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및 유숙에 관한 숙주의 채권"... 암호보다 어려운 민법 조문
교육부 법제담당관도 모르는 '숙주'(塾主)... '교육기관의 장' 뜻해
일본식 표현 '의숙(義塾)'에서 유래한 용어... 이제는 좀 바꿉시다

[법률방송]

교육부가 어제 수시와 정시 통합을 골자로 한 '2022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안'을 발표했습니다. 

논란이 분분한데요.

"무슨 정권만 바뀌면 대입제도를 바꾸느냐, 학생이 실험용 모르모트냐" 하는 볼멘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대입제도는 모르겠지만, 꼭 바꿔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정부 관련 당사자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어렵고 황당한 법률용어입니다.

법률방송 연중기획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오늘(14일)은 '숙주(塾主)'입니다. 

석대성 기자입니다.

[리포트]

서울 강남의 한 쌀국수집입니다.

쌀국수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쌀국수와 함께 나오는 '숙주(叔舟)'입니다.

쌀국수집 주인 입장에선 '숙주' 하면 나물 숙주를 떠올리는 게 어쩌면 당연합니다.

[주우진(42) / 서울 강남구 역삼동]
"저희 쓰는 숙주밖에 모르겠습니다. (다른 뜻은) 연상이 안 되는데요."

이 '숙주'라는 말이 교육 관련한 우리나라 민법 조항에도 나옵니다.

당연히 쌀국수의 숙주는 아닙니다.

채권의 '1년의 단기소멸시효'를 명시한 민법 제164조 4호입니다.

"학생 및 수업자의 교육, 의식 및 유숙에 관한 교주, 숙주, 교사의 채권은 1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교육'까지는 알겠는데 '의식 및 유숙에 관한 교주', 특히 '숙주'는 무슨 뜻과 맥락인지 짐작조차 안 됩니다.

'교사의 채권', '소멸시효' 이런 용어가 나오는 거로 미뤄 무슨 '채권'과 관련된 단어이겠거니 추정할 뿐입니다.

일단 "법전 속 '숙주'가 무슨 뜻 같느냐"고 시민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김명주(26) / 서울 강동구 길동]
"숙주요? 숙주... 나물... 아, 숙주? 삼국지에서 들어본 거 같은데..."

[김수아(19) / 경기 일산시 마두동]
"숙주? 나물..."

[김종곤(23) / 서울 강남구 역삼동]
"처음 듣는데... 그냥 먹는 거 말고는 잘 모르겠어요. 숙주... 그 기생할 때 하는 숙주 그런 거 말고는 딱히..."

대부분의 시민은 민법에 나오는 숙주를 기생 식물에 영양을 공급하는 '숙주(宿主)' 또는 녹두채 나물의 한 종류인 '숙주(叔舟)'라고 답변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민법 164조 4호에 명시된 '숙주(塾主)'는 '글방 숙(塾)' 자에 '주인 주(主)' 자를 씁니다.

순우리말 '글방'은 '학교'를 말합니다.

즉 '숙주'는 학교, 그러니까 '교육기관의 주인'을 말합니다.

숙주(塾主), 교육기관의 주인.

당사자인 교육부는 알고 있을까, 물어봤습니다. 

[교육부 기획조정실 관계자]
"민법이 너무 오래된 조항을 쓰고 있어서 (법제담당관도) 정확하게 지금 파악이 안 되신다고, 저희가 이거 법무부에 여쭤봐야 될 거 같은데 혹시 여쭤보고 전화 드려도 될까요."

"법무부에 여쭤보고" 한참 뒤에 전화를 건 교육부 관계자는 처음 알았다는 듯 '숙주(塾主)'의 유래부터 설명했습니다.

[교육부 기획조정실 관계자]
"옛날에 학교를 '의숙(義塾)'이라고 했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지금 해석하기에는 (숙주는) 학교 같은 교육기관의 설치·경영자, 주인... 워낙 예전 용어이다 보니까..."

의숙(義塾)은 '공익을 위해 의연금을 모아 세운 교육기관'이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자면 휘문의숙, 무슨 의숙 등 일제 때 세워진 학교 등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교육부 기획조정실 관계자]
"(민법) 제정 당시에 만들어진 조항이거든요. 말씀해주신 조문은 개정된 적이 없다고 나오거든요. 이때야 거의 교육하는 데가..."

대한민국 민법이 제정·공포된 건 1958년, 60년이 넘도록 일제 때 '의숙'에서 유래한 '숙주'라는 말이 지금도 고쳐지지 않고 그대로 쓰이고 있는 겁니다.

당사자인 교육부도 이미 오래전부터 안 쓰는 법률용어 숙주(塾主).

그런데도 쉬이 바뀌지도 않고 우리나라 법률 곳곳에 끈질기게 기생하며 숙주(宿主)하고 있는 유물 같은 법률용어 숙주(塾主),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법률방송 석대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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