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속의 산하Law] 화제의 영화, 드라마 등 콘텐츠 내용 중 관객과 시청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법적 쟁점을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들이 칼럼으로 알기 쉽게 설명합니다. /편집자 주

 

최종화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최종화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도박을 소재로 한 만화 중 걸작의 반열에 올라 있는 몇 안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카드나 화투를 사용한 오서독스(orthodox)한 유형의 도박이 주를 이루는 것이 아니고, ‘가위바위보 게임’이나 ‘고공 평균대 걷기’, ‘황제 VS 노예’와 같은 특이한 소재를 많이 활용하였으며, 최근 에미상까지 수상한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에서도 많은 참고가 이루어진 바 있습니다.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초반 챕터는 빚더미에 앉은 사람들을 참가시켜 목숨을 건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도록 하고 그 현장을 부자들이 지켜볼 수 있게 하면서 여흥거리로 제공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역전을 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참가하기는 했는데, 패배시 밀실로 끌려가는 것과 같은 결코 정상적라고 할 수는 없는 경기의 룰을 듣게 되면서 아연실색하게 되었고 이내 주최측에 분노를 표출하며 항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안전을 보장받아야 한다’ 뭐 이런 것이었지요. 이에 주최측 리네카와는, 차마 여기에 옮길 수 없는 육두문자를 시전하면서 이들을 준엄히 꾸짖기 시작합니다. 인생을 한방에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으면 응당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며, 집에서 하는 것처럼 징징거리지 말라는 것이 주요 골자였습니다.

임의로 내릴 수 없는 배에 태워 게임을 시키면서 패배할 경우 미지의 고통을 선사하는 것은, 반대급부의 존재나 정도와는 별개로 그 자체로 용인되기 어려운 컨디션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모두 인생의 끝자락에서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었고 선택의 여지도 없었던 인원들로서, 새로운 기회도 부여받고 동시에 안전과 정보의 대칭성까지 보장받는 시혜(施惠)의 당위적 주체가 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었습니다.

요즘 젊은 변호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이지러진 워라밸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면 왠지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돈을 포기하고 여가를 택하겠다’가 아니고, ‘일은 적게 하고 월급은 두둑히 받겠다’는 의식이 존중받을 수 있고, 또 선호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더 일하고, 더 많이 고민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결코 두드러질 수 없고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불변의 진리일진데, 그와 같이 잘못된 생각을 하는 젊은 변호사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어느덧 변호사 3만명 시대가 시작되었고, 어쩔 수 없이 로스쿨과 변호사들의 등급과 서열은 향후 지금보다 더 극명해질 수밖에 없다 할 것입니다. 1700명 중 한 명의 변호사로 배출되는 것에 얼마나 큰 가치부여를 하는지 몰라도, 워라밸 타령을 하는 순간 이미 경쟁에서는 밀려난 것이며, 참으로 냉혹한 이 시장에서는 도태된 자에게 리네카와처럼 따끔한 충고를 해줄 사람도 없다는 것을 유념했으면 합니다.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