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13일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률방송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13일 대법원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사법농단에 대해 “헌법이 사법부에 부여한 사명과 사법의 권위를 스스로 훼손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참담한 사건”이라며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드린 것에 대해 사법부의 대표로서 통렬히 반성하고 다시 한 번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우리 사법부가 지난 시절의 과오와 완전히 절연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하여는 현안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문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의 확고한 생각”이라며 “대법원장으로서 일선 법관의 재판에는 관여할 수 없으나, 현 시점에서도 사법행정 영역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협조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기념사 전문이다.

[전문]

오늘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미군정으로부터 사법권을 넘겨받아 사법주권을 회복한 지 70년이 되는 날입니다. 대한민국이 비로소 독립국가의 모습을 온전히 갖추게 된 것을 기념하는 뜻깊은 날입니다.

귀중한 시간을 내어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신 문재인 대통령님, 이진성 헌법재판소장님 그리고 내외 귀빈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일제 강점과 전쟁의 아픔을 딛고 민주주의의 성숙과 아울러 경제, 문화, 외교 등 모든 영역에서 급격한 성장을 이룬 과정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사법부 70년의 역사 역시, 우여곡절 속에서도 전자소송 등 많은 영역에서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큰 성장을 이룩해 온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개인적인 고초를 겪으면서도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여 소신을 지킨 자랑스러운 선배 법관들이 만들어낸 역사이기도 합니다.

반면, 눈에 보이는 외적인 성장 뒤에 국민의 기본권을 제대로 수호하지 못한 부끄러운 모습도 있었고, 신속과 효율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법관 관료화와 같은 어두운 그늘도 함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법부는 소수자와 약자의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헌법은, 법관이 법원 내ㆍ외부의 어떠한 권력으로부터도 독립하여 오직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서만 재판하여야 한다는 법관 독립의 원칙을 선언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사법부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여러 현안들은, 헌법이 사법부에 부여한 사명과 사법의 권위를 스스로 훼손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참담한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최근 현안과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드린 것에 대해 사법부의 대표로서 통렬히 반성하고 다시 한 번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사법부가 지난 시절의 과오와 완전히 절연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하여는, 현안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문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의 확고한 생각입니다.

그간 우리 사법부에 쌓여온 폐단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다시는 이러한 폐단이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개혁을 이루는 것이 지금 저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저는 대법원장으로서 일선 법관의 재판에는 관여할 수 없으나, 현 시점에서도 사법행정 영역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협조를 할 것이며, 수사 또는 재판을 담당하는 분들이 독립적으로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신속하고 공정하게 진실을 규명해 줄 것으로 믿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내외 귀빈 여러분!

저는 취임한 이후 국민 여러분께, 사법부가 지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근본적인 개혁에 모든 힘을 쏟겠다고 수차례 약속드린 바 있습니다.

지금 사법부는, 법관의 관료화와 권위주의 문화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온 법관의 승진제도를 폐지하고, 사법행정권이 재판에 개입할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법원행정처의 전면적ㆍ구조적 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법관이 권력이나 사법행정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재판을 하도록 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조치입니다.

또한, 주권자인 국민이 재판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고, 누구나 사법제도를 쉽고 평등하게 이용하고 접근할 수 있는 여러 장치를 마련하는 한편, 재판의 결과물인 판결서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법관 제청과 헌법재판관 지명 등의 공직 지명 절차와 그 밖의 사법행정 분야에서도 ‘대법원장의 권한 내려놓기’를 통해 법원 내·외부의 다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현재의 여러 개혁방안이 국민의 기대를 완전하게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의견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법부가 처한 위기는 지금껏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것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법원이 가고자 하는 길은 전인미답의 길입니다. 진정한 국민의 의사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사법부 구성원은 물론 국민과 함께 그 길을 찾고자 합니다.

그런 취지에서 저는, 지난 3월 각계의 신망 있는 인사들이 참여하는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를 발족시켰습니다. 사법발전위원회는 그동안 폭넓고 깊이 있는 논의를 거쳐 매우 전향적인 여러 제안을 하였습니다. 저는 사법발전위원회의 이러한 제안을 전폭적으로 수용할 생각입니다.

사법발전위원회의 제안 중 이미 상당한 의견수렴이 이루어진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의 인적·물적 분리, 윤리감사관 외부 개방직화, 법관인사 이원화의 완성은 이를 곧바로 시행할 수 있도록 신속히 방안을 마련하겠습니다. 또한, 사법행정 구조의 개편, 전관예우 해소방안 마련, 상고심제도 개선 등과 같이 사법부 구성원의 의사만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주제에 대하여는 국민적 요구와 눈높이를 반영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도 검토하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법부 내의 의사만 반영되지 않도록 국회와 행정부를 비롯한 외부 기관이나 단체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법원가족 여러분!

국민이 피와 눈물로 국민주권의 회복을 이루었듯이, 사법부의 신뢰회복도 거저 얻어질 리 없습니다. 저와 사법부 구성원 모두는 초심으로 돌아가 오로지 ‘좋은 재판’을 위해 헌신하는 사법부를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을 각오를 하겠습니다.

이로움을 보았을 때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기를 보았을 때 목숨을 바친다고 결의한 안중근 의사의 높은 뜻을 되새기고, 외세와 권력의 어떠한 압력에도 끝까지 지조를 굽히지 않고 법관의 독립을 수호했던 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기개를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오늘 기념식이 거행되는 이 중앙홀은 대법관들의 취임식과 판사들의 임명식이 열리는 곳입니다. 대한민국의 법관들은 처음 법복을 입는 날, “법관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고, 법관윤리강령을 준수하며,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하면서 국민이 헌법을 통해 맡긴 사명을 다할 것을 되새깁니다.

저와 사법부 구성원 모두는, 지난 70년의 공과를 되돌아보면서, 금년이 새로운 70년의 역사를 시작하는 원년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법관 선서문을 다시 한 번 읽어 볼 것입니다. 그 때 가졌던 초심을 되돌아보면서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국회와 정부 등 국가기관으로부터 합리적 존중을 받는 사법부를 만들기 위하여, 더디고 힘든 길일지라도 묵묵히 걸어가고자 합니다.

끝으로, 귀한 시간을 내어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2018. 9. 13.
대법원장 김명수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