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가 그렇지 않았겠나만 2016년은 법조계에 유독 탈도 많고 일도 많았던 한 해였다. 화장품회사 대표 정운호의 원정도박 사건으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100억원의 불법 수임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더니, 정운호와 연루된 전직 검사장 출신 변호사와 현직 부장판사가 줄줄이 구속됐다. 또 검찰 창설 이래 최초로 현직 검사장이 비위 혐의로 구속되고, '스폰서 부장검사'까지, '법조 비리'가 일년 내내 법조계를 부끄럽게 만든 한 해였다. 10월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터진 후 검찰에 이은 특검의 수사와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 그리고 헌재의 탄핵심판까지, 한 해의 막바지에 법조계는 다시 본연의 일로 영일이 없다. 올 한 해 법조계의 발자취를 10대 뉴스로 정리해 본다. /편집자 주 

 

1. 최순실 국정농단... 대통령 탄핵 

2016년 법조계를 뒤흔든 가장 큰 뉴스는 단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이었다. 법조계뿐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가 엄청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에 대한 각종 특혜 의혹은 국정 전반에 대한 농단 의혹으로 번졌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검찰에 피의자로 입건되고,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당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최씨가 사용한 태블릿PC에서 대통령 연설문이 사전 누출된 것이 확인되면서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박 대통령의 미흡한 대국민사과로 촉발된 국민들의 분노는 매 주말 사상 최대 참가 기록을 경신하며 '촛불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최씨는 검찰 수사에서 대통령,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과 '공범'으로 자신이 실소유주인 미르·K스포츠재단에 각종 정부 추진 사업을 몰아주고 이익을 취한 혐의를 받았다. 또한 대기업을 압박해 딸 정유라씨에 대해 각종 특혜를 주도록 한 혐의, 정부 고위직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 사건으로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다. 표결 결과 299명 투표에 찬성 234, 반대 56, 기권 2, 무효 7표라는 압도적 결과가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최장 180일 이내에 박 대통령 탄핵 인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검찰은 사상 최대 규모의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이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박 대통령 측이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검찰 단계에서 진행되지 못했다. 이후 꾸려진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청와대 압수수색부터 박근혜 대통령 조사까지 성역없는 수사를 벌이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12월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최씨와 안 전 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문화계 황태자'로 불린 차은택씨,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 등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렸다. 최씨는 혐의 전체를 부인했고,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행동한 것이라며 사실상 혐의를 부인했다. 정 전 비서관은 혐의 일체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2. 무너진 검찰... 현직 검사장, 부장검사 잇달아 구속

2016년 검찰 조직은 그야말로 최악의 위기를 겪었다.

현직 검사장을 포함한 검사 2명이 비위 혐의로 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물론 김현웅 전 법무부 장관 역시 국민들 앞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진경준 전 검사장이 친구인 김정주 넥슨 대표로부터 비상장주식 1만주를 공짜로 넘겨받아 130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뒀다는 사실이 공직자 재산공개 과정에서 드러났고, 진 전 검사장은 7월 구속됐다.

12월 열린 1심에서 재판부는 진 전 검사장이 김 대표에게 주식 등 각종 특혜를 제공받은 것에 대해서는 직무관련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진 전 검사장은 2010년 8월 대한항공을 압박해 처남이 운영하는 청소용역업체에 100억원대 일감을 몰아준 혐의 등에 대해 유죄가 인정돼 징역 4년이 선고됐다.

 

진경준(왼쪽) 전 검사장과 김정주 넥슨 대표. /연합뉴스

진 전 검사장 사건이 검찰을 뒤흔든 지 두달여가 지나, 김형준 부장검사가 고교 동창인 게임업체 이사 김모씨로부터 이른바 ‘스폰서’를 받았다는 의혹이 터졌다. 김 부장검사가 김씨에게 금품과 향응을 받고 김씨가 사기 및 횡령 혐의로 고소된 사건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서울서부지검 수사팀과 접촉했다는 내용이었다.

김 전 부장검사는 또 자신과 친분이 두터운 변호사에게 4천만원을 빌려 쓴 혐의, 수사 대상 기업의 지주회사 임원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혐의도 받았다. 김 전 부장검사는 현재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3. 정운호 최유정 홍만표 김수천... 뿌리 깊은 법조 비리

'중저가 화장품의 신화'라고 불렸던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원정도박 사건이 법조계 전반의 뿌리깊은 병폐를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드러냈다.

정 전 대표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던 중 자신의 변호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자인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는 정 전 대표를 고소했고, 양측의 폭로전은 법조 비리의 민낯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 /연합뉴스

최 변호사는 정 전 대표로부터 50억원의 수임료를 받는 등, 검찰과 법원을 상대로 한 로비 명목으로 100억원을 챙겼다는 사실이 드러나 재판에 회부됐다. 최 변호사는 또 법조 브로커와 공모해 유사수신업체 대표에게서 재판 청탁 명목으로 50억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최 변호사에 대해 징역 7년과 추징금 45억원을 구형했다.

이후 정 전 대표 사건에 홍만표 변호사가 연루됐다는 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정 전 대표를 '몰래 변론'했다는 의혹이다. '특수통'으로 불렸던 홍 변호사는 이 사건으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또 정 전 대표로부터 사건 청탁과 함께 1억8천만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수천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1심에서 징역 10년이 구형됐다.

 

4. 김영란법 시행, 변화의 바람

2016년 대한민국에 불어온 가장 큰 변화의 바람을 꼽자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 시행이다.

2011년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공정사회 구현 대책의 하나로 법 제정의 필요성을 제기해 만들어진 이 법은 9월 28일 전격 시행됐다.

 

약 400만명이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으면서 식사, 골프 약속을 줄줄이 취소하며 생활상의 변화가 생겼다. 식당가는 앞다퉈 김영란법 전용 메뉴를 만들었다. 그러나 구체적 적용 사례가 정립되지 않은 상태라 내수경제 침체의 원인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법원과 검찰이 김영란법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처벌규정 등을 확립해 나가겠다는 원칙을 세운 가운데, 12월 8일 김영란법 1호 위반자에 대한 법원의 과태료 처분 결정이 나왔다.

자신의 고소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에게 떡 선물을 건네 김영란법 위반 1호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여성 조모씨는 춘천지법에서 떡값의 2배인 9만원의 과태료 부과 처분을 받았다.

 

5. "청와대, 양승태 대법원장 사찰" 폭로

청와대가 양승태 대법원장 등 사법부 고위인사들을 사찰했다는 의혹이 12월 15일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4차 청문회에서 제기됐다.

2014년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후 해임됐던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은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사찰 의혹을 폭로했다. 

 

12월 15일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청와대가 양승태 대법원장을 사찰했다"고 폭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전 사장은 "대단한 비위 사실이 아니라 등산 등 일과를 낱낱이 사찰해 청와대에 보고한 내용"이라며 "당시 춘천지방법원장이었던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 관용차를 사적으로 사용하고 대법관 추천을 앞두고 과잉 의욕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 등도 담겼다"고 폭로하고 사찰 내용이 적힌 문건을 국회에 제출했다.

대법원은 "사실이라면 헌법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중대한 반헌법적 사태"라며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당사자인 양승태 대법원장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충격과 우려를 표했다.

문건은 국정원에서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그러나 "사찰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6. 롯데 수사, 최순실 의혹... 재벌 '정경유착' 고질

6월초 대규모 압수수색으로 시작된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에는 130일 동안 200여명의 수사관이 동원됐고, 500여명의 롯데 임직원이 소환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격호 총괄회장,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서미경씨 등 총수 일가들이 줄줄이 재판에 넘겨졌다. 2015년 '롯데가 형제의 난'으로 촉발된 검찰 수사로 호텔롯데 상장은 물론 인수합병까지 줄줄이 무산돼 '유통 공룡'으로 불리는 롯데그룹은 최악의 경영 위기에 직면했다.

 

신동빈 롯데 회장과 계열사 사장단이 10월 25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검찰 수사로 드러난 경영 비리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롯데 외에도 대우조선해양 비자금 사건, 철도공사 입찰 담합, 부영그룹 탈세 의혹, 효성가 형제의 난, 한진해운 사태 등도 검찰의 수사 타깃이 됐다.

롯데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 대기업 총수 9명이 최순실 의혹과 관련한 '대통령 독대'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고 국회 청문회에 불려나가는 등 수난이 계속됐다.

 

7. 20대 총선 사범 1천430명 기소... 최소 3명 '당선무효'

검찰이 20대 총선 선거사범으로 현역 국회의원 33명 등 모두 1천430명을 기소했다.

대검 공안부는 20대 총선 선거사범 공소시효 만료일인 10월 13일까지 모두 3천176명을 입건해 1천430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19대 총선 1천460명에 비해 소폭 감소한 수치다.

구속된 사람은 모두 114명이다. 입건된 현역 국회의원 160명 중 33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19대 총선 때는 현역 의원 30명, 18대 총선에서는 36명이 기소됐다.

 

기소된 33명 중 당선무효 가능성이 있는 의원이 3명이고, 벌금형 10명, 무죄 2명, 1심 재판 진행 중인 의원이 18명이다.

기소된 현역 의원은 금품선거 혐의 10명, 흑색선전 혐의 16명(2명은 금품선거 중복), 여론조작 혐의 2명, 기타 혐의 7명이다. 정당별로 보면 새누리당 11명, 더불어민주당 16명, 국민의당 4명, 무소속 의원 2명이다.

대검은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불식시키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8. ‘양심적 병역거부’ 항소심 첫 무죄... 헌재 3번째 위헌 여부 판단 주목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10월 18일 광주고법이 항소심에서는 최초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종교 및 개인의 양심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고 형사처벌로 이를 제한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국제사회도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고 우리 사회도 대체복무제 필요성을 인정하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5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들어 1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사례는 증가하고 있다. 2015년 5∼6월 광주지법 4명, 8월 수원지법 2명, 2016년 6월 인천지법 부천지원 2명, 8월 청주지법 1명까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사례가 최근 1년 사이 9건으로 나타났다. 예전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결과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4년과 2011년 종교적 신념이 현역 입영을 거부할 만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두 차례 ‘합헌’ 결정을 내렸다. 현재 헌재에서 3번째로 심리중인 위헌법률심판 결과가 주목된다.

 

9. 국민적 공분 폭발시킨 가습기살균제 사태

정부 공식 피해자 221명. 이 중 사망자 95명. 생존 피해자 중 어린이들 대부분은 폐섬유화 증상으로 산소호흡기에 의지해야 한다. 참혹한 결과를 낳은 가습기살균제 사태에 대해 검찰은 2월 전담수사팀을 꾸려 수사를 본격화했다.

옥시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제조·유통사에 대한 압수수색 등 수사 결과 검찰은 4월 옥시싹싹, 와이즐렉 가습기살균제, 세퓨 가습기살균제,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 등 4개 제품이 폐손상을 유발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옥시 측에 유리하게 실험보고서를 작성하고 자문료 명목으로 2천400만원을 받아 기소된 호서대 유모 교수에게 재판부는 징역 1년4개월과 추징금 2천400만원을 선고했다. 검찰은 신현우 전 옥시 대표에게 징역 20년, 세퓨를 제조·판매한 오모 전 버터플라이이펙트 대표에게는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0부는 11월 15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유족 등 13명이 세퓨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첫 재판에서 유족에게 1인당 1천만~1억원씩 총 5억4천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10. 연예인들 잇단 성 추문

가수 출신 배우 박유천은 6월 이모씨 등 4명의 여성으로부터 성폭행 피소를 당했다. 이씨는 자신이 일하던 강남의 유흥주점에서 박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소했다가, 돌연 성관계에 강제성이 없었다고 고소를 취하했다. 박유천은 이씨 등을 무고 및 공갈 혐의로 맞고소했다.

박유천 사건이 잠잠해지기도 전에 7월에는 배우 이진욱이 성폭행 혐의로 피소돼 또 한 번 대중에게 충격을 줬다. 하지만 이진욱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상대 여성 오모씨가 무고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가수 겸 배우 박유천이 6월 30일 오후 성폭행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강남경찰서로 나와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배우 엄태웅은 8월 성폭행 혐의로 경찰에 피소됐다. 엄태웅은 마사지업소에서 권모씨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조사 결과 성폭행 혐의는 벗었지만 경찰은 10월 엄태웅을 성매매 혐의로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 송치했다. 권씨와 마사지업소 업주는 돈을 뜯어내려고 허위 고소한 혐의(무고 및 공갈미수)로 입건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9월에는 가수 정준영이 여자친구의 신체 일부를 촬영한 혐의를 받아 파장을 일으켰고, 코미디언 이세영은 11월 남성그룹 B1A4 멤버들의 신체 특정 부위를 만지는 모습을 보여 성추행 논란에 휘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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