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法)이다] 'MZ 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아우르는 청년층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디지털 환경에 친숙하고 변화에 유연하며 새롭고 이색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제법(法)이다'는 이런 MZ세대 청년변호사들의 시각으로 바라 본 법과 세상, 인생 이야기입니다. /편집자 주

 

법무법인 대륙아주 채용현 변호사
채용현 변호사

2022년 10대 대형로펌 매출액이 사상 최초로 3조원을 돌파했다. 반면 개인변호사들의 수임 건수는 월 평균 1건에 그쳐 법조시장의 양극화와 청년 변호사들의 어려움은 나날이 심화되고 있다. 변호사 수 증가와 AI 법률서비스, 플랫폼의 등장으로 법률시장의 성장 모멘텀도 눈에 띄지 않는다. 법조 시장이 이렇게까지 어려워진 근본적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우리나라에 '법률 위험(Legal risk)의 총량'이 지나치게 적다는 점에서 찾는다. 다시 말해, 한국은 법을 어겨도 문제가 없거나 위험이 매우 적다. 그러니 개인이나 기업들이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할 일 자체가 적은 것이다. 법이나 제도에 걸려도 그때마다 외양간 고치듯 대응하면 그만이니 사전 대응책을 마련해둘 이유도 없고, 무언가를 대비하라는 변호사의 말은 수임료를 요구하는 공염불에 불과해진다.

요컨대, 우리나라는 법률의 수범자 입장에서 법률서비스의 '생산성'이 매우 떨어진다. 소위 말해 변호사를 쓰나 안쓰나 자신에게 들이닥칠 리스크에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굳이 법률비용을 지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일례로, 필자는 기업 고객을 자문하면서 대대적 세무조사와 거액의 과세처분이 우려되는 컴플라이언스 위반사항을 발견해 컨설팅을 제안했지만 담당자의 답변은 의외였다. "여태껏 이렇게 해왔지만 별일 없었어요." "예산 때문에 위에서 나중에 하래요." 참 맥빠지는 소리다. 만약 미국이라면 어떨까? 로펌 변호사의 말 한마디에 이사회가 난리가 날지 모른다. 법률 위험이 크니 변호사의 가치도 높다. 법률 비용을 깎지 않는 기업문화는 덤이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는 법을 위반해도 괜찮은 나라다. 민사사건에서 법원은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당사자를 더 배려하고 변론주의를 지키지 않는다. 원고가 요건사실을 유효하게 주장, 증명하지 못해도 승소한다. 이런 사례들이 하나 둘 모여 '변호사를 쓰지 않아도 할만하다'는 잘못된 인식이 생기고 법률서비스의 가치는 더욱 떨어진다. 형사사건도 마찬가지다. 초범은 물론 수 차례 범죄를 저지른 재범, 중범죄를 저지른 자들도 작량감경을 통해 집행유예나 아주 적은 형만을 선고받는다. 작년에 도입된 중대재해처벌법도 마찬가지다. 법 시행 1년이 넘었는데도 실질적인 규제는 이뤄지지 않고 기업의 행정력 낭비만을 초래한다는 평가가 많다. 이런 문제들이 사회 곳곳에 쌓여 행정과 사법제도의 효용감을 감소시키고 더 나아가 법률서비스의 몰가치를 야기하고 있다.

법을 어겨도 되는 건 유사 법조계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행정사나 법무사가 당사자의 배후에서 소송을 대리하고 법원도 이를 지적하지 않는다. '변호사는 소송에 관한 행위 및 행정처분의 청구에 관한 대리행위와 일반 법률 사무를 하는 것을 직무로 한다'는 변호사법 제3조가 무색하다. '법률'이 변호사가 독점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라 하더라도 변호사만이 할 수 있는 직무의 구분이 없다면 변호사의 존재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변리사, 노무사, 세무사의 소송대리권 부여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에는 금융감독원이 금융회사의 내부통제를 위한 외부감사의 일환으로 대형회계법인에 순환근무․명령 휴가제의 실효성까지 함께 검토할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업무의 ‘적법성’과 ‘적절성’을 일도양단으로 구분할 수 없는 현실에서 '적법성'에 관한 공적 의견을 낼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존재는 누구이며, 어디까지 변호사의 업무로 인정할 것인가? 그 기준을 명확히 세우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자칭 각 분야 전문가들의 끊임없는 직역다툼의 아수라장이 될 것이 자명하다.

가상자산, 메타버스, 자율주행차, 드론, 로봇산업 등. 신사업으로 법률시장을 확대하자는 논의도 물론 좋다. 하지만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정부와 사법기관이 모두 '법대로 하자'는 것이다.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면 손해를 보고, 규제를 어기면 다시 하지 못할 만큼 제재를 하고, 범죄를 저지르면 그에 상응하는 형사처벌을 하자는 단순한 명제말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변호사들도 '법'의 적법한 집행과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법률전문가로서 최고의 전문성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함은 당연하다. '법치주의'와 '변호사'의 직무에 대한 사회적 재합의 없이는 법조시장은 지속적인 축소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처럼 ‘법’을 위반해도 괜찮은 것인지, 국민, 정부, 법조계 모두의 관심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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