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범죄, 시간 지나면 소멸시효 완성으로 배상 청구도 못해"
"우리 법원, 국가범죄 소멸시효 지나치게 좁고 제한적으로 해석"
“국가범죄 소멸시효 폐지하고, 피해자 구제에 우선순위 둬야”

[앵커] 검찰이나 국정원 같은 국가기관이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 경우 국가의 책임 범위는 어디까지, 또 언제까지 일까요. 관련 토론회가 오늘(14일) 국회에서 열렸습니다. ‘LAW 인사이드’ 장한지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장 기자, 오늘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 어떤 토론회인가요. 

[기자] 네, 민청학련 사건 등으로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유명을 달리한 고 김근태 의원의 부인 인재근 의원, 그리고 검사 출신 금태섭 의원 등 5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주최하고 민주주의법학연구회와 민변 주관으로 열린 토론회인데요.

‘국가범죄와 가해자의 책임 - 가해자 면책 법리의 확대, 무엇이 문제인가’ 라는 제목의 토론회입니다.
  
[앵커] 무엇이 문제라고 하던가요. 

[기자] 네, 일단 국가범죄부터 정의하면 국가기관, 즉 국가가 가해자인 모든 범죄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자면 고문으로 만들어 낸 조작 간첩 사건 같은 걸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요.

그런데 국가범죄는 그 성격과 특성상, 당대 정권에서는 범죄 행위를 밝혀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추후 세월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고 민주화가 되고, 한마디로 ‘좋은 시절’ 와야 그때서야 국가기관이 저질렀던 범죄 행위들을 밝혀낼 수가 있는데요. 문제는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국가범죄를 밝혀내기도 쉽지 않고, 밝혀낸다고 하더라도 이른바 ‘소멸시효’가 완성돼서 배상 청구가 어렵다는 겁니다.

[앵커] 소멸시효요. 

[기자] 네, 우리 민법은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경우, 법적 안정성 등을 이유로 권리 침해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일정 기간이 흐르면, 소송을 내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걸 통상 ‘소멸시효가 완성됐다’ 이렇게 표현하는데요.

우리 법원이 국가범죄 만의 특성을 인정하지 않고, 이 소멸시효를 너무 좁고 제한적으로 해석해서 국가범죄에 대한 배상 청구와 실행에 제동을 걸고 있다, 이에 대한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오늘 토론회의 골자입니다.

[앵커]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렸길래 이렇게 도마에 오른 건가요.

[기자] 네, 국가범죄와 관련된 소멸시효는 지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완성됐는데요. 

2013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사건의 소멸시효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결정일로부터 3년 이내’라고 못 박았습니다.

이 기간이 경과하면 아예 소송 자체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단입니다.

같은 해 12월 대법원 1부는 조작 간첩 사건의 경우, 형사 재심 무죄 확정일 또는 형사보상 결정 확정일로부터 6개월 내에 손해배상 소송을 내야 한다고 소멸시효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앵커] 6개월이면 상당히 짧아 보이긴 하네요.

[기자] 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사건 관련 유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 그리고 가깝게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피해자 강기훈씨가 지난 7월, 당시 수사검사였던 강신욱 전 대법관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등이 모두 기각됐는데요.

“불법행위는 인정되지만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것이 법원 판단입니다.

[앵커] 당사자들 입장에선 상당히 억울한 측면이 있겠네요.

[기자] 네, 관련해서 오늘 토론회 주최자 가운데 한 명인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정부에서 사법부는 국가범죄로 인정된 사건들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나 형사보상 청구 및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재판에서 그 책임을 제한하거나 면제하는 논리를 양산하였다” 이렇게 지적했고요.

인재근 의원은 “국가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사법부의 태도는 피해자들에게 다시 또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며 “명백한 범죄행위를 국가가 가해자라는 이유로 ‘비범죄화’ 해왔던 기존 법 제도는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앵커] 어떻게 개선하자는 건가요.

[기자] 네, 과거사 사건과 국가범죄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소멸시효를 적용하면 안 된다는 게 오늘 토론회 요지입니다. 

이른바 ‘법적 안정성’도 중요한 가치지만, 그보다는 국가의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인한 피해의 경우엔 국가 책임을 폭넓게 인정하고 피해자 구제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것이 오늘 토론회 참가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입니다.  

나치 독일 시절 저질러진 국가범죄에 대한 독일 정부의 입장과 대응이 대표적인데요. 국가범죄엔 민사적으로든 형사적으로든 소멸시효가 없다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 이기도 합니다.

[앵커] 네, 토론회 주최자들이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니만큼 입법을 통해서든, 우리 법원의 전향적인 판결을 통해서든, 뭔가 법제도 정비가 필요해 보이긴 하네요.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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