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드릴 의무가 있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오늘(27) 취임식에서 김종삼 시인의 장편(掌篇) 2’ 라는 시를 낭독했다는 얘기, 앞서 장한기 기자 리포트에서 전해 드렸는데요.

장편(掌篇)손바닥 만한 크기의 작품이라는 뜻으로, 매우 짧은 산문을 이르는 문학 용어입니다.

'장편 2', 시 전문은 이렇습니다.

 

조선 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 변 10 전 균일상(均一床) 밥집 문턱엔

거지 소녀가 거지 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아버지의 생일이라고

10 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조선 총독부로 상징되는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절, 시절만큼이나 암울하고 암울한 맹인 걸인을 아비로 둔 거지 소녀, 맹인 거지 부녀, 그 삶이 어땠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 신산하면서도 빛이라곤 한 점도 없을 것 같은 삶, 시인은 그 암울함 가운데서도 따뜻한 사랑과 희망을 봅니다.

너무도 당연한 맹인 거지 부녀에 대한 음식점 늙은 주인의 문전박대, 소녀는 아비 생일이라고 음식점 주인에게 ‘10전짜리 두 개를 보여줍니다.

아비 생일이다. 오늘은 우리도 손님이다’ 라는 거지 소녀의 ‘10전 두 개’. 애틋하고 또 애틋합니다.

시를 낭독하고 이진성 헌재소장은 헌재 가족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주인은 고단한 삶이지만, 의연하게 살아가시는 우리 국민입니다. 우리는 헌법재판소의 관리자에 불과합니다. 우리에게는 이 기관을 맡겨주신 국민을, 이롭게 하여드릴 의무가 있습니다. 그 분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고, 눈물을 닦아드릴 의무가 있습니다."

 

이진성 헌재소장은 그러면서 진정성정의’, ‘헌법을 얘기합니다.

 

"'궁즉통(窮則通·궁하면 통한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진즉통(眞則通·진실하면 통한다)이라 바꾸어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실한 마음으로 진정성 있게 다가간다면, 국민들께서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물방울 하나가 강을 만들지는 못해도,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이고 모여, 큰 강을 만들어냅니다. 헌법재판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성실이 모여,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의가 이루어지는,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습니다.

헌법이 말하는 성실의무란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사랑하는 헌법재판소 가족 여러분의 가정에 언제나 건강과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진성 헌재소장이 김종삼 시인의 장편(掌篇) 2’라는 시를 공개 장소에서 낭독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5년 전인 20129, 헌법재판관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에도 이진성 당시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이 시를 낭독했습니다.

이진성 헌재소장은 지난 22일 헌재소장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김종삼 시인의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라는 시를 낭독했습니다. 이런 시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물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이진성 헌재소장 후보자는 시를 낭독한 뒤 헌재가 우리 주변에 평범하지만 시인처럼 사는 사람들의 눈물과 아픔을 보듬어주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를 낭독했다고 말했습니다.

장편 2’. 5년의 터울을 두고 같은 시를 낭독한 만큼 즉흥적이거나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시를 낭독한 건 아닐 겁니다.

오늘 취임사에서 이진성 헌재소장은 헌재 구성원들에게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합리적인 이성인간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강조했습니다. "헌재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드릴 의무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따뜻한 시인의 가슴과 냉철한 법률가의 머리.

이진성의 헌재가 맹인 거지 부녀의 눈물과 아픔까지 보듬어 줄 수 있는, 국민의 권리와 자유, 헌법 수호의 진정한 보루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라봅니다.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