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사법의 대원칙... 당사자 간 ‘이익 절충 한계선’
법원, 기아차 노조의 요구 '신의칙' 위배 아니다 판단
“신의칙 범위·용인 정도 구체적 가이드라인 마련해야”

 

 

[앵커] ‘이슈 플러스’, 계속해서 통상임금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김효정 기자 나와 있습니다.

일단 통상임금이 뭔지 다시 한번 간략하게 말씀해 주시죠.

[기자] 네, 말 그대로 통상적인 임금, 즉 근로자가 근로의 대가로 받는 정기적이고 일정한 기초임금을 말합니다.

이 통상임금은 연장근무, 휴일근무 등에 대한 수당 및 연차휴가수당을 산정하는 기준이 되는데요, 기아차 근로자들은 정기상여금 등을 포함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수당을 다시 산정해 그동안 미지급했던 수당을 지급해 달라는 소송을 낸 겁니다.

[앵커] 가장 큰 재판 쟁점이 뭐였나요.

[기자] 네, 민법상 확고부동한 대원칙인 이른바 ‘신의성실의 원칙’ 위배 여부인데요.

신의성실의 원칙이란, 법률행위를 할 때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행동해야 하며, 상대방의 신뢰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근대 사법의 대원칙입니다.

우리 민법 제2조 1항은 이 원칙을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 행사를 해서는 안된다’는, 쉽게 말해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상호 당사자 간 일종의 ‘이익 절충 한계선’ 이라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앵커] 이 신의성실의 원칙, ‘신의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재판 쟁점이 된 건가요.

[기자] 네, 이 부분은 하급심 법원이 판단의 준거로 삼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봐야 하는데요. 2013년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에 대해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앵커] 대법원 판결이 어떻게 나왔나요.

[기자] 네, 대법원은 2013년 12월,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고 해도 그 합의는 근로기준법상 효력이 없다.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했는데요.

[앵커] 대법원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는데, 뭐가 문제가 돼서 소송이 잇따르고 있고, 서울중앙지법 오늘 판결이 굳이 의미를 갖는 배경이 뭐 어떻게 되나요.

[기자] 네, 당시 판결을 하면서 대법원은 일종의 단서 조항을 달았는데요. 정기상여금 통상임금 포함으로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 외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로 말미암아 사용자에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근로자 측의 법정수당 청구는 신의칙에 위배되어 받아들일 수 없다” 이렇게 밝혔습니다.

기아차는 이 ‘새로운 재정적 부담에 따른 경영상의 어려움’을 내세워 노조가 신의칙에서 벗어나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이렇게 주장한 겁니다.

[앵커] 결론적으로 재판부가 기아차 주장을 배격한 거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두 축이 있는데요. 일단 노동자들의 연장근무나 휴일근무, 야간근무 등으로 인한 이익을 기아차가 향유했다, 즉 수당 지급의 원천이 되는 초과 근무로 인해 기아차가 이득을 봤으니 노동자에게도 일정 부분 이득을 돌려줘야 한다고 판단했고요.

경영상의 어려움은 기아차가 계속 흑자를 내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별로 없다,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앵커] 어떻게 보면 단순한 거 같은데 이게 그렇게 쉬운 판단은 아닌가 보네요.

[기자] 네, 기업마다 회사마다 사정이 다 다르기 때문인데요. 일례로 광주고법은 최근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이 낸 소송에서 신의칙에 따라 미지급 수당을 줄 필요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는데요.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금호타이어 사측에 노조원들이 우리 돈부터 내놔라, 하는 건 신의칙에 어긋난다는 게 법원 판단입니다.

[앵커] 결국 그때그때 사안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네요.

[기자] 네, 현재 비슷한 내용으로 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이 확인된 것만 115건에 이르고,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한진중공업, 아시아나항공 등 대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도 여럿 있는데요.

노사간 신의칙의 범위와 용인 정도가 어느 정도까지 해당하는지, 대법원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앵커] 불필요한 소송전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법원이 판례를 통해 노사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주는 게 필요해 보이네요. 잘 들었습니다.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