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태아 생명권 vs 여성 자기결정권 대립 가치 접근 안 돼"
"낙태죄 폐지, 범정부적 임신·출산·복지정책 차원서 풀어가야"

[앵커]

‘그래서 뭐 어떻게 하자는 거냐’ 하고 물으면 또 딱히 답하기가 애매한 것 가운데 대표적인 게 ‘낙태죄 폐지’ 논란입니다.

오늘 대한변협에서 열린 ‘2017년도 인권보고대회’에서 이 낙태죄 폐지에 대한 토론이 진행됐습니다.

낙태죄 폐지 논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사이 대안은 없는 걸까요.

정한솔 기자가 변협 인권대회 토론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대한변협의 오늘 ‘임신중절과 낙태죄 처벌’ 토론회는 임신중절 실태 보고로 시작했습니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등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선 연간 15만건 이상의 불법 임신중절이 시술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임신중절의 95% 이상이 ‘불법’ 임신중절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낙태죄로 처벌받는 경우는 극히 일부인 연간 10여건 정도로, 낙태죄는 사실상 사문화했다는 진단입니다.

[나현채 변호사 / 변협 인권보고서간행위원]

“한국의 임신중절 실태와 낙태죄 처벌 실태가 어떠한지를 인권보고서에서 보고하고 이 실태 위에서 어떤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는가...”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쪽은 우선 낙태죄가 이렇게 사실상 사문화했는데 이를 그대로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임신중절한 여성에게 죄의식만 심어주고, 심지어 상대 남성의 협박수단으로 쓰이는 경우까지 있으니 폐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김진선 /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장]

“‘나랑 만나주지 않으면 너 나랑 사귈 때 낙태했던 거를 고발하겠다.’ 사실 누가 봐도 폭력적이고 비난받을 만한 행위를 하는 것은 남성 쪽입니다. 그렇지만 법적으로는 남성이 법과 정의를 지키는 시민이고 여성이 어쨌든 범법자 신분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무조건적인 낙태죄 폐지가 능사가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키울 수 없으니 자유롭게 낙태할 수 있게 해달라’는 식의 주장은 말이 안 된다는 지적입니다.

[배인구 변호사 / 법무법인 로고스]

“낙태를 고민하지 않도록 사회 인프라를 구축할 의무가 있다 이런 것들에 대해선 모두다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낙태를 자유롭게 해주면 그러면 그런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배인구 변호사는 그러면서 ‘안전하고 건전한 낙태’를 위한 ‘국가의 책무’를 강조했습니다.

지정 병원에서만 허용되는 사유로 낙태 수술을 할 수 있도록 강제해 낙태 건수의 정확한 파악과 모니터링, 이를 통한 여성 건강과 모성 보호를 위한 국가 차원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배인구 변호사 / 법무법인 로고스]

“제가 중점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인간의 생명을 보호해야 될 의무가 있는 국가는 마땅히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야 되고 아울러서 여성의 자기결정권도 존중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권리의 대립이 아니라 국가가 생명보호 의무가 있다라는 그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낙태죄 폐지 쪽 입장도 여성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이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방법에 있어선 낙태죄를 폐지해 지금처럼 숨어서 몰래 임신중절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김진선 /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장]

“환자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기는커녕 스스로 사회적인 낙인을 의식해서 '내 건강을 지금 내가 살피는 게 맞나' 이런 식의 생각을 하면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거든요”

각론에서 일부 엇갈리긴 했지만 낙태죄 폐지 여부는 태아의 생명권이냐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냐 식으로 일도양단 결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낙태는 결국 정부의 거시적 출산정책, 나아가 복지정책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데는 참가자들 모두 인식을 같이 했습니다.

해묵었지만, 어떻게 보면 해묵어서 더 시급히 풀어야 되는 문제일지도 모를 낙태죄 폐지 논란.

변협은 오늘 토론 내용을 바탕으로 다음 주 중 ‘2017년도 인권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인데, 복지부와 법무부 등 범정부 차원의 논의와 대안 모색이 필요해 보입니다.

법률방송 정한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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