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김영란법 한 달, 한국사회 바뀌고 있나
<4 ·끝> 기고 - 노영희 법무법인 천일 변호사

노영희 법무법인 천일 변호사

“저, 이거 어떻게 처리하죠?”

“무슨 일인데 그래?”

“고소인 조사를 하려는데, 직장 때문에 평일에는 안 된다고 해서 시간을 조정해줬더니 고맙다고 떡을 보내 왔습니다.”

“골치 아프게 됐군. 얼마짜리야? 일단 떡은 돌려보내고, 청문감사실에 보고해서 절차대로 처리해. 오늘이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데 자칫 잘못하면 엉뚱하게 뒤집어쓰기 십상이지. 애매하면 무조건 신고하는 게 상책이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지난 9월 28일, "개인 사정을 고려해 조사 시간을 조정해 주어 고맙다"며 4만5천원 상당의 떡 한 상자를 보낸 50대 A씨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놓고 벌어졌을 강원 춘천경찰서 형사들의 대화를 가상으로 꾸며 보았다.

A씨는 '김영란 법 위반 1호' 사례로 지난달 18일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될 경우 A씨는 떡값의 2배에서 5배에 해당하는 과태료를 내야 한다.

이외에 지난달 20일에는, 평소 알고 지내던 B(66·여)씨와 거리에서 싸움을 벌여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던 73세의 박씨가 "조사 과정에서 친절하게 대해줘 고맙다"며 경찰관에게 현금 1만원을 건넸다가 과태료 부과 대상으로 법원에 기소되었다. ‘김영란 법 위반 2호’ 사례다.

지난달 27일까지 경찰이 접수한 김영란법 위반 신고는 서면신고 12건, 112신고 289건으로 밝혀졌다. 시행 초기 하루 최대 80건까지 몰리기도 했지만 지난달 21일 이후에는 하루 3건 남짓으로 신고가 줄어들었다. 1만원짜리 현금부터 간단한 음료, 직접 담근 복분자주 등 다양한 물품이 신고 대상이었다.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 등 뇌물죄의 구성요건 해당성을 따지다 보니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과 2011년 ‘벤츠 여검사' 사건처럼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큰 사건도 무죄가 선고되었고, 금품 등의 공여 시기와 부정한 직무 수행 간의 시기가 맞지 않는 경우에는 비위를 저지른 공직자라도 처벌이 어렵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결국, 대가성 등에 구애받지 않고 공직자 등이 일정 금액 이상의 금품을 수수한 경우 무조건적인 처벌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2011년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던 김영란이 국무회의에서 법 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그 이후 국회 법사위에서 법 제정과 관련한 공청회를 열었을 때, 나는 2회에 걸쳐 전문가 증인으로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이때 의원들 사이에서 논의되었던 주된 쟁점 중 하나는 ‘허용되는 사회상규(常規)’와 ‘처벌되는 금품 수수’ 사이의 구분이 얼마나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원활한 직무수행, 사교·의례 또는 부조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경조사비·선물 등으로서 소위 3, 5, 10만원의 가액 범위 내 금품 등은 허용되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법 시행 후 한 달 째, 역시 ‘사회상규’냐 아니냐가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국민권익위에서 카네이션 생화는 안 되고 조화는 된다는 식의 경직된 해석을 내는 바람에, 공직자 등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무조건적으로 신고부터 하고 보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서민 경제가 지나치게 위축되고 사회 분위기가 삭막해질 뿐 아니라 법 제정 취지와도 맞지 않을 우려가 있다.

떡이나 커피 등을 일률적으로 사회상규의 범주에 넣거나 빼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수 있지만, 지난달 24일 이철성 경찰청장이 밝힌 바와 같이 김영란법 위반 1호(떡) 사례의 경우는 사회상규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루빨리 기준이 마련되어 청렴하고 투명한 사회 기강이 확립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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