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관찰법, 일제 '불령선인' 감시위한 '보호관찰령'에 뿌리
보안관찰법 제26조에 등장하는 일본식 한자어 ‘게기(揭記)’
청산하지 못한 일제 잔재, 우리 법전에 끈질기게 이어져
[법률방송뉴스] 저희 법률방송이 연중기획으로 준비한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를 시작한지도 이제 100일 남짓 됐습니다.
그동안 행선지, 압날, 시방서 등 우리 법전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일본식 한자어들을 찾아내 지적했는데요.
오늘(26일)도 이런 일제 잔재 법률용어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오늘은 ‘게기’입니다.
[리포트]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14년간 옥살이를 했던 ‘세계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 강용주씨가 지난 4일, 법무부를 상대로 보안관찰처분 면제 청구를 냈습니다.
“법무부와 검찰이 과거사 과오를 반성한다면서 보안관찰법으로 고통을 주는 건 자가당착“이라는 것이 강씨 측 설명입니다.
보안관찰법은 국가보안법 등 특정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출소 이후에도 주요 활동사항, 하다못해 여행을 가도 여행 목적지와 기간, 목적 등을 사법당국에 신고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보안관찰법은 일제 때 이른바 불령선인들을 감시하기 위한 ‘보호관찰령’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강용주씨는 20년 가까이 보안관찰법 신고를 거부하며 국가를 상대로 지난한 법정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조시현/전 건국대 법대 교수]
“보안관찰법. 대표적인 악법 중에 악법인데 일제 때, 일제 잔재로써 내려온...”
이 보안관찰법 제26조에 ‘게기(揭記)’라는 낯선 한자가 등장합니다.
“군사법원법 제2조제1항 각호의 1에 게기된 자에 대한 보안관찰처분에 관하여는...” 이라는 조항입니다.
'게기(揭記)'는 ‘높이 들 게(揭)’에 ‘기록할 기(記)’ 자를 씁니다.
한자로는 ‘기록(記錄)하여 높직하게 붙임’이라는 뜻입니다.
법률적으로는 ‘기록해 내어 붙이거나 걸어 두고 여러 사람이 보게 하다', 즉 ‘규정’이라는 의미입니다.
일제 잔재 뿌리가 박혀있는 법령, 이 속에 들어가 있는 일본식 용어에 대해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시민]
“아니죠. 우리나라 말 그대로 써주셔야죠.”
[시민]
“필요에 의하면 있어도 되지만 바뀌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이 ‘게기’라는 일본식 법률용어는 보안관찰법 뿐 아니라 몰수금품 등 처리에 관한 특례법, 귀속재산 처리법 시행세칙 등 우리 법전 곳곳에 음습하게 남아 있습니다.
청산하지 못한 일제 잔재가 우리 법전에 남아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조시현/전 건국대 법대 교수]
“일제시기에 법학 공부 하는 사람들이 법률을 만들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고 그러니까 그 법에 사실은 이 말 속에 역사가 들어가 있는 거죠”
일본말이라고 무조건 청산하자는 게 아닙니다.
뜻이 이해가 가는 것도 아니고 널리 알려진 말도 아니고, 거기다 일제의 잔재이기까지 한 법률 용어 ‘게기’.
우리 법전에 계속 두고 써야 할 이유가 하나라도 있을까요. 바꿔야 합니다.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신새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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