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심, 경비원 해고 용역업체 손 들어줬지만... 대법원, 파기환송
용역업체 근로계약서, 경비원 '자동 해고' 독소조항이 관례처럼 돼
법률구조공단 "용역업체, 경비원 '을' 지위 이용 불공정 계약 강요"

‘오늘의 판결’, 우리 사회 대표적 약자, ‘을’로 꼽히는 아파트 경비원 얘기입니다.

아파트와 경비원을 보내주는 용역업체 사이 위탁관리 계약기간이 끝났습니다. 이 경우 경비원이 아파트에서 해고되는 건 논외로 하더라도 경비원과 해당 용역업체와 맺은 고용계약도 자동 종료되는 것일까요.

즉, 경비원은 아파트에서도 일자리를 잃고 용역업체에서도 해고되는 것일까요.

지난 2015년 말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업한 박모씨는 단 한 번의 결근도 없이 성실하게 일했지만 석 달 간의 수습 계약기간 직후 용역업체에서 잘렸다고 합니다.

박씨가 용역업체와 체결한 계약서에는 “근로계약 기간과 상관없이 용역업체와 아파트 사이의 계약이 끝나면 근로계약이 종료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습니다.

전국의 아파트와 빌딩 등 경비원 상당수의 고용계약서엔 이 같은 ‘자동 해고’ 조항이 일종의  관례처럼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아파트 경비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박씨는 어떡하든 다시 취업하기 위해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해고무효 소송을 냈습니다.

1, 2심 법원은 그러나 모두 고용계약서 상의 해당 조항을 이유로 박씨의 복직이 불가능하다고 판결했습니다. “돌아갈 직장이 없어졌다”는 게 1, 2심 법원 판단입니다.

법원은 아파트와 용역업체 사이의 계약이 끝나는 순간, 경비원과 용역업체 사이의 계약도 자동 종료되는 것으로, ‘자동 해고’ 조항이 유효한 것으로 본 겁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오늘(4일) 박씨가 용역업체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박씨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습니다.

“용역업체와 아파트의 계약이 종료됐더라도 박씨와 업체 사이의 근로관계가 당연히 종료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단입니다.

"근로계약서에 적힌 ‘용역업체와 아파트의 계약에 따라 근로계약이 종료될 수 있다’는 조항은 박씨의 정당한 ‘당연퇴직 사유’로 인정할 수 없다”고 대법원은 설명했습니다.

“용역업체들이 그동안 경비원의 열악한 지위를 이용해 자동해고 조항을 두고 퇴직금 없는 3~6개월 초단기 근로계약 등 불공정한 계약을 강요해 왔다”는 것이 박씨 소송을 대리한 법률구조공단 최봉창 변호사 말입니다.

오늘 대법원 판결은 경비원과 용역업체 사이에 만연한 ‘마음대로 계약서’ 작성과 ‘고무줄 해고’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법원은 판결로 세상을 유지할 수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상식과 원칙에 부합하는 전향적인 판결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늘의 판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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