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법이냐" - 현장 스케치 - 신음하는 요식·화훼업계, '폐업' 선택하기도 - 골프장은 명암 엇갈려, 편의점 '함박웃음'

법률방송뉴스(www.ltn.kr)는 창간 특집 기획 첫번째로 <김영란법 한 달, 한국사회 바뀌고 있나>를 보도합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의 명암을 ①"누구를 위한 법이냐" - 현장 스케치 ②어디까지 합법이고 어디까지 불법인가 ③'사회상규'와 '직무관련' 사이에서 법원·검찰도 혼란 ④특별기고 순으로 4회에 걸쳐 11월 1일자부터 연속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보다 요즘이 더 장사하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앞으로 더 영업할 자신도 없어요." 

서울 서초동에서 10년 가까이 일식집을 운영해 온 B음식점 대표 김모씨의 말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된 10월 27일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서울중앙지법 등 검찰·법원 청사와 로펌·변호사 사무실이 밀집해 있는 서초동 법조타운의 거리는 한산하기만 했다. 한 달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평소 같으면 한창 북적여야 할 저녁 시간인데도 김영란법 시행 한 달이 된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거리는 한산하기만 했다.

김 대표는 직접 9월, 10월 매출 장부를 보여주며 "9월 말을 기점으로 예약 건수가 현저하게 줄었다"며 "3인 이상 기준 1인당 3만원으로 맞춘 '김영란 메뉴'를 만들어도 소용없었다"고 말했다.

유명인들이 즐겨 찾는 것으로 알려진 이곳의 한 한정식집에 들어가봐도 식사를 하는 손님보다 일손을 놓고 있는 종업원의 모습이 먼저 눈에 띄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 부근에서만 10년 넘게 한정식집을 운영해 왔다는 업주는 "김영란법이 누구를 위한 법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감시하기 위해 만든 법인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같은 사람들이 받고 있다"며 "경기도 어려운데 김영란법까지 시행돼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난달 26일 점심시간 국회의사당 3층 의원식당. 김영란법 시행 이후 의원과 보좌관 등이 외부 음식점이 아닌 의원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었다.

국회의사당, 방송국, 증권사 등이 밀집해 있는 여의도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김영란법 시행 전까지만 해도 모임을 위해선 며칠 전 사전 예약이 필수였던 유명 H식당 직원은 "이틀 전에 예약하신 분들에게도 룸을 따로 마련해 드릴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 직원은 "국회의원들도 와서 '김영란 메뉴'를 주문한다"고 덧붙였다.

Y음식점은 김영란법 시행 전 3만8천원이던 대표 메뉴 보리굴비정식을 2만9천800원으로 조정했지만, '오얏나무 근처에도 가면 안 된다'며 몸을 사리는 이들이 많아 걱정이라는 반응이다.

이곳 직원은 "3만원 이상이던 코스요리를 가격만 낮춘 채 선보이고 있다. 실제로 구성되는 음식은 예전과 같다"며 "이렇게 설명을 다 해드려도 손님들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은 2만9천원에 '란이 한상'이라는 이름의 메뉴를 내놓았다.

 

■ 3만원에 '타협'하거나 '포기'하거나

우리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의 뿌리를 뽑겠다는 취지로 지난 9월 28일부터 시행된 청탁금지법, 한 달이 지난 지금 곳곳에서 이 법에 대해 엇갈린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저녁 시간에 주로 이어지던 고가의 식사 대접이 법 시행 이후 줄고, '더치페이' 문화가 확산되고 있어 반갑다는 반응이 있지만, 요식업계는 매출 하락에 한숨을 쉬고 있다.

한편에서는 '사소한 나눔'도 제약받게 돼 우리사회의 미덕으로 여겨졌던 정(情)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도 나온다.

유명 음식점들은 김영란법 시행 이전부터 너도 나도 3만원 이하 가격에 소위 '김영란 메뉴'를 내놓았다. '영란 코스'  '영란 스페셜'이라는 이름으로 소주와 맥주를 포함해 1인당 3만원 이하에 즐길 수 있는 메뉴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3만원에 '타협'할 수 없는 고급 음식점들은 아예 영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10월 26일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3·4분기 외식산업 경기전망지수'에 따르면 4분기 한정식 경기전망지수는 62.33으로 3분기(63.79)보다 떨어졌다.

해산물 전문점, 한우 전문점 등 고급 음식점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한 달 사이 한우구이 전문 식당 매출은 전국적으로 22.3%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육점 매출액도 17.9% 감소했다.

요식업계가 맞은 직격탄의 여파는 주류 업종의 주가에도 이어졌다. 한국거래소가 10월 27일 발표한 대표적 내수지표인 '음식료업종지수'는 4256.62포인트로, 9월 25일 4469.90포인트 대비 4.77% 하락했다.

특히 음식료업종지수 구성 종목 가운데 주류종목들의 주가도 크게 하락했다. 하이트진로는 같은 기간 2만3천100원에서 2만750원으로 10.17% 떨어졌다. 김영란법 시행령 제정안이 발표된 5월 9일과 비교하면 최대 24.13%의 하락률(하이트진로)을 기록했다. 롯데칠성도 5월9일 202만원이던 주가가 10월 26일 기준 21.8%(44만1천원) 하락했다.

 

김영란법 시행 전인 지난 9월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은 '영란 보리굴비 정식'이라는 메뉴를 2만9천원에 내놓았다고 문자메시지로 홍보했다.

 

■ '3·5·10만원 규정'에 '시드는' 화훼업계

김영란법은 공무원·교직원·언론인이 직무관련성이 있을 경우 1회 100만원 이하의 금품 등을 받을 수 없다. 직무관련성이 있더라도 직접적이지 않을 경우만 3·5·10(식사·선물·경조사비)만원을 받을 수 있도록 예외로 허용했다.

이런 규정에 따라 화훼업계의 경우 "얼어붙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얘기도 나온다.

기자가 서울 양재동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화훼공판장을 찾은 날 화분·난·관엽 등을 판매하는 가·나동 건물에서는 손님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꽃을 파는 건물 1층에만 몇몇 사람들이 몰려 있을 뿐 선물용 화환을 주로 판매하는 지하 매장은 썰렁하기만 했다.

조창연 aT 화원연합회 회장은 "추석 명절 이후 10월 이맘때가 화훼업계의 성수기인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전혀 특수를 못 누리고 있다"며 "매출이 반토막 났다"고 말했다. '3·5·10만원 규정'에 따라 5만원이 넘는 선물용 꽃 거래가 급격히 줄어든 까닭이다.

난을 전문 취급하는 한 업주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난 화분의 가격을 떠나, 애초 빌미를 안 주려고 사람들이 꽃 선물을 아예 안 받거나 받고 나서 돌려보낸다"며 "주변 가게들은 하나, 둘 사업을 정리할까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aT화훼공판장에 따르면 10월 1~26일 전체 화훼 거래물량은 전년 동기 대비 16%가량 줄었다. 특히 경조사 화환 및 선물용 난 소비가 급감하면서 전년 동기 대비 난류 거래는 20%, 관엽류는 18% 감소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3·4분기 경기전망지수'에 따르면 경조사 화환 및 선물용 난의 전년 동기 대비 판매량은 꽃다발 40%, 화환 35.5%, 난 47.1% 줄었다.

10월 1~24일 화훼공판장 꽃 거래액은 60억1천700만원으로 김영란법 시행 이전인 9월 77억원과 비교할 때 22.1% 감소했다.

 

지난 10월 25일 서울 양재동 화훼시장 공판장 가동. 김영란법 시행 전과 달리 썰렁하기만 한 분위기였다.

 

■ 편의점은 '반사 이익'… '혼술' '혼밥' 영향 톡톡

주요 고객이 1인 가구 위주인 편의점 업계는 때아닌 반사 이익을 누리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접대 문화가 줄어들어 개인 시간이 늘어난 만큼 혼자 술 먹고 혼자 밥 먹는 '혼술' '혼밥'을 하거나, 가족과 조촐하게 술자리를 즐기는 경향이 나타난 결과로 해석된다.

씨유(CU)에 따르면 김영란법이 발효된 지난 9월 28일 이후 10월 21일까지 냉장 안주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7.1%나 늘었다. 해당 기간 직전까지 전년 대비 매출 증가율은 38.1%였다.

술 매출도 전년 대비 20%(맥주 20.4%, 소주 20.8%) 가량 증가했다.

반면 술자리 이후 많이 찾는 숙취 해소 음료 등의 매출은 크게 줄었다. 김영란법 시행 직전까지 전년 대비 매출 증가율이 20%였는데 비해 시행 이후 9.7%로 급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통상 10월부터 연말까지 숙취 해소 음료 매출이 지속적으로 상승해왔던 점을 고려할 때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GS25도 9월 28일부터 10월 26일까지 냉장 안주류 매출 증가율이 지난해 26.9%에서 올해 92.4%로 3배 급증했다고 밝혔다. 맥주 매출 증가율도 전년 21.4% 대비 38.7%로 늘었다. 세븐일레븐 역시 같은 기간 동안 냉장 안주류 매출이 전년 대비 41.7% 늘었다. 맥주 매출도 CU처럼 20% 가량(21.2%) 증가했다.

 

충북 충주시의 한 퍼블릭골프장.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도 성업 중이다.

 

■ 골프업계, 퍼블릭과 회원제 반응 '극과 극'

연중 골프 최대 성수기인 10월, 골프업계는 희비가 엇갈렸다. 퍼블릭 골프장은 김영란법의 직격탄을 피했지만, 회원제 골프장은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한다는 반응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골프의 경우 김영란법 해당자인 경우 '3 ·5·10만원' 기준과 상관 없이 '향응'으로 간주한다는 방침을 내놓은 바 있다. 골프 접대는 '편의 제공'으로 규정해 예외를 두지 않고 금지한다는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 전후를 비교할 때 퍼블릭 골프장은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다. 퍼블릭 골프장 회원들은 대체로 친목 모임을 하는 이들이 많이 찾고, 이들 사이에서는 각자 계산하는 문화가 이미 정착됐다는 이유에서다.

경기 남부의 한 퍼블릭 골프장 관계자는 "평소 접대 골프가 많지 않았던 골프장들은 김영란법의 직격탄을 맞지 않았다"며 "김영란법 이후 변함없이 가족 , 친구 단위의 손님들이 찾아 오고 있다"고 말했다.

에이스회원권거래소 애널리스트 이현균씨는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해 봐야겠지만 우려만큼 골프장들의 타격은 크지 않다"며 "접대 골프는 소멸되고 있고, 예약이 소진되는 속도가 느려진 감이 있지만 영업에 별 다른 차질이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도권 회원제 골프장의 분위기는 다르다. 법 시행 이전과 달리 골프장 이용객이 10~20% 정도 감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골프장 회원권 역시 활발하게 거래될 시기지만, 매수세는 현저히 약해졌다.

에이스회원권거래소가 전국 116개 골프장이 발행한 회원권 가격을 토대로 내놓은 '골프장회원권 종합지수'에 따르면 올해 700선을 중심으로 등락을 거듭하던 거래지수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인 10월 20일 682.5를 기록했다.

기사·사진= 김소희 기자 sohee-kim@lawtv.kr 복세훈 인턴기자 seihoon-bok@law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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