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전에만 있는 '사문화'된 단어... '도랑'으로 바꿔야"

[법률방송]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오늘(24일)은 구거(溝渠)라는 단어입니다.

우리말로 그냥 ‘도랑’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이 쉬운 말을 두고 왜 굳이 구거라는 표현을 계속 쓰는지 정말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조현경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입니다.

영화는 형사를 그만두고 외판원?을 하고 있는 송강호가 범행 현장 부근의 ‘도랑’을 들여다 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이 ‘도랑’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우리 법전에도 나옵니다.

문제는 도랑이 ‘도랑’이라는 단어가 아닌 낯설고 전혀 알기 어려운 단어로 기재돼 있다는 점입니다.

민법 제229조 “구거 기타 수류지의 소유자는 대안의 토지가 타인의 소유인 때에는...“

지방세법 시행령 제108조 “대통령으로 정하는 도로·하천·제방·구거·유지 및 묘지“ 등에  ‘구거’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일반 시민들은 당연히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전혜숙/서울 관악구]
“구거? 아니요 못 들어봤어요”

[최현정/서울 서초구]
“몰라요. 구거가 뭐예요?”

법제처 법령용어사전을 찾아봤습니다.

"구거(溝渠): 농업용 구거와 자연 유수의 배수 처리에 제공하는 구거“라도 돼 있습니다.

법제처 법령용어사전을 봐도 무슨 뜻인지 알기 힘듭니다.

‘구거(溝渠)’는 한자로는 ‘도랑 구(溝)’에 ‘개천 거(渠)’ 자를 씁니다.

그냥 '개천에 놓인 도랑'이라는 뜻입니다.

통상 법적으로는 ‘용수나 배수를 목적으로 일정한 형태를 갖춘 인공적인 수로 및 그 부속 시설물의 부지’를 의미합니다.

즉, 구거도 지방세법에 함께 기재된 도로, 제방, 묘지 같은 단어처럼 해당 부지의 용도나 목적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부동산을 업으로 삼는 중개인들도 그 뜻을 모를 정도로 이미 사문화된 단어입니다. 
 
[임영지/부동산 중개인]
“처음 듣는데요?/ 평상시 쓰는 말도 아니니까.. 이게 한자어나 뭐.. 구? 옛 구? 언덕 구? 모르겠네..”

[황규석/부동산 중개인]
“잘 쓰지 않는 단어입니다. 일반적인 부동산에서는..

‘물’을 관할하는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알까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
“구거.. 구거요? 수공학 용어집이라는 게 있긴 합니다. 거기에 구거... 구거... 관거... 구거라는 것은 잘 들어보지는 못했거든요...”

관계자들도, 관계 당국도 모르는 법전에만 있는 죽은 단어 구거,

[이호영/서울 강북구]
“그러니까 뭐.. 법이라는 거 문턱이 너무 높으니까...

[김남현/서울 관악구]
“법률 용어 좀 어려우니까... 좀 쉬운 말로 했으면 좋겠네요”

관계자들도 잘 모르고 쓰지 않는 단어를 법전에만 계속 두고 있는 건 관계 당국의 직무유기, 나아가 일종의 ‘언어폭력’이기도 합니다.

구거를 도랑으로.

법률방송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조현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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