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건으로 돌이켜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4년 패션

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최순실 사건 바람에 새삼 박근혜 패션이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동안 ‘패션 외교’  ‘색깔 외교’  ‘한복 홍보’ 심지어 ‘창조 패션’이라고까지 입술에 침을 발라가며 찬양 일색하던 온갖 언론들이 이제 와서 “왠지 좀 이상하다 했더니, 그게 모두 최순실이 작품이었어? 그러니까 그렇지! 감히 대통령 옷을 일개 동네 아줌마가…!” 식의 통탄을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는 고작 그게 무슨 대단한 범죄라도 되는 양 오두방정을 떨고 있다.

필자는 박 대통령 취임식 때의 복장과 매너, 그리고 대통령의 품격과 국격에 대해 잘못되고 있음을 지적했었고, 지금까지 거의 매일매일 대통령의 매너에 대해 지적해왔었다.

돌이켜보는 것조차 역겨울 만큼 천박한 대통령 패션을 다시 거론하고 싶은 마음 없지만, 그저 한 치 앞밖에 못 보는 언론을 위해 그간 국격을 떨어뜨린 중대한 '패션 외교' 사진 몇 장만 살펴보기로 하자.

 

■ 신분의 변화를 보여주지 못한 첫 행보

2013년 2월 25일 취임식 아침 일찍 자택을 나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복장이 문제였다. 언뜻 보기에도 시장 보러 가는 동네 아줌마 같은 복장이다. 패딩이라니! 누비이불 같은 옷을 입다니! 점잖은 사람이 공공의 장소에서 입을 옷이 아니었다. 미적 감각이 완전 제로.

아무리 추운 날씨라 해도 캐주얼 패딩 코트 대신 정격 오버코트를 입어 비지니스 포멀 정장 차림이 표현해주는 헌법상 직분의 무게와 권위를 살렸어야 했다. 대통령으로서 대문 밖을 나서는 순간 자신의 신분이 바뀌었음을 온몸으로 공표를 했어야 했다.

 

캐주얼 차림에 태극기 배지가 아닌 의미 전달 불가능한 사적 취향의 브로치를 달고 취임식 거행. / ⓒ청와대

취임 선서를 하는 박근혜 대통령은 카키색 상의를 입어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아하? 군복색을 입어 북한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내비치기 위한 모양? 앞으로 내내 강경한 군사정책을 쓰겠다는 의지의 표현?

카키색은 평소 일반 개인에게도 무리다. 솔직히 토할 것 같은 색감이다. 거의 중국 인민해방군복을 연상시킨다. 그마저도 나중에 청와대로 들어가서는 짙은 초록색으로 바꿔 입었다. 마치 미국 PGA 그린 재킷을 연상시킨다. 도무지 무슨 메시지인지 헷갈린다.

그리고 그 카키색 상의에 나비 브로치를 달았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희망’의 메시지라고 해석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좀 부자연스럽다. 그러려면 호랑나비가 아닌 새 봄의 전령 노랑나비였어야 했다.

거두절미하고 이런 날은 브로치 대신 태극기 배지를 다는 것이 정격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나 다른 나라 대통령들은 취임식은 물론 평소에도 국기 배지를 달고 다닌다. 대통령 경선 TV토론에서는 오바마와 룸니 후보 모두 성조기 배지를 달고 나왔었다. 대부분의 국가 대통령은 공식 행사에 국기 배지를 달고 나온다. 국가 지도자들에게는 사적인 취향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는 말이다!

언론은 지나치게 대통령의 의상에 관심을 쏟아 아부성 기사를 남발했다. 물론 대통령 본인의 의욕이 지나쳐 옷을 여러번 바꿔 입는 바람에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기보다는 혼란스러운 이미지를 남긴 미숙함도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뜯어보아도 대통령의 의상이 모두 비지니스 포멀 수트(정장)가 아니다. 캐주얼 모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에 배석한 미성년 두 딸들의 옷과 너무도 흡사하다. 최순실이 분명 이를 참조했을 것이다. 공적 목적의 공공 공간에서는 맞지 않는 패션이다.

 

취임식을 마치고 행사장을 떠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일가. 두 딸의 캐주얼 복장이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때의 복장과 비슷하다. / ⓒ백악관

역시나 청와대 들어가면서 입은 한복 두루마기도 매우 위험했다. 금의환향? 전통을 소중히 하고 강한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서라지만 형태는 분명 고유한 한복이나 색과 문양이 자칫 세계인들에게 중국 치파오 풍, 일본 기모노 풍으로 비칠 뻔했다. 만찬장에서의 한복 역시 그랬다. 온통 짙은 붉은색에다 하필 사진에는 저고리 목깃 부분에 다섯 개의 노란 무궁화 모양의 문양이 별처럼 뚜렷하게 찍혔다. 중국의 오성홍기를 연상케 하는 아찔한 디자인이었다.

 

■ 공사(公私) 구분 인식체계 부재 드러낸 대통령의 복장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박근혜 패션은 동네 아줌마 수준으로 격조라곤 찾아보기 힘든 디자인이다. 더 심하게 말하면 하층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인의 옷 같은 느낌이 든다.

국가를 위해 헌신을 다짐하는 공적인 자리를 개인의 환갑잔치 수준으로 떨어트렸다고 하겠다. 캐주얼 풍으로 외국 귀빈 특히 우아한 여성과 나란히 하고 찍은 사진을 냉정하게 보자면 박근혜 대통령의 품격은 거의 사환이나 일반 회사 사무보조원 수준으로 보일 만큼 초라하다.

아무렴 한국에서 단순히 옷만 만드는 기능공에게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과 글로벌 상식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겠다. 그러니 곁에서 보좌하는 전문가가 어느때보다도 더 세심해져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대통령이 자기 고집을 버리고 꼭두각시가 되어줘야 한다. '공적(公的)'이란 란 자기 견해를 바꾸는 것이다. 공인이 되어 복장이나 액세서리 하나 못 바꿔서야 어찌 남의 의견을 받아들여 공공의 이익을 좇을 수 있겠는가?

 

비슷한 옷 완전히 다른 포스. 박근혜 대통령의 의상 모델인 메르켈 독일 총리의 상의. 구두, 양말, 바지색 일치. 푸틴과 회담하며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눈 맞추고 얘기하는 '정격' 모델 폼. 2012년 11월 17일. / ⓒ신화통신-아시아뉴스통신

 

스위스 국빈 방문에서 정상회담하는 박대통령의 '호텔 벨보이 재킷' 모드. 그마저도 상대와 눈도 제대로 못 맞추고 먼산 보고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포스와 질감. 싸구려 밤무대 의상? 게다가 상대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불안정한 자세로 소파 중앙으로 내다 앉은 박 대통령. 흡사 교장 선생님과 면담하는 학생 같다. 201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G20 정상회의 중. / ⓒ청와대

박 대통령은 첫 중국 방문 때 노란색 상의를 입고 인민 대회당을 찾아 정상회동을 하였다. 또 만찬에서는 노란색에 황금빛이 들어간 한복을 입었다. 박 대통령이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황금색 한복을 손수 골랐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중국인들도 그리 생각할까? 아니나 다를까 중국정부는 긴급하게 만찬장에서의 사진을 언론에 유출하지 못하도록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측천무후의 재림?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국빈 방문 중 황금빛 한복으로 만찬장에 들어서고 있다. 중국인들이 황금색을 좋아한다고 해서 아무나 황금색 옷을 입지 않는다. 남의 나라 여성 대통령이 황제의 복장을 하고 온 것을 곱게 여길 중국인이 있을까. / ⓒ청와대

중국인들에게 과거 황색은 황제의 전유색으로 황족이 아닌 사람이 황색 옷을 입으면 바로 참수형을 당했다. 지금도 공식적인 자리에선 옷은 물론 넥타이에도 터부시하는 색이다.

그런 눈치도 못 채고 박 대통령은 2015년에는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여 역시나 노란색 상의를 입고 자금성 누각에 올랐다. 그때 그 사진을 본 많은 중국 지식인들이 “뭐야? 자기가 측천무후라도 되는 거야?”라며 분개했다.

 

■ 시장 갈 때의 그 복장으로 국정 수행!

 

시장 갈 때의 그 복장으로 국정 수행! /ⓒ청와대

 

■ 결국 옷만 남고 ‘박근혜’는 없다

박 대통령은 평범한 비지니스 포멀 정장 차림이 표현해주는 헌법상 직분의 무게와 권위를 살리지 못했다. 아무렴 공사(公私)와 피아(彼我)를 구분도 못하고 개인적 취향만 부추기는 어처구니없는 삼류 이미지메이킹 강사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 혹 청와대까지 오염된 건 아닌지 걱정했었다.

거의 4년 동안의 박근혜 대통령 패션은 억지스럽고 혼돈 그 자체, 즉 색 공해였다. 아마도 유럽 점잖은 사람들도 진즉에 필자처럼 대통령의 정신 상태를 의심했을 것이다.

글로벌 빵점 수준의 삼류 CS 강사들, 색맹 수준의 국내 기자들의 찬사에 도취된 국민들은 그저 통합, 검소, 안보, 우아, 패션 외교 등 억지 해석에 고개를 끄덕이는가 하면 심지어 따라 입기도 했다.

 

스위스 베른의 호텔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디디에 부르크할터 스위스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한복을 스위스 국기색에 맞춘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이없게도 상대국 대통령 부부가 아닌 일개 시종과 앙상블을 이루고 말았다. 스위스인들의 눈에는 아프리카 추장처럼 동양의 잘 알려지지 않은 어느 국가 지도자의 이색적인 복장이 신기했을 따름이겠다. 영부인이 아닌 대통령이기에 검은 정장 드레스를 입었어야 했다. /연합뉴스

한데 이제 이 모든 작품이 동네 양장점 주인도 아닌 최순실이라는 무지 용감한 한 아줌마의 작품이라니!

참 희한한 일이 다 생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우물을 다 더럽힌다더니! 덕분에 한국 패션 30년은 후퇴시켰다. 메이드 인 코리아 30%는 디스카운트 당했다. 선진국 진입 30년을 후퇴시켰다. 이 죄를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 필자 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글로벌리더십아카데미 공동대표  ▲인사문화포럼 공동대표 ▲저서 <품격경영> <자기가치를 높이는 럭셔리 매너> <무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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