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뉴스본부 기자

“피고인 입장하겠습니다.”

재판장의 한마디에 법정이 술렁였다. 대기 중이던 사진기자들은 연신 플래시를 터트리며 최순실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하얀색 수의에 까만색 뿔테안경을 쓰고 고개를 숙인 채 법정에 들어선 최순실은 한 나라를 뒤흔든 국정농단 의혹의 몸통이라고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상황에 대한 부담감에 짓눌려 주눅 든 한 명의 피고인일 뿐이었다.

그러나 신분을 확인하는 동안 줄곧 고개를 숙인 상태로 마이크에 조용히 자신의 생년월일을 말하던 최씨는 재판이 시작되자 변호인을 통해 할 말을 모두 터트리려는 듯했다.

이날 법정에서 최씨의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는 시종일관 혐의를 부인했다. 재판장을 향해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의혹인지 알 수 없는 문제점을 길거리가 아닌 법정을 통해 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촛불 여론을 의식하지 말고 공정한 재판을 해달라는 말이었다.

이 변호사는 검찰을 향해서도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기소에 결정적 증거가 됐던 태블릿PC의 실물을 보지 못했다는 점에 대한 주장도 펼쳤다. 증거의 존재를 보지 못했으니 신뢰할 수 없으며, 따라서 감정 역시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는 또 검찰이 최씨에 대해 강압수사를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씨를 밤낮없이 불러 조사하며 진술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황당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태블릿PC는 정 전 비서관의 혐의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에 최씨에게 제시할 필요가 없고, 강압수사 역시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 변호사의 이같은 태도는 재판 직후 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난입한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최순실에게 계란을 던지고 싶었다”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

이날 법정에는 10대 소녀부터 80대 할아버지까지, 150여명의 방청객이 참석했다. 모두 1시간 이상 줄을 서 신분 확인 절차를 거친 사람들이었다. 2시간여 동안 계속된 공판에서 자리를 뜨는 사람 역시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들은 어느 재판의 방청객보다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 사안의 중요성을 모두가 인식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피고인이 재판 과정에서 보호를 받아야 함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순실은 국정농단 사태로 전국민적 박탈감을 유발한 의혹을 받는 사람으로서, 무조건적인 혐의 부인보다 사태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있는 해명을 우선했어야 한다고 본다.

검찰 청사에 출석하면서 “죽을 죄를 지었다”고 했던 자신의 발언을 재판 진행 내내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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