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보다 형량 2년 줄어... 법원, 알선수재죄만 인정 법정최고형 선고 재판부, 강한 어조로 질타 "부정 범하는 것보다 굶어 죽는 게 법관의 영광”

 

 

[앵커]

‘재판을 좀 잘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고급 외제차와 억대의 현금 등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른바 ‘레인지로버 판사’, 김수천 전 부장판사에 대해 항소심 법원이 알선수재죄 법정 최고형인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법원은 “판사들의 긍지를 더럽혔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드물게 센 어조로 김수천 전 부장판사를 질타했는데, 판결 내용을 이철규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판사석에 앉아 평생 피고인들의 유무죄를 단죄하기만 했던 김수천 전 부장판사가, 오늘은 황토색 수의를 입고 피고인이 되어 재판대에 섰습니다.

김수천 전 부장판사는 지난 2015년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재판을 좀 잘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고급 외제차인레인지로버 SUV 차량과 현금 1억원 등을 받은 혐의입니다.

차량 취득세와 보험료까지 정 전 대표가 대신 내줬습니다.

1심은 김수천 전 부장판사에 대해 뇌물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7년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항소심 재판부는 뇌물이 아닌 알선수재죄를 적용해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뇌물은 공무원이 자신이 맡은 업무와 관련해 돈을 받을 때 성립하는데, 김수천 전 부장판사의 경우 자신의 재판과는 관련이 없다는 게 항소심의 판단입니다.

법리에 따라 형량이 2년 감형되긴 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쓸 수 있는 거의 모든 표현을 동원한 강한 어조로 김수천 전 부장판사를 질타했습니다.

“법관이 재판과 관련해서 금품을 받는다는 것은 다른 법관의 재판이든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고 보통의 법관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피고인이 깨버린 것은 피고인 자신만이 아니다. 청렴과 공정을 생명처럼 여겨 온 법관들의 가치와 긍지, 자존심까지 동시에 더럽혔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대한민국 사법 70년 역사와,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굶어 죽는 게 영광이고 명예롭다”는 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말까지 인용하며 김수천 전 부장판사에 대한 질타를 이어나갔습니다.

“법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법관의 청렴성에 대한 신뢰에 기반한다. 그런 신뢰가 없으면 법관의 미래와 사법부의 신뢰도 없다. 그 신뢰를 피고인이 깼다”

재판부는 “법정 최고형을 선고하는 것 외에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가 오늘 선고한 징역 5년은 알선수재죄로 선고할 수 있는 법정 최고형입니다.

레인지로버 차량은 몰수했고, 받은 돈 1억 2,624만원은 추징한다고 선고했습니다.

재판장이 판결문을 읽는 사이 김수천 전 부장판사 가족들은 연신 눈물을 훔쳤고, 배석 판사들 역시 괴로운 듯 눈을 질끈 감고 김 전 부장판사를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청렴과 신뢰.

‘레인지로버 판사’에 대한 오늘 법원 판결문은 사법개혁,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법원의 현재 모습과 이에 대한 자기 반성문처럼 느껴졌습니다.

법률방송 이철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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