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건설사 13곳, LNG저장탱크 건설 국책사업 입찰 담합
공정위, 업체·임직원들 고발하고 과징금 3천500억원 부과
준비기일에 '전원' 출석, 피고인석 자리 없어... 재판부도 '웃음'

 

 

 

[앵커] 3조 5천억원,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 천만원씩 쓰더라도 266년이 지나도 다 쓸 수 없는 가늠이 안 되는 엄청난 금액인데요. 3조 5천억 넘는 공사 금액을 담합한 혐의를 받는 건설사들과 이들 회사 임직원들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오늘(5일)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렸는데 피고인들이 워낙 많아 피고인석에 다 못 들어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이슈 플러스', 석대성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앵커] 석 기자, 먼저 사건 경위부터 간략히 전해주시죠.

[기자] 한국가스공사가 강원 삼척과 경남 통영, 경기 평택 등에 초대형 액화천연가스, LNG 저장 탱크를 건설하기로 한 국책사업이 있었는데요.

2005년부터 2012년까지 발주한 12건 입찰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국내 대형 건설사 13곳이 담합해 돌아가며 공사비를 나눠먹은 겁니다. 전체 공사 금액으로 따지면 3조 5천495억원, 부과된 과징금만 3천516억원에 이릅니다.

공정위가 담합에 부과한 과징금 액수로는 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입니다.

[앵커] 담합을 어떻게 했다는 건가요.

[기자] 뭐, 전형적인 담합 수법을 그대로 답습했는데요. 일단 배정받을 공사장이 정해지면 적당한 선에서 한 업체가 입찰 가격을 적어내고 나머지 업체들은 그것보다 높은 가격을 적어내는 식으로 들러리를 서는 수법입니다.

LNG 저장 탱크 건설 공사의 경우 전문성이 요구되는데다 일정 시공 실적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끼리 출혈 경쟁하지 말고 고르게 수주하자' 이런 식으로 적당히 나눠 먹은 겁니다.

[앵커] 어떤 회사들인가요.

[기자] 삼성물산과 대우건설, 현대건설, 대림산업, 포스코건설 등 말 그대로 한국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대기업들입니다.

공정위는 이들 13개 건설회사 전부를 검찰에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은 먼저 담합 사실을 신고한 기업 등을 제외한 10개 기업과 임직원 20명 등을 재판에 넘겼습니다. 그리고 오늘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겁니다.

[앵커] 앞서 언급했는데 피고인석에 피고인들이 다 못 들어갔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요.

[기자] 공판준비기일은 말 그대로 '공판을 준비하는 재판'으로 피고인들이 참석할 의무는 없습니다. 뭐 좋은 것도 아니어서 통상 피고인들이 안 나오고 변호사들만 보내는 게 보통인데요.

그런데 오늘 20명의 피고인 거의 전부와 이들의 변호인, 회사 측 변호인 등이 재판정에 다 모습을 나타내면서 대여섯명 앉을 수 있는 피고인석에 피고인과 변호인들이 다 들어가지 못하고 증인석과 방청석에 앉아 피고인 신문을 받는 진풍경이 벌어진 겁니다.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 김상동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은 출석하지 말고 모두 진술을 듣기 위해 변호사들만 출석하라고 했는데 피고인들도 많이 나온 것 같다”며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 등 재판부도 난감해했습니다.

[앵커] 재판 분위기는 어땠나요.

[기자] 일단 모든 기업과 피고인들이 혐의 자체는 거의 순순히 인정했습니다. 다만 일부 공소사실의 공소시효와 양형에 대해서만 다투겠다는 분위기였는데요.

양형에 대해 다투겠다면서도 크게 긴장하거나 굳어있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고, 상당히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앵커] 그건 왜 그런 건가요.

[기자] 아무래도 양형 수위, 그러니까 처벌 정도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66조 벌칙 조항은 '부당한 공동행위를 한 자 또는 이를 행하도록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반 절도죄 6년 이하의 징역에 비해서도 크게 떨어지는 형량입니다. 쉽게 말해 물건 좀 훔치다 걸린 좀도둑에 대한 처벌보다도 몇천억, 몇조원씩 담합한 부당 행위에 대한 징역형 처벌 상한선이 훨씬 더 낮다는, 절반밖에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앵커] 벌금은 그렇다 치고 과징금은 어떻게 되나요.

[기자] 같은 법 제22조에서 과징금 규정을 정하고 있는데요. 요약하면 아무리 최대치로 부과해도 매출액의 10분의 1 안에서, 즉 매출액의 10분의 1 이상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선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3조 5천억원 담합에 과징금 3천500억원이 부과된 것도 바로 이 조항 때문입니다.

[앵커] 하긴 벌금 2억원이라고 해봤자 대기업들에는 말 그대로 껌 값일 텐데, 담합하다 걸려도 어쨌든 남는 장사다, 이런 계산과 엄두를 못 내게 제도를 바꿀 수는 없는 건지.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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