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위작 논란 '미인도' 법적 분쟁, 검찰 수사결과 발표 '진품 가능성 0.00002%'라는 프랑스 감정단 결론 뒤집어 천 화백 유족 "검찰 결론 황당... 추가 법적 대응" 반발

25년 간 위작 논란이 일었던 천경자(1924~2015) 화백의 '미인도'에 대해 검찰이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천 화백의 유족은 검찰의 결론에 대해 즉각 “황당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강력 반발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배용원)는 19일 “미인도의 소장 이력 조사, 전문기관의 과학감정, 전문가의 안목감정, 위작자를 자처해 온 권춘식씨에 대한 조사 내용을 종합한 결과 '미인도'는 진품으로 판단된다”며 “'미인도'는 천 화백이 1976년 작품 ‘차녀 스케치’를 토대로 그린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이 사건은 1991년 이후 25년간 지속돼 온 대표적 미술품 위작 논란 사건인 만큼 미술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청취하고, 현 시점에서 동원 가능한 거의 모든 감정방법을 통해서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 배용원(왼쪽) 부장검사가 19일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란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에 진열된 것이 '미인도'이다. /연합뉴스

앞서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씨 등 유족은 지난 4월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6명을 사자명예훼손, 저작권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이날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5명을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미인도'가 위작이 아니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던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정모(59)씨에 대해서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천 화백이 진품을 보지 않고 위작이라고 했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단정적으로 밝혀 논란을 증폭시켰다는 이유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천 화백의 유족은 강력 반발했다. 김정희씨의 법률대리인 배금자 변호사는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 후 서면자료를 내고 “국제적인 과학감정 전문기관인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가 한 달에 걸친 검증 끝에 수학, 물리학, 광학적 데이터로 도출해낸 명백한 위작 판명 결과를 대한민국 검찰이 거부했다”고 비난했다.

유족 측은 검찰이 비공개로 실시한 안목감정에 참여한 감정위원 9명의 명단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유족 측은 "피고발인인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들이 프랑스 과학감정단 방한 시 검찰과 동등한 위치로 버젓이 회의에 참석하고, 프랑스 감정단의 감정 결과가 검찰에 제출된 후 검찰이 즉각 그것을 국립현대미술관에 전달했다"며 검찰의 수사에 의문을 제기했다.

배금자 변호사는 "프랑스 감정팀의 보고서를 숙지했는지 의심될 만큼 검찰의 논리와 전문성이 부족하다"며 재정신청, 민사소송 등 추가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는 '미인도'를 특수 카메라로 단층 촬영해 천 화백의 다른 작품과 비교 분석하는 등 감정을 한 후 "'미인도'가 진품일 가능성은 0.00002%"라는 의견을 냈으나, 검찰은 "감정 방식이 위조 여부 판단의 근거로 보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배척했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1천650개 단층으로 분석, 그림의 표면 밑에 숨겨진 다른 그림을 찾아냈다고 주장해 화제를 모으기도 한 미술품 전문 감정기관이다.

 

■ '미인도' 위작 논란 경과

'미인도' 위작 논란은 지난 1991년 작품을 소장하고 있던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시회를 통해 작품을 공개하자 천 화백이 진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천 화백은 당시 "자식 몰라보는 부모가 있느냐"며 '미인도'는 자신이 그린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국립현대미술관과 화랑협회 등이 감정 결과 진품이라는 의견을 내놓자 절필을 선언하고 이후 1998년 미국으로 영구 출국했다.

8년 후인 1999년 청전 이상범 화백의 작품 위작 사건으로 구속돼 검찰의 수사를 받던 권춘식씨가 "화랑 하는 친구의 요청으로 '미인도'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면서 '미인도' 위작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하지만 권씨 진술의 신빙성과 공소시효 등의 이유로 수사는 진전되지 않았다.

미국으로 떠났던 천 화백의 별세 소식이 지난해 10월 뒤늦게 국내에 전해지면서 '미인도' 진위 논란은 다시 가열됐다. 지난 4월 김정희씨 등 유족이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6명을 '미인도'가 진품이 아닌데도 진품이라고 주장하면서 작가의 인권과 사후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법적 분쟁으로 비화했다.

검찰은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그동안 '미인도' 위작자를 자처했던 권씨가 원본을 확인한 뒤에는 "명품에 가까운 수작이다. 위작으로는 절대 흉내낼 수 없다"며 자신의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감정위원 9명 중 소수는 "진품에 비해 명암 대조나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위작이라는 의견을 냈지만, 다수는 덧칠과 붓터치, 선의 묘사 등에서 진품이라는 의견이었다고 밝혔다.

한편 검찰은 '미인도'의 유통 경로의 출발점이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1977년 천 화백이 당시 중앙정보부 간부 오모씨의 부탁으로 '미인도'를 비롯한 그림 2점을 제공했고, 이 간부의 부인이 대학 동문인 김재규 부장의 부인에게 다시 선물했다는 것이다.

김 부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후인 1980년 2월 계엄사령부 산하 기부재산처리위원회에 '미인도'를 헌납했다. '미인도'라는 이름도 당시 감정 과정에서 붙었다고 한다. '미인도'는 이후 재무부와 문화공보부를 거쳐 그 해 5월 국립현대미술관에 최종 이관됐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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