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 김외숙 법제처장 인터뷰
[일문일답] 김외숙 법제처장 인터뷰
  • 석대성 기자
  • 승인 2018.01.3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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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처는 각 행정부처의 입법 활동을 총괄·조정하고, 입안된 법률·조약·대통령령 등 법령안을 심사한다. 또 법령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법령해석, 불합리한 법령을 정비하는 법령정비 등 법제에 관한 사무를 전문적으로 관장한다.

문재인 정부의 입법 관련 활동을 총괄·지원하는 법제처의 첫 수장으로 지난해 6월 임명된 김외숙 법제처장. '문재인 변호사'의 법무법인 부산에서 1992년부터 25년간 노동·인권변호사로 일하다 법제처장으로 전격 발탁, 인권변호사에서 공무원으로 변신한 지 8개월.

김 처장은 지난 29일 법률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어렵고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법령안을 정비해 국민이 실생활에서 그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외숙 법제처장과의 일문일답이다. (리포트 "차별 법령 모두 찾아내서 손볼 겁니다"... 김외숙 법제처장 인터뷰)

김외숙 법제처장은 지난 29일 법률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어렵고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법령을 정비해 국민이 실생활에서 그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성민 기자 sungmin-kim@lawtv.kr
김외숙 법제처장은 지난 29일 법률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어렵고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법령을 정비해 국민이 실생활에서 그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성민 기자 sungmin-kim@lawtv.kr

 

-지난해 6월 법제처장 임명되고 8개월 정도 지났다. 소회는 어떤가.

▶시간이 굉장히 빨리 흐른 것 같다. 8개월이라고 하니까 "어 벌써? 그렇게 됐어?"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해야 할 많은 일들이 눈에 보인다. 그런데 "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흘렀어?" 이런 생각이 든다.

공무원 생활은 처음 해본다. 와서 기뻤던 것은 법제처가 중앙행정기관 중에서는 제일 작은 부처이고, 공무원 수도 제일 작고, 그러나 그런 만큼 또 장점이 있는 거 같다. 가족적이면서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또 우리가 하고 있는 업무 자체가 전문성을 가진 균질적인 업무이다 보니까 굉장히 마음이 합해지면 일이 잘 진행된다. 그래서 이런 공무원들과 함께 일하게 돼서 굉장히 기쁘다는 생각을 했었다.

밖에 나가서도 법체저 공무원들은 정말 법제 전문가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데, 그것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로 안에서 마음을 합해서 같이 일할 때 일이 정말 진척이 잘 되는 것, 그런 것들을 통해서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법제처장으로 임하면서 그동안 업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변호사를 하고 있던 2000년대 초에 남성 택시운전자 사건을 맡은 적이 있다. 남성은 택시 운전을 하다가 강도를 당했는데 칼로 얼굴이 난자를 당했다. 여러 번의 수술을 했지만 얼굴에 굉장히 큰 흉터들이 남아서 도저히 사회생활을 하기는 어려울 지경이 된 분이었다. 그런데 그분은 당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상으로 장애등급 판정을 12급을 받았다.

만약 그분이 여성이었다면 그 상태에서 받을 수 있는 장애등급은 7급이었다. 그래서 본인이 억울함을 느끼고 저희를 찾아오신 사건이었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해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이 바뀌었다. 그래서 얼굴에 생긴 흉터를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던 그 시행령이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지 않고 '사람'으로 바뀌는 그런 일이 있었다.

그 후에 지난해, 그러니까 14년이 지난 거다. 지난해 법제처가 화재보험법에 동일한 내용을 개정을 했다. 그때 느낀 생각은 "이렇게 동일한 내용인데도 연동돼서 고쳐지지 못하고 산재돼 있는 법령들이 많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법령을 총괄하는 전문기관으로서 '법제처가 해야 될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올해 법제처 주요활동 계획은 무엇인가.

▶우선 첫 번째로는 차별적인 법령을 정비하는 사업을 3개년 로드맵을 세워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법제처는 독학사와 학점은행을 통해서 취득한 학위를 정규대학 졸업자가 취득한 학위와 차별하는 규정들을 정비하는 작업들을 했다. 또 과도하게 결격사유를 둠으로써 재기를 어렵게 하는 그런 부분들을 정비하는 일들을 했다.

올해는 복지라든지 노동이라든지 여성, 사회적인 약자와 관련된 분야의 법령들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고 차별적인 법령 정비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내년에도 또 분야별로 그런 일들을 하려고 한다.

두 번째로는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말씀드리고 싶다. 국민들을 대상으로 법령이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를 조사한 적 있다. 용어가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게 대부분인 거 같다.

법령 자체를 어렵게 느껴지게 만드는 그 어려운 용어들, 그리고 차별적인 용어들, 일본식 용어들 그런 부분들을 국민들이 알기 쉽게 고치는 작업들을 계속해가려고 한다.

이런 작업뿐만 아니라, 사실 용어만 고친다고 해서 쉽게 다가가진 않을 것이다. 용어를 고치는 것과 더불어 문장 자체도 이해하기 쉽게 고치는 작업들을 같이 할 예정이다. 특히 분야별로 굉장히 전문적인 용어들이 있다. 그 용어들을 어떻게 하면 좀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은 관계 부처와 함께하고 있다.

또 국민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서 국민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자 한다. 앞서 말씀드렸던 차별 법령을 정비하는 것이나 또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에 있어서는 국민의 의견을 듣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것을 위해서 '차별법령 신고센터'를 애플리케이션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 어려운 용어 신고센터도 설치했다. 그런 과정들을 통해 국민들이 어렵게 느끼시는 것, 부당하다, 불합리하다, 이렇게 느끼시는 부분들을, 그 의견들을 귀 기울여 듣고 정비함으로써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그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법제처 올해의 사업이다.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문재인 정부 2년차이기 때문에 국정과제로 수행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정책들이 법령 안에 담겨야 하는 아주 중요한 해이기도 하다. 그래서 국정과제 입법들이 사실상은 올해 마무리가 되어야 하는 중요한 해이기도 하다. 법제처는 각 부처와 협업해 중요한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또 법률이 아니라 하위 법령을 통해서 바뀔 수 있는 부분들을 신속하게 마련할 것이다.

 

-법제처장으로 있으면서 "이것만은 꼭 완수하겠다" 하는 것은 무엇인가.

▶말씀드린 것처럼 차별적인 법령을 정비하는 것, 그래서 국민들이 현실에서 "바뀌었구나"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제가 목표로 삼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법제처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 중에 '법령해석'이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이다. 적극적인 법령해석을 통해서 국민들이 현실에서 제약으로 느끼거나, "아 이것은 부당하다"라고 느끼는 부분들을 바로바로 해소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법령해석을 할 것이다. 이를 통해서 국민들의 권익이 구제되고 향상이 되도록 애쓰겠다.

 

-변호사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저는 공업도시인 포항에서, 고등학교까지 포항에서 살았다. 포항이라는 도시가 제게 준 큰 영향 중의 하나는 '커서 사회적 약자들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라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저희 집안도 그랬다. 공장 노동자들의 생활을 어려서부터 쭉 봐왔기 때문에 이분들의 애로사항을 알고 있었고, 이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이 되려면 법률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법학을 공부하게 됐고, 또 사법고시를 공부하게 됐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나서는 변호사가 되어서 실제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같이 함께함으로써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법원이나 검찰로 가게 되면 주어진 일들을 하는 것이고 변호사는 자유업이다. 찾아가면서 일할 수 있는 부분이어서 그런 점들이 저한테는 굉장히 크게 다가왔고, 그래서 노동변호사가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당시 부산에서 노동·인권변호사로 유명해서 찾아간 건가.

▶"노동변호사로 살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보니까 혼자서, 제가 20대 중반, 중후반 정도 되니까 혼자 개업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이미 유명한 분들을 그 무렵에 찾아갔다.

유명한 분들이라고 하면 지금 서울시장이신 박원순 변호사님, 성남시장이신 이재명 변호사님, 또 대통령이신 문재인 변호사님 등이 있었다. 그런 여러 유명한 분들이 계셨다. 그 당시에 변호사 활동을 하던 분들, 그런 선배님들한테 가서 일을 배우면서 노동변호사, 인권변호사가 돼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서울로 안 올라오고 부산으로 갈 생각을 했다.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시골 출신이다. 그래서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나서도 시골에 가는 것에 대해서는 별 부담이 없었다. 서울에 있으면서 사법연수원 시절에도 무료 법률상담 활동을 했다. 그때 보니 지역에서 아주 사소한 것도 물으러 서울로 오신 분들이 계셨다. 그래서 그런 분들을 위해서는 시골에, 지역에 오히려 변호사들이 많이 가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저처럼 시골 출신들은 시골에 가는 것에 대한 부담이 별로 없으니까, 서울에서만 계속 계셨던 분들은 지역으로 가는 것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도 있고, 부담도 있을 텐데 저는 그런 면은 없었기 때문에 용감하게 갈 수 있었다.

 

-변호사 활동 당시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인가.

▶저는 92년에 변호사를 시작했다. 92년에는 제가 맡았던 모든 사건들을 다 패소했었다. 그런데 93년에는 제가 맡았던 모든 사건들을 승소를 했었다. 그 후에는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변호사로서 만 25년 몇 개월을 변호사 생활을 했었다.

93년이 그래서 저한테는 전부 승소한 해로 기억이 되기 때문에 굉장히 기억할 만한 사건들이 여러 건 있었다. 대부분은 해고 사건이었다. 노동조합 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이런저런 사유로 해고를 당하신 분들이었다. 그분들을 맡아서 변론하는 과정에, 그 당시만 해도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조합 활동에 대한 거부감이 많았기 때문에 조합 활동을 안 한 분이라면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징계는 하지 않았을 것을 굉장히 극단적인 징계를 하는 경우들도 있었기 때문에 징계 절차상의 하자나 징계의 양정에 있어서 과중했다는 점들을 중심으로 변론을 해서 승소판결을 얻고 그분들이 구제돼서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했던 사건들이 있었다. 그런 사건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때 지역으로는 창원, 마산, 부산, 경주, 포항 이런 지역의 기업체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다. 그런 부분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또 변호사를 오래 하면서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아동학대와 관련된 사건들도 많이 맡아서 했다. 제가 했던 사건들 중에 가정폭력의 피해자를 도와서 민사사건, 가사사건, 형사사건 많이 하기도 했었는데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

예컨대 오랜 세월을 집안에서 가정폭력을 당하다가 어느 날은 우발적으로, 가해자를 살해하게 되는 그런 사건들이 몇 건 있었다. 세상에 알려지게 될 때는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살인자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형사 사건들을 맡아서, 물론 이제 사람을 죽인 것이 잘된 일이다, 이런 얘기가 아니다. 그게 아니고 가정폭력의 피해자로서 왜 이런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 하는 점을 세상에 알리고 이분들에 대해서 법률적인 조력을 해주는 것, 그래서 형사사건에 있어서도 아주 극단적인 형을 받거나 하지 않고, 이분들에 대해서 충분히 법원에서도 이해를 하고 형을 정함에 있어서도 충분히 고려가 될 수 있도록 했던 그런 사건들이 좀 기억에 많이 남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일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문재인 대통령은 제가 제일 존경하는 법조인이다. 변호사로 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 배울 점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가장 본받고 싶은 점은 경청하는 능력, 공감하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의뢰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얘기를 굉장히 경청한다. 그래서 결국은 그렇게 경청함으로써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 과정에서 의뢰인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는 경우도 있다.

문재인 변호사님이 그걸 들어주고, 또 제안을 하고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 소통이 되니까 의뢰인 스스로가 "아 이것은 이렇게 해야 되겠구나"라는 스스로의 해결책을 찾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 신뢰 관계가 형성이 되기 때문에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해서 훨씬 더 문제가 잘 해결된다.

또 설령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변호사가 사건을 맡아서 하다 보면 패소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억울함은 이미 해소가 되고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다음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건 변호사로서 굉장히 중요한 능력이라고 본다. 그런 건 그냥 단지 변호사를 오래 한다고 해서 누구나가 채득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데 그런 점들이 옆에서 지켜보면서 굉장히 놀라웠고 꼭 닮고 싶은 모습이었다.

석대성 기자 daeseong-seog@law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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