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특검 수사 '뇌물죄' 적용 의식, 하나같이 '대가성' 부인
"청와대의 재단 출연 요청 현실적으로 거절하기 힘들었다"
이재용 "삼성 미래전략실 해체하고, 전경련 탈퇴하겠다"

6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9명의 재벌 총수들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수백억원을 출연한 것에 대해 하나같이 "대가성이 없었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재벌 총수들은 향후 특검 수사를 앞두고 대가성이나 청탁이 있었음을 인정할 경우 뇌물죄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해 몸을 사리는 모습만 드러냈다.

국조특위 의원들은 핵심에서 벗어난 질문과 고압적인 자세, 거친 발언 등 질의 태도가 여전히 구태를 벗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이날 청문회는 특검 수사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최순실 의혹과 관련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거나 의혹의 진상 규명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맹탕 청문회'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국조특위의 1차 청문회에 출석한 기업 총수들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연합뉴스

■ "기업은 정부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이구동성

이날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재벌 총수들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돈을 내놓은 것에 대해 하나같이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재단 출연이 삼성그룹의 안정적인 승계와 이 부회장의 경영권 확보를 위한 대가성이 있다'는 이만희 새누리당 의원의 지적에 "(삼성은) 단 한 번도 뭘 바란다든지, 반대급부를 바라면서 출연하거나 지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잇달아 쏟아진 다른 의원들의 질의에 대해서도 "사회공헌이든 출연이든 어떤 부분도 대가를 바라고 하는 지원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두 차례 독대한 사실을 인정한 뒤 "(대통령이) 문화 융성, 스포츠 발전 위해서 기업들도 열심히 지원해주는 게 경제발전, 관광산업 발전 위해서 좋은 일이라고 지원을 아낌없이 해달라는 말씀은 계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독대가 있었을 때는 이미 주주총회도 끝나고 합병이 된 뒤의 일이라 합병 얘기는 없었다"며 독대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대화가 오갔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K스포츠재단에 대한 70억원 추가 지원 결정이 서울지역 면세점 추가 입찰과 '롯데그룹 형제의 난' 수사 관련 로비가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관계없다"고 주장했다. 롯데는 지난 5월 말 K스포츠재단의 하남시 엘리트체육시설 건립 계획에 70억원을 추가로 기부했다가 검찰의 그룹 압수수색 하루 전인 6월9일부터 13일까지 5일에 걸쳐 돈을 돌려받았다.

최태원 SK 회장도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111억원의 자금을 낸 것이 자신에 대한 사면과 관련한 대가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기업별로 할당을 받은 만큼 낸 것"이라며 "대가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출연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구본무 LG 회장은 "대통령이 한류나 스포츠를 통해 국가 이미지를 높이면 경제에 도움된다고 말씀하셔서 정부가 뭔가 추진하는데 민간 차원에서 협조를 바라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며 대가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총수들은 청와대의 출연 요청을 현실적으로 거절하기 힘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허창수 GS 회장은 사면 등을 바라고 출연했느냐는 물음에 대해 "대가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출연한 바는 없었다"면서도 "미르·K스포츠재단은 청와대의 요청을 기업이 거절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도 재단 출연이 강요냐 뇌물이냐는 질문에 "그 당시에 그런 청와대의 지시와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구본무 회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

 

■ 이재용 "부정적 인식 있다면 삼성 미래전략실 없애겠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날 "국민 여러분이나 의원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면 삼성의 미래전략실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또 전경련에서 탈퇴하겠다고도 밝혔다. 최태원 SK 회장, 구본무 LG 회장도 전경련 탈퇴 방침을 밝혔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이종구 새누리당 의원이 "이 부회장 주변 참모들을 직언하는 쓴소리하는 사람들을 쓰고 미래전략실은 해체해야 한다. 아버님 약속을 실천하라"고 지적하자 이같이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국조특위의 청문회에 출석하기 위해 6일 오전 9시20분쯤 국회에 도착해 방문증을 패용한 뒤 청문회장으로 가고 있다. /최준호기자 junho-choi@lawtv.kr

미래전략실은 삼성그룹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해온 조직이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 등 삼성을 둘러싼 일련의 의혹 배후에 미래전략실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삼성그룹에는 과거 구조조정본부가 발전한 미래전략실이 있다"며 "미래전략실은 그룹을 총괄하고 있으며, 갤럭시노트7 사태 원인에도 미래전략실이 있고, 삼성물산 합병도 미래전략실이 추진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삼성그룹 의사 결정은 이사회가 아닌 미래전략실에서 이뤄지며, 미래전략실은 막강한 권한 행사를 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한다"며 "사업을 위해서 많은 경우 무리한 판단을 하게 되고, 심할 경우 불법적인 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은 이에 대해 "오늘 여러 의원님들로부터 미래전략실에 대한 질타가 있었고, 질문 중에 이에 대해 많은 의혹과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미래전략실은 선대 회장께서 만드신 것이고 회장께서 유지를 해온 것이라 지금 이 자리에서 조심스럽지만, 부정적인 인식이 있으면 없애겠다"고 말했다.

 

■ 삼성, SK, CJ 등 "전경련 탈퇴하겠다"... 전경련 존폐 기로

이재용 부회장은 이날 청문회에서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전경련 해체를 거듭 종용하자 "제 입장에서 해체를 꺼낼 자격이 없다. 탈퇴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오전 질의에서 하 의원이 "삼성이 전경련 해체에 앞장서겠느냐. 앞으로 전경련 기부금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하라"고 재촉하자 "그러겠다"고 답했다.

최태원 SK 회장과 손경식 CJ 회장도 하 의원이 전경련 탈퇴 의사에 동의하느냐고 묻자 "네"라고 답했다.

이들 그룹이 탈퇴할 경우 전경련은 사실상 존폐 기로에 서게 된다. 전경련의 연간 운영 예산은 400억원 정도로, 삼성을 포함한 5대 그룹이 내는 회비가 약 200억원이다. 전경련은 우리나라의 산업화 초기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지만, 이후 고비마다 정경유착 논란에 휩싸이면서 기업들로부터도 개편 요구가 제기됐다.

총수들은 이날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경련 해체를 반대하면 손을 들어달라"고 요구하자 전경련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의식한 듯 한동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안 의원이 재차 묻자 총수 9명 가운데 김승연, 신동빈, 조양호, 정몽구, 구본무 회장 등 5명이 손을 들었다.

구본무 LG 회장은 "전경련은 헤리티지 단체처럼 운영하고 친목단체로 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경련은 2011년에도 미국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싱크탱크로 만들어야 한다는 정치권의 개편 요구에 모델을 연구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결과를 내놓지 않았다.

전경련 회장인 허창수 GS 회장은 이와 관련해 "불미스러운 일에 관여됐다는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체를 검토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제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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