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바게닝, 검찰 수사 협조 대가 형량 깎아주는 제도
영미법 체계 전통... 미국 등 수사 효율 위해 적극 활용
한국, 공식적으로 플리바게닝 없어... 관행적으로 시행
대검 검찰개혁위원회, 플리바게닝 도입 공식 논의 착수

[앵커]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기업 후원금을 강요한 최순실씨 조카 '특검 도우미' 장시호씨에게 법원이 검찰 구형량보다 1년 더 많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한 것을 두고 이런저런 뒷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검찰에서는 "법원이 이렇게 나오면 누가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냐"는 볼멘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오늘(7일) '카드로 읽는 법조'는 피의자가 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대가로 기소 단계에서부터 형량을 깎아주는 '플리바게닝' 제도 얘기해보겠습니다.

석대성 기자입니다.

[리포트]

“이모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과 '차명폰'으로 수시로 통화했다“
            
특검과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 '특검 도우미', '진술 자판기', '국민 호감' 등의 별명까지 얻었던 최순실씨 조카 장시호씨.

최순실씨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손바닥으로 하늘을 그만 가리라"고 면박을 줬을 정도로, 최순실씨가 "집안을 팔아먹고 있다"고 격분했을 정도로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했습니다.

검찰은 이런 장시호씨에 대해 "대통령과 최순실의 내밀한 관계 등을 상세히 진술해 실체적 진실 규명에 기여한 점을 참작할 필요가 있다"며 징역 1년 6개월의 '선처 구형'을 합니다.

법원은 그러나 이례적으로 검찰 구형량보다 1년 더 많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장시호씨를 법정구속합니다.

"범행 즈음에 가장 이득을 본 사람이 장시호다. 피고인이 국정농단 수사나 재판에 적극 협조한 점을 감안해도 죄책이 중해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법원 양형 사유입니다.
 
장시호씨는 "머리가 하얘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잠시 후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라며 "법정구속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호소했지만, 법원은 "재판부 합의가 끝났다"며 그대로 법정구속을 집행했습니다.

장시호씨가 구형량보다 더 높은 형이 선고되고 법정구속까지 된 데 대해 검찰은 대놓고 반발하진 않았지만 "의아하다"며 에둘러 불만을 내비쳤습니다.

관련해서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검찰에 협조하면 오히려 더 피해가 크다는 시그널. 장시호 법정구속으로 특검은 모욕을 당했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법원 관계자는 "검찰이 장씨를 너무 봐줬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절대 과한 판결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법원이 검찰의 이른바 '플리바게닝'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 법원 안팎의 중평입니다.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은 형사 사건 피고인의 '답변'과 '진술'을 뜻하는 '플리(Plea)'와 '협상'을 의미하는 '바게(Bargaining)' 두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쉽게 말해 피고인과 검찰이 자백과 증언을 고리로 형량을 깎아주는 걸 말합니다.

우리말로는 '유죄협상제도' 또는 '사전 형량 조정제도'라고 불립니다.

플리바게닝은 배심제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영미법 계열 전통입니다.

미국은 수사 편의와 비용 등을 절감하기 위해 '플리바게닝'을 적극 활용하고 있고, 대륙법계 본산인 독일도 재판 사후에 형사처벌을 면제하거나 감경하는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내년 6월 도입할 예정인데 '형사 사법의 대변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플리바게닝' 제도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검사가 재량으로 기소 여부와 적용 혐의를 결정하는 '기소편의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기소권을 검사가 독점하고 있어 관행적으로 플리바게닝 제도가 활용돼온 게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관련해서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는 어제 플리바게닝 도입 여부에 대한 공식 논의에 착수했습니다.

"검사 권한 남용 방지 차원에서, 현행 기소편의주의가 아닌, 일정한 혐의 요건이 성립하면 반드시 기소를 해야 하는 기소법정주의를 도입할 경우, 검찰과 사법부 부담 해소 등 차원에서 플리바게닝 도입도 논의 대상에 올려놓았다"는 것이 검찰개혁위원회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피의자의 자백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국내 수사 관행상 강압 수사 등 인권 침해 우려가 있다"는 주장과 "뇌물·마약·조직폭력 등 사건에서 이미 암묵적으로 플리바게닝이 이뤄지고 있어 합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

플리바게닝 도입에 대한 찬반 의견은 뚜렷하게 대립합니다.

"효율적이고 신속한 수사를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과 "사법 정의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

해묵은 논란 플리바게닝.

관행과 사법 정의, 명분과 명분 사이.

검찰개혁위원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됩니다.

법률방송 '카드로 읽는 법조' 석대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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