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인경왕후 유산 기사에 ‘포태(胞胎)’ 기록
'임신'의 뜻... 대학병원 산부인과 의사도 "어디서 그런 말을 쓰나"

[법률방송]

고백하자면 한때 나름 문학청년이었고 지금도 글을 읽고 쓰는 기자를 업으로 삼고 있는데, 법률방송 연중 기획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를 진행하면서 제 한국어 단어 어휘가 이렇게 모자란 지 매번 절감하고 있습니다.

단어만 들어선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 오늘(16일) 소개해 드릴 법전에 나오는 단어는 ‘포태하다’입니다. 장한지 기자입니다.

[리포트]

사극 단골 소재인 조선 숙종 조 장희빈을 다룬 한 TV 드라마입니다.

[SBS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 중]

“틀린 거 알아. 그래서 더 전하가 보고 싶어...”

장희빈의 남자, 조선 숙종의 첫 번째 정비였지만 아이를 낳다 유산하고 20살 어린 나이에 천연두로 숨을 거둔 비운의 인경왕후.   

조선왕조실록엔 이 인경왕후의 유산과 관련한 내용이 나옵니다.

“왕비가 여러 달 동안 포태(胞胎)의 징후가 있었는데, 갑자기 침전에서 도깨비를 보고 그로 인해 놀란 나머지 하혈하고 낙태한 사고가 있었다”는 기록입니다.

1680년 7월 24일 자, 숙종실록에 등장하는 ‘포태’, 이 포태라는 단어는 그로부터 300년도 훨씬 더 지난 지금, 우리 민법에도 실려 있습니다. 

이혼 절차를 규정한 민법 제386조. “가정법원에 이혼 의사를 신청한 당사자는 포태 중인 자를 포함해서...“ 라는 조항이 그것입니다.

[김장환(61) / 서울 중랑구]
“처음 들어봤어요. 법원에서 쓰는 말은 거의 다 모른다고 봐요...”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여성 수난을 미시적으로 다룬 소설 채만식의 ‘탁류’와 월탄 박종화의 대하 역사소설 ‘임진왜란’에도 이 ‘포태’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탁류'엔 “그의 모친이 막내둥이 병주를 포태했을 때 여러 가지로 변화가...”, '임진왜란'엔 “허약해서 포태를 하자면 어른과 어린애 두 생명이 함께 위태로울 것 같았다“는 표현이 그것입니다.

포태, 한자를 보면 세포나 배아를 뜻하는 ‘포(胞)’, 아이를 밸 ‘태(胎)’ 자 를 씁니다. 포태는 따라서, 아이를 배다, 그냥 ‘임신하다’는 뜻입니다.

‘포태’가 ‘임신’이라는 뜻인 줄 아는지, 나이 지긋한 여성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였습니다.

[이주신 (69) / 경기도 성남시]
“포태하다? 포기... 태는 모르겠고, 모르겠네.”

[정옥자 (75) / 서울 서초구]
“이거 처음 들어보는 소리인데. 포태라는 이게 무엇을 얘기하는 건지 내가 모르겠네. 포화상태?”

산부인과 관계자는 아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산부인과 관계자]
“(포태하다.) 아니요. 잘 듣지도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 말씀은 듣지는 못했어요.”

심지어 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포태하다’라는 말을 도대체 어디서 쓰냐고 되묻습니다.

[안기훈 교수 / 고려대병원 산부인과]
“포태. 저는 처음 들어봤어요. 저는 잘 못 들어보던 단어 같아요. 최근에 많이 안 쓰는 단어라서 일반인이 알아듣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포태’라는 단어가 우리 민법에만 세 차례나 나옵니다. 

산부인과에서도 쓰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표현 ‘포태하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이런 한자 단어를 21세기인 지금 대한민국 법전에서 계속 사용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법률방송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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