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댓글 원세훈 1심 선거법 무죄... "정치에 관여했지만 대선엔 개입하지 않았다"
김동진 부장판사, 법원 내부게시판에 "지록위마의 판결... 법치주의는 죽었다” 글 게시
고 김영한 민정수석 비망록 "김동진 직무배제 해야"... 법원, 메모 작성 나흘 뒤 징계 청구
대법원, 김동진 부장판사 정직 2개월 징계... 현직 부장판사, 靑게시판에 '징계 사면' 청원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으로 진실을 농락하고 제멋대로 권세를 휘두르는 자, 또는 그런 상황을 일컫는 말입니다.

오늘(25일) ‘앵커 브리핑’은 지록위마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현직 부장판사가 어제 청원 글을 올렸습니다.

청원 제목은 ‘김동진 부장판사에 대한 부당한 징계의 사면을 청원드립니다’입니다.

김동진 부장판사는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댓글 관련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에서 1심 재판부가 “댓글 공작을 지시해 정치에는 개입했지만 선거 개입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공직선거법 위반 무죄 판결을 내리자 법원 내부 통신망에 글을 올렸습니다.

글 제목은 ‘지록위마의 판결... 법치주의는 죽었다’ 입니다. 

이 글에서 김동진 부장판사는 “이것은 궤변이다. 헛웃음이 나온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다. 고법 부장판사 승진심사를 목전에 앞둔 재판장의 입신영달에 중점을 둔 사심 가득한 판결” 등의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해당 판결을 비판했습니다.

김동진 부장판사의 이 글은 법원 안팎에 일대 평지풍파를 일으켰고, 글은 삭제되고 김 부장판자는 법관에 대한 징계 최고 수위인 정직 2개월의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2014년의 일입니다.

반전은 2017년 국정농단 수사가 시작되면서 시작됩니다.

고 김영한 민정수석이 지난 2014년 9월 22일 작성한 비망록을 보면 김기춘 비서실장을 뜻하는 ‘장(長)’ 이라는 표시 옆에 ‘비위 법관의 직무배제 방안 강구 필요(김동진 부장)’ 이라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이 메모 작성 나흘 뒤 당시 김동진 부장판사가 속해있던 수원지법은 김 부장판사가 “법관의 품위를 손상하고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렸다”며 대법원에 징계를 청구했고, 대법원은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내리며 고 김영한 수석 비망록대로 김 부장판사를 ‘직무 배제’ 했습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습니다.

판사 블랙리스트 추가조사위 조사 결과에 나온 원세훈 전 원장 항소심 공직선거법 위반 유죄 판결과, 이에 대한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의 법원에 대한 “불만” 표시와 어떻게 어떻게 해달라는 “희망”.

결과적으로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부와 선거법 위반 무죄 취지 파기환송, 우 전 수석의 ‘희망’대로 된 대법원 상고심. 다 우연일 수 있습니다.

다만 법원행정처가 원 전 원장 항소심 재판부 동향을 파악해 청와대에 보고한 점, 항소심 재판 결과가 청와대 뜻대로 나오지 않자 청와대에 재판부 진의를 상세히 설명한 점, 법원행정처가 나서 항소심 판결의 ‘법률적 오류’를 찾아내려 한 점,

이 모든 것들의 이면에 있는 대선 정당성 확보와 상고법원 설치를 고리로 한 청와대와 대법원 법원행정처와의 ‘거래’ 정황은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대법원이 청와대의 시녀냐’는 비난와 비아냥에 대한, ‘청와대든 어디든 우린 연락 받은 거 전혀 없다’는 대법관 전원 명의의 유감 입장문 발표. 

유감을 표명해야 했던 건 ‘연락 받은 게 없다는데 왜 오해하냐’가 아니라 법원행정처의 부적절한 처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켜야 할 건 ‘대법관의 자존심’이 아니라 흔들렸던 ‘법원과 법관의 독립’이 아닐까 합니다.

김동진 부장판사가 ‘지록위마 판결’ 글을 올려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은 2014년, 그 해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지록위마’ 였습니다.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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