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9개월 만에 헌정 사상 두번째 대통령 탄핵소추
탄핵 사유, 정치적 배경, 민심의 향방 등 큰 차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9일 국회에서 가결됐다. 헌정 사상 두번째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다. 12년 9개월 전인 2004년 3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두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의 배경과 경과는 여러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지난 2004년 3월12일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이유로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국민이 열린우리당을 지지해줄 것으로 믿는다"는 노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이 화근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을 탄핵한 16대 국회에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47석에 불과했다. 탄핵안 가결에 필요한 정족수는 재적 의원(271명)의 3분의 2인 181표. 제1야당 한나라당(145석)과 민주당(62석), 자유민주연합(10석) 등은 연대해서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2016년 현재 여소야대 정국이라는 점은 12년 전과 같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나선 20대 국회는 여당인 새누리당이 128석이고 야당은 더불어민주당 121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이다.

20대 국회 역시 16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어느 정당도 탄핵안을 단독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캐스팅보드를 쥐고 있다고 예상지만, 9일 표결 결과는 찬성 234명, 반대 56명으로 비박계 의원들은 물론 친박계 의원들 상당수가 탄핵안 찬성 쪽에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 사유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 YTN 화면 캡처

노 전 대통령 탄핵과 박 대통령 탄핵은 모두 '헌정 질서 수호'를 위해 제안됐다. 그러나 두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제시한 구체적 법률 위반 사항은 크게 다르다.

노 전 대통령 탄핵의 가장 직접적인 사유는 선거법 위반이었다. 측근 비리 등 부정부패, 경제와 국정 파탄에 대한 책임도 사유로 제시됐지만 이는 부차적이었다.  

반면 박 대통령은 특가법상 뇌물죄를 비롯해 직권남용과 강요, 공무상비밀누설죄 등이 주요 탄핵 사유로 적시됐다. 이른바 '세월호 7시간' 의혹도 탄핵안에 포함됐다. 이는 헌법 10조 '생명권 보장'을 위반한 것으로 적시됐다.

12년 전과 지금의 탄핵 정국의 가장 큰 차이는 노 전 대통령은 수사 대상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미 검찰에 의해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됐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 탄핵 때는 탄핵을 추진한 당시 야당을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열렸지만, 박 대통령은 탄핵 절차 이전에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6차례 열리는 동안 참석 인원이 1차례에 200만명을 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탄핵 표결 직전 여론조사에서 '탄핵 반대' 의견이 65%에 달했다. 박 대통령은 '탄핵 찬성' 의견이 70%를 넘었다.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5차 주말 촛불집회. /최준호 기자 junhoh-choi@lawtv.kr

2004년 당시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탄핵을 주도한 야당들은 탄핵안 가결 후 극심한 민심의 역풍을 맞았다. 그 결과 17대 총선은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확보하며 여대야소로 전환됐다.

즉 노 전 대통령이 정치지형학적으로 탄핵이 의결됐다면, 박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으로 촉발된 '촛불민심'으로 대변되는 국민의 요구에 의해 탄핵이 가결됐다고 볼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탄핵안 표결 하루 전에 기자회견을 열고 '최후 변론'을 하며 정면돌파에 나섰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지난 6일 여당 지도부와 면담을 통해 "탄핵소추 절차를 발아서 가결이 되더라도 헌법재판소 과정을 보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갈 각오가 돼 있다"고 밝히고, 대국민담화나 기자회견은 하지 않았다.

 

2004년 3월 12일 국회 본회의장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안 표결에 반대하는 여당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표결을 강행하려는 한나라당 등 야당 의원들의 대치로 아수라장이 됐다. /연합뉴스

이번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은 12년 전과 달리 소란 없이 진행될 전망이다.

노 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당시 국회에서는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져 본회의 보고부터 표결까지 57시간이 걸렸다. 9일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은 본회의 개회부터 투표결과 발표까지 1시간 10분 만에 이뤄졌다.

2004년 탄핵 가결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직무는 즉시 정지됐고 고건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했다. 그해 5월 14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통해 63일 만에 탄핵안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직무에 복귀했다.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헌법재판소가 최장 180일 내에 탄핵심판을 통해 판가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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