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속 발달장애인과 제도

[백세희 변호사의 '컬처 로(Law)'] 예술, 대중문화, 게임, 스포츠, 여행 등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재미있는 법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편집자 주

백세희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지난 6월 종영한 tvN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옴니버스 형식의 드라마다. 제14, 15화에는 영옥(한지민 분)이 숨기고 싶었지만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존재인 장애인 언니가 등장한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발달장애인 영희(정은혜 분)는 영옥의 이란성 쌍둥이 자매다. 서울의 시설에서 지내다가 리모델링 공사 때문에 1주일 동안 영옥과 함께 지내러 제주에 왔다. 영옥은 믿지 않았지만 영희는 그림을 잘 그린다. 그는 영옥에게 수많은 그림을 남기고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영희 역할을 맡은 배우 정은혜는 실제로 다운증후군 장애인이다. 이 드라마는 대중에 호평을 받고 지금까지도 OTT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현재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ENA의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도 발달장애인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우영우(박은빈 분)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법전을 달달 외우고 로스쿨도 수석으로 졸업해 지금은 손꼽히는 대형 로펌의 신입 변호사로 근무 중이다. 영우는 명석한 두뇌와 반듯한 심성으로 여러 가지 곤란한 사건들을 명쾌하게 해결해낸다. 주변 사람들도 자폐장애에 대한 편견을 벗고 점차 영우를 신뢰한다.

시기적으로 연이어 방송되고 있는 화제의 두 드라마에는 우연찮게도 발달장애인이 주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영희와 영우 모두 선량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우리들의 블루스>의 영희가 그림을 잘 그리긴 하지만 법전을 달달 외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영우와 같은 천재적인 재능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영우는 특별히 감각이 예민해 회전문을 통과하는 것도 두려워하는 등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겪지만, 영희는 그렇지 않다. 반면 영희는 카페에서 일을 할 수는 있지만 대형 로펌의 변호사로 근무할 정도의 지적능력을 구비하는 건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영희는 영우처럼 기계처럼 말하지 않고 주변인들과의 감정 교환도 비교적 자연스럽다. 이들은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영희와 영우를 ‘발달장애’라는 카테고리로 한데 묶을 수 있을까?

■ ‘발달장애’라는 카테고리 속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

2015년부터 시행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발달장애인’을 ‘지적장애인’과 ‘지폐성장애인’등으로 나눈다. 법조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약칭 : 발달장애인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발달장애인”이란 「장애인복지법」 제2조제1항의 장애인으로서 다음 각 목의 장애인을 말한다.

가. 지적장애인: 정신 발육이 항구적으로 지체되어 지적능력의 발달이 불충분하거나 불완전하여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것과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상당히 곤란한 사람
나. 자폐성장애인: 소아기 자폐증, 비전형적 자폐증에 따른 언어ㆍ신체표현ㆍ자기조절ㆍ사회적응 기능 및 능력의 장애로 인하여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
다. 그 밖에 통상적인 발달이 나타나지 아니하거나 크게 지연되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

다시 말해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는 발달장애라는 중분류에 포함되지만, 엄연히 별개의 장애 유형이다. 이런 분류를 모르면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 모두를 ‘무엇인가 지능이 모자란 것’ 정도로 뭉뚱그리기 쉽다. 드라마 속 영희와 영우도 전혀 다른 존재지만 제도적으로는 발달장애라는 같은 카테고리로 묶인다(다만 작품 내에서 장애등급을 명시적으로 드러낸 영희와 달리, 영우가 장애등록을 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1988년 우리나라에 최초로 장애인 등록제도가 생겼을 때 장애유형은 지체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지적장애 이렇게 5종이었다. 2000년에 뇌병변장애, 자폐성장애, 정신장애, 신장장애, 심장장애 5종이 추가된다. 그리고 2003년에 호흡기장애, 간장애, 안면장애, 장루·요루장애, 뇌전증장애 이렇게 5종이 또 추가된다. 

무슨 의미일까? 2000년 이전에는 자폐성장애라는 개념이 의학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제도적·정책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2000년 이전엔 자폐성장애와 지적장애를 모두 가진 사람은 ‘지적장애’로나마 장애인 등록이 가능했지만, 지적능력에는 비장애인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이른바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에 속하는 이들은 장애등록을 할 길이 없었다. 이들이 학교생활이나 군복무 등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렇게 자폐성장애가 지적장애와 제도적으로 분리된 것이 불과 20년 전이다. 그러니 발달장애인을 뭉뚱그려 ‘어딘가 모자라지만 그래도 특별한 재능이 있는’ 모습으로 재현해 온 미디어의 관성은 어느 정도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 대중문화가 주목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2020년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문상태(오정세 분)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영우에 대한 대중의 사랑을 떠올려보면, 요즘 대중문화 콘텐츠는 발달장애 중 특히 자폐성장애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2000년 장애유형에 정식으로 추가된 이후로 20여 년의 시간이 흘러 이제는 비장애인들도 어느 정도는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를 구분할 수 있고, 자폐성장애의 특징이 대중문화 콘텐츠 내에서 활용도가 높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자폐성장애의 정도는 사람마다 그 차이가 크기 때문에 아주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법률상 ‘자폐성장애’를 의학적으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라 부른다. 스펙트럼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경한 정도에서 중한 정도까지 연속성이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그 정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타인과 소통이 어렵다는 특징을 갖는다. 의학적으로는 전두엽의 발달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반면 측두엽과 후두엽은 크게 발달해 시각적·청각적 능력이 뛰어난 경우가 종종 있다. 대중문화 콘텐츠는 이런 특이한 부분에 관심을 보인다. 국내에 소개된 자폐 영화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배리 레빈슨 감독의 <레인 맨>(1988)에서는 자폐성장애인인 레이먼(더스틴 호프먼 분)이 놀라운 암기력으로 카드 게임에서 큰돈을 딴다. 권형진 감독의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2006)에서는 피아노 연주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는 자폐 아동이 등장한다.

자폐인들이 미디어 속에서 종종 ‘신기한 재주가 겸비된 감동 스토리’ 정도로 소비되는 건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법체계 내에서 자폐성장애가 지적장애와 제도적으로 분리된 것이 불과 20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드라마로 촉발된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이 발달장애인이 일상에서 존재감을 더욱 드러내는 계기로 이어지길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 필자의 신간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 중 일부의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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