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규모 이상 음식점, 외부에 메뉴 가격 게재 의무화
2013년 시행... 몰라서 못 지키고, 알아도 안 지키고 '유명무실'
음식점도 지자체도 눈치만 보는 '천덕꾸러기' 전락

 

 

[앵커]

연인이나 장인장모처럼 가까우면서도 어려운 분들 모시고 외식 나갔다가 생각보다 훨씬 비싼 음식값에 당황하신 경험, 한두 번씩은 있을 텐데요.

체면이 있어 그냥 나올 수도 없고 말 그대로 울며 겨자 먹기로 음식을 먹어야 하는 상황.

정부가 이런 낭패스러운 상황을 막기 위해 지난 2013년 음식점 ‘옥외 가격 표시제’ 라는 것을 도입했는데요.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 법률방송 현장기획, 오늘은 도입 5년 된 음식점 옥외 가격 표시제 얘기입니다. 이철규 기자가 현장을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서울 강남의 음식점 골목입니다.

한식, 중식, 일식, 분식 등 말 그대로 없는 음식점이 없습니다.

당연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입소문도 입소문이지만 뭐니뭐니해도 음식 장사를 좌우하는 건 맛과 가격.

이 때문에 많은 음식점들이 가게 밖에 대표 메뉴와 할인 메뉴, 음식 사진 등 손님들을 끌 수 있는 다양한 홍보물과 광고들을 붙여 놓고 있습니다.

아예 메뉴판 자체를 밖에 내건 업체도 있습니다.

[김영미 / 음식점 업주]

"저희집은 비싼 집도 아니고 분식이기 때문에 손님들이 부담감 없이  가격표하고 그림을 많이 보고 들어오기 때문에..."

 

음식점 ‘옥외 가격 표시제’라고 혹시 들어보셨나요.

일정 규모 이상의 음식점은 음식점 바깥에 의무적으로 음식 가격을 표시하도록 하는 제도인데요.

괜히 들어갔다가 낭패를 보는 등 소비자 피해를 막고 선택권을 보장해 주겠다며 정부가 지난 2013년 1월부터 시행했습니다.

근거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입니다.

이 규칙에 따르면 면적이 150제곱미터, 그러니까 45평 이상 음식점은 내부는 물론 음식점 바깥에도 가격표를 게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얼추 가로세로 15미터 정도 되는 웬만한 크기의 음식점은 이 규칙에 따라 메뉴 가격을 음식점 바깥에 내걸어야 합니다.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해 봤습니다.

서울 강남의 한 퓨전 한식집입니다.

높은 천정에 은은한 조명, 모던한 디자인, 한 눈에 봐도 꽤 그럴듯해 보이는 음식점입니다.

주머니 가벼운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음식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할 수도 있지만, 정작 가격표는 음식점 바깥 어디에도 걸려 있지 않습니다.

옥외 가격 표시제 위반입니다.

[A 음식점 매니저]

“저희가 지금 (옥외 가격 표시를) 해야 하는 건가요? 저희가 바깥에다가, 옥외에? 언제부터 그랬지? 몰랐었는데...”

 

TV 음식점 소개 코너에 나와 유명해진 해산물 요리집도, 모범음식점으로 선정됐다고 자랑하는 고깃집도, 옥외 가격 표시제를 지키지 않는 음식점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B 음식점 대표]

“(법으로 옥외 가격 표시를 하게 되어 있는데?)

“몰라요 우리는... 우리는 없애버렸어요.”

 

특히, 좀 괜찮다 싶은 음식점들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 합니다.

[김은숙 / 서울 중구]

“밖에서 봤을 때 음식도 괜찮을 것 같고 분위기도 괜찮을 것 같아서 들어갔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니까 당혹스럽더라고요”

[이도령 / 서울 노원구]

“그냥 일반적인 메뉴를 골랐는데, 다른 가게보다 비싸서... 남자인데 취소하면 쪼잔해 보여서 가격이 좀 되더라도 먹지요"

 

민망하지만 그냥 나오거나, 아니면 울며 겨자먹기로 그냥 시켜 먹거나.

법으로 만들어진 옥외 가격 표시제, 하지만 이를 지키도록 해야 할 일선 지자체는 손을 놓고 있습니다.

[강남구청 관계자]

“따로 그것만 (단속을) 돌지는 않고요, 저희가 강남구 내 (음식점이) 만 몇 천 개가 돼요. 저희가 다 돌 수는 없고...”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할 말이 더 있습니다.

단속에 적발되면 1차 시정명령, 2차 영업정지 7일의 처분을 하는데,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고, 음식점 주인들이 ‘왜 우리 가게만 단속하냐‘고 항의하면 사실 할 말이 없다는 겁니다.

[종로구청 관계자]

“저희가 적은 인원으로 종로구에 음식점이 만 개가 넘어요. 생각해 보세요. 만 개가 넘는데... 현실적으로는 많이 어렵다는 거...”

 

단속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법 위반을 두고만 볼 수도 어떻게 손을 댈 수도 없는 난감하고 어정쩡한 상황.

이 때문에 옥외 가격 표시제는 지자체에 천덕꾸러기 애물단지가 된 지 이미 오래입니다.

[서울시청 관계자]

“법은 시행한지 오래됐지만, 저희가 단속이라기보다... 실질적으로 그것만 콕 집어서 단속하고 그러지는 않아요.”

 

‘소비자 편의’라는 당초 취지는 실종되고 음식점도 지자체도 서로 눈치만 보며 불편하게만 만드는 애물단지가 된 음식점 옥외 가격 표시제.

대부분이 안 지키고 단속 의지도 없는 법이라면 폐지하든지, 아니면 지키게 하든지.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메울 수 있는 적절한 조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법률방송 이철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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