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사리 문 연 국회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으로 또 공전
유신정권 때 만들어졌다 민주화로 사라진 형법 '국가모독죄'
법조항 이미 폐지된 후인 2015년 헌재 최종적 "위헌" 결정

[법률방송뉴스] 대중의 관심이 높은 사건에 대한 법률적 해석, 법적 절차나 처리 과정 등 궁금한 점을 알려드립니다. 반드시 유명 인사(스타star: '별별')가 개입된 사건이 아니어도 됩니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소소하더라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 그러나 법을 알면 더 명쾌해지고 재미있어지며 피해도 줄일 수 있는 '별의별' 사안들을 다룹니다. /편집자 주

나경원(왼쪽)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나경원(왼쪽)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여야 대치로 2개월 넘게 공전하던 국회가 어렵사리 문을 열었지만 '국가원수 모독죄' 논란으로 또 다시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말을 듣지 않게 해 달라"라고 말한 데 대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한민국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죄"라며 강하게 비난한 것이 발단이 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이 문제를 두고 이틀째 공방을 주고받는 가운데 인터넷상에서는 '국가원수 모독죄'가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해찬 대표가 말한 '국가원수 모독죄'는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죄목이다.

과거에는 이 죄목이 있었다. 지난 1975년 3월 당시 여당이던 민주공화당과 유신체제 아래서 대통령의 지명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구성한 준정당 성격의 원내교섭단체인 유신정우회가 신설했다가, 1987년 민주화운동의 영향으로 이듬해 말 삭제된 형법 제104조의2 '국가모독죄'가 그것이다.

옛 형법 제104조의2 제1항은 '내국인이 국외에서 대한민국 또는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모욕 또는 비방하거나 그에 관한 사실을 왜곡 또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대한민국의 안전·이익 또는 위신을 해하거나, 해할 우려가 있게 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제2항에서는 '내국인이 외국인이나 외국단체 등을 이용하여 국내에서 전항의 행위를 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고 적시했다.

대통령을 비롯해 국가기관을 모욕했을 때 주로 이 법을 근거로 처벌이 이뤄졌다.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리고 '내국인이 국외에서~', '내국인이 외국인이나 외국단체 등을 이용하여~'라는 법 문구를 봐도 알 수 있듯이 군사정권 시절 재외동포나 외신 등을 이용한 국내정치 비판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애초 만들어진 면이 있다.

국가모독죄가 적용된 사례는 지난 1977년 '양성우 시인 필화 사건'이 대표적이다.

양성우 시인은 당시 장편 시 '노예수첩'에서 대한민국을 독재국가로 표현하고 체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국가모독과 긴급조치 위반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국가모독죄는 그러나 이후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형을 살다 가석방된 양성우 시인이 법원에 재심 청구와 함께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했고 2013년 법원이 그의 신청을 받아들여 국가모독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5년 10월 21일 재판관 9명 만장일치로 국가모독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위헌법률심판 제청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법률은 원칙적으로 위헌심판 시 '유효한 법률'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미 폐지된 법률은 위헌심판 대상이 될 수 없지만 소송 사건에 적용할 수 있어 재판의 전제가 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위헌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유신독재 시절 악법으로 불렸던 국가모독죄는 헌재의 결정으로 최종 사형 선고를 받은 셈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