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 마주보지도 못한 '30년 우정'... 진경준 전 검사장과 김정주 넥슨 대표

김소희 뉴스본부 기자

검찰 창설 이후 68년 만에 최초로 현직 검사장 신분으로 구속 기소되는 오명을 쓴 진경준(48·사법연수원 21기) 전 검사장의 뇌물 등 혐의에 대한 5차 공판이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이날 공판은 김정주(48) 넥슨 대표가 진 전 검사장에게 건넨 금전과 차량 등이 '우정의 선물'인지 '뇌물'인지를 파악하기 위한 증인 심문으로 진행됐다.

증인으로 출석한 이는 김 대표의 중학교 동창이자 진 전 검사장과는 고교 동창인 변호사 김모씨였다. 김씨는 고교 재학 시절 두 사람을 서로 소개시켰다.

김씨는 김 대표와 진 전 검사장의 관계를 '영혼이 통한다'는 의미의 '소울메이트'라고 지칭했다. 김 대표에게 진 전 검사장은 '유일한 친구'였다는 증언이다.

김씨는 "정주는 음악을 전공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예민하고 변덕이 심했다"며 "나중에 정주가 경영하는 넥슨이 잘 나가면서 정주의 잘난척이 심해졌고, 그 때문에 중학교 동창들은 정주를 멀리했지만 경준이만 정주를 잘 받아줘서 정주가 경준이에게 많이 의지하는 사이였다"고 설명했다.

진 전 검사장 측 변호인 역시 두 사람의 '30년 우정'을 강조했다. '소울메이트' 사이에서 오간 금전 거래이기에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다는 취지에서다. 

변호인은 창업을 준비하던 김 대표가 일찍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사 생활을 하면서 친구들을 만나면 서슴없이 술값을 계산하는 진 전 검사장이 고마웠고, 그렇기 때문에 함께 여행을 여러 차례 갔다 오고, 서로의 술값을 대신 계산해 주었으며, 진 전 검사장의 부친상 소식에 일본에 있던 김 대표가 한달음에 달려와 밤을 새가며 위로해주었다고 두 사람의 '우정'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 우정의 결과는 참혹했다. 진 전 검사장은 김 대표로부터 주식·자동차·해외여행 경비 등 9억5천만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 7월29일 구속 기소됐다. 김 대표 역시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특히 두 사람은 지난 3월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진 전 검사장의 재산을 공개한 이후부터 검찰 수사가 시작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말맞추기를 시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는 진 전 검사장의 재산 형성 과정을 조사하는 공직자윤리위원회에 거짓 소명서를 냈다는 사실이 드러나 더 큰 논란이 일었다.

'소울메이트' 두 친구는 그리고 법정에서 만났다. 김 대표는 수의를 입은 진 전 검사장을 마주해야 했다. 김 대표는 앞서 지난달 20일 열린 3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언젠가 경준이가 공직을 그만두면 함께 일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고, 정말 친한 친구였다"며 "(돈을 요구하고 주는 관계로) 변해가는 게 아팠고, 이런 일이 불거지고 나서 친구로서 더 단도리를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이날 증인석에 앉은 김 대표는 증언을 하면서도 괴로운 듯 얼굴을 두손으로 감싸거나 눈물을 손바닥으로 훔쳤다. 5차 공판에서도 김 대표는 눈을 감거나 허공을 바라보는 등 진 전 검사장을 마주보지 못했다.

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를 마주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승자박이다. 자칫 친구도 잃고, 도덕적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검찰은 진 전 검사장과 넥슨의 의혹에 대해 공소시효를 떠나 수사를 통해 실체를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막다른 길에 선 30년 우정의 두 사람, 세간의 의혹부터 해소시켜 주는 것이 우정을 다시 회복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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