방면 차량 통행은 전면 중단됐고, A씨는 음주운전과 특수재물손괴, 특수상해,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여러 건의 ‘특수’가 들어가는 범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1심 법원 판결이 오늘 나왔는데 부산지법 형사5부(권기철 부장판사)는 A씨에 대해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A씨의 범행으로 경찰 특공대와 각종 장비 등 대규모 인력과 장비가 투입됐다. 국가 중요시설을 장시간 마비시켜 그에 상응하는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재판부 판시 내용입니다. 

재판부는 "다만 A씨가 피해자와 합의했고 지입회사와 분쟁을 겪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술에 취해 자포자기 심정으로 범행을 저지른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자포자기(自暴自棄)는 《맹자(孟子)》 〈이루편(離婁篇)〉에 나오는 말로 원래는 예의를 해치지 말고 인의를 행하라는 취지로 사용됐습니다. 

예의와 인의를 잃어버리고 포기하게 되면서 자포자기는 지금은 ‘절망에 빠져 스스로를 포기하고 돌아보지 아니함’ 정도의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최승호 시인은 ‘인식의 힘’이라는 시에서 ‘절망한 자는 대담해지는 법이다’는 니체의 철학적 경구를 부제로 인용했습니다. 많은 경우 절망에서 오는 ‘대담’은 오직 스스로를 해칠 뿐입니다. 

‘절망은 제 얼굴을 안 보려고 술에 머리를 처박는다’. 절망과 관련된 최승호 시인의 또 다른 시 제목입니다. 자포자기 절망 상태에서 술에 만취해 징역 3년짜리 범죄를 저지른 이제 60을 바라보는 화물차 운전기사. 

사연 없는 술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그래서 더 그 절망과 자포자기가 안타깝습니다. ‘판결로 보는’ 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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