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방송 연중기획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일반 시민들 인터뷰했더니... "도무지 모르겠다"
‘사정을 아는 자’, ‘그 사실을 아는 자’로 바꿔야

[법률방송]

법률방송 연중기획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앞서 석대성 기자의 리포트와 김외숙 법제처장 인터뷰 보내드렸는데요. 

오늘(22일)부터 매주 화, 목요일 'LAW 투데이'는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기획을 통해, 황당한 법률용어의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그것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한 가지씩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정(情)‘, 일반적으로는 ‘사랑이나 친근함을 느끼는 마음’을 일컫는 고운 말로, 이 '정'이라는 단어를 모르시는 분은 아마 없으실 텐데요.

그러면 ‘정을 아는 자’는 무슨 뜻일까요.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일까요. 

우리 형법에 이 ‘정을 아는 자’라는 표현이 있는데, 무슨 뜻으로 쓰는지 한 번 보시죠.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장한지 기자입니다.

[리포트]

안녕하세요.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장한지 기자입니다.

최근 정부가 부정청탁이 확인된 강원랜드 입사자 226명 전원을 해고하기로 해 논란이 뜨겁습니다.

만약 부정청탁 과정에서 금품이 오고 간 경우가 있다면, 법적으로 '배임수증재'라는 혐의와 관련이 있는데요.

우리 형법에 배임수증재라는 죄가 있습니다. 화면 보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형법 제357조 1항에 배임수증재 조항이 있는데,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한 때“에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배임수증재(背任受贈財). 말이 어렵습니다. 한자를 뜯어보면 ‘임무를 위배해 재물을 주거나 받는다’입니다.

예를 들면, 오피스텔 분양업체 직원이 신청자로부터 좋은 위치에 있는 오피스텔을 골라달라는 부탁과 함께 사례금을 받은 경우 성립하는 범죄라고 보시면 됩니다.

뇌물죄의 경우 공무원이라는 특정한 신분에 있어야 죄가 성립하는데, 민간 부문에서도 부정한 청탁 등을 처벌하기 위해 만든 범죄라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배임수증재, 말이 어렵긴 하지만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배임수증재 3항에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범인 또는 정(情)을 아는 제3자가 취득한 제1항의 재물은 몰수한다”가 그 표현입니다.

‘정을 아는 자’, ‘어떤 자’라는 걸까요.

‘정을 아는 자’, 사랑을 아는 사람, 로맨티스트라는 걸까요. ‘사랑을 아는 사람이 취득한 재물은 몰수한다’. 물론 전혀 말이 되지 않는 황당한 해석입니다.

일반 시민들에게 해당 법조문을 보여주며 무슨 뜻 같냐고 물어 봤습니다. 어떤 반응들이 나왔는지 한 번 보시죠.

[백석봉(50) / 서울 성동구]
“(어떤 말 같으신지 한 번?) 모르겠는데요. (어떤 뜻 같으세요?) 모르겠는데... 범인과 아는 사람의 재산을 몰수한다? 관계있는 사람?“

유명한 과자를 연상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박지운(24) / 서울 강남구]
“아...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면 혹시 추측을 하면?) 범인과 초코파이를 아는 자의 재산을 몰수한다?”

[송유진(20) / 서울 관악구]
“잘 모르겠어요. 어... 아, 진짜 잘 모르겠어요. 음... 범인과 조금 아는 사이?”

예상한 것처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도무지 모르겠다’, ‘감도 못 잡겠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우리 형법에서 ‘정을 아는 자’, ‘정을 알고’ 등의 표현은 ‘사정을 알고’, ‘정황을 알고’, 즉 ‘그런 사실을 알고’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범인 또는 정을 아는 제3자가 취득한 재산은 몰수한다’는 말은 “범인 또는 범죄사실이나 관련 정황을 알고 있는 자가 취득한 재산은 몰수한다”는 뜻입니다.

[김춘경(60) / 서울 서초구]
“(정황이라고 하면 어떨 것 같으세요.) “그러면 조금 더 알기 쉽겠죠. 그럴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 ‘정을 알고’ 라는 표현은 지금도 별 문제의식 없이, 스스럼 없이 법정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신현호 변호사 / 법무법인 해울]
“그것은 우리만 알죠 사실은. 그런 것도 있잖아요. ‘선의의 취득이다’, ‘악의의 취득이다’ 할 때 악의의 취득이 되는 게 정(情)을 알고 취득한 것을 악의의 취득이라고 하잖아요, 민법에서. 그것도 일반 사람들은 모르죠.”

‘정을 알다’라는 표현은 일본식 표현이라는 것만 파악될 뿐, 그 유래도 뜻도 불분명합니다. 

정확히 어디서, 언제부터 유래했는지도 모르고 법전과 법정에서 무분별하게 쓰이는 ‘정을 알고’ 라는 표현.

‘정을 아는 자’ 이 말을 ‘사정을 아는 자’, 또는 ‘그 사실을 아는 자‘ 로 바꾸는 게 정말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법률방송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장한지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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