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간첩단 사건' 사형된 김규남 의원 '조사' 필화 사건 한승헌 변호사 ‘사형제’ 소신 담아... 반공법 위반 구속기소 재심 법원 “불법 구금, 가혹 행위 증거능력 없다” 무죄 판결

 

 

[앵커]

“변호사는 원래 인권을 지키고 찾아주는 것이 본분인데 그것을 자꾸 인권변호사라고 부르면 안 되잖아요.”

우리나라 ‘시국사건 1호 변호사’로 불리는 한승헌 변호사의 말입니다.

남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데 한평생을 바쳐온 한승헌 변호사가 오늘 42년 만에 자신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고 합니다.

어떤 재판인지 이철규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1972년 여성동아에 ‘어떤 조사, 어느 사형수의 죽음 앞에’ 라는 글이 실립니다.

‘신문 한 귀퉁이, 눈에 뜨이기도 힘든 1단 기사에서 당신의 죽음을 알았습니다. 사형이 집행된 것입니다. 주류 출고량이 줄었다는 기사는 같은 지면에 2단으로, 여자 면도사 해고기사는 3단으로 실렸습니다’

라고 시작하는, 어떻게 보면 평범한 ‘수필’ 이었습니다.

글쓴이는 한승헌 변호사입니다.

박정희 정권 당시 대표적 공안 조작 사건의 하나였던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김규남 의원의 사형이 집행됐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사형제에 대한 단상을 담은 글입니다.

한 변호사는 이 글이 반국가단체 구성원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1975년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고 변호사 자격도 박탈당합니다.

[인터뷰 / 한승헌 변호사]

"말할 수 없는 가혹한 조사를 받았습니다. 검찰도 그때는 반공법 사건이 정보기관에서 송치가 되면 어떻게 하지를 못하더군요."

42년이 지난 오늘,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재심을 청구한 한승헌 변호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심이 유죄 근거로 본 한 변호사의 진술조서는 변호인 조력을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작성해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 사유를 밝혔습니다.

당시 검찰이 제시한 증거는 불법 구금과 가혹 행위로 얻어진 것으로, 증거 능력이 없다는 판단입니다.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1972년 사형된 김규남 의원은 2015년 2월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고, 한승헌 변호사도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한승헌 변호사는 42년 만의 무죄 소회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인터뷰 / 한승헌 변호사]

"저처럼 정치적인 탄압에 의해 대상이 되서 억울하게 옥고를 치르거나  심지어 생명까지 잃은, 이런 억울한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분들은 아직도 재심 기회도 갖지 못하고 그대로 누명을 쓰고 살아가시는 분들에 대해 마음이 아픕니다."

법원과 검찰 모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되고 지난 정권의 세월들이 청산돼야 할 적폐로 규정된 오늘.

꼿꼿하게 나이 든 노구의 한승헌 변호사는 권력자에 의한 사법농단은 어떤 일이 있어도 없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법원을 떠났습니다.

법률방송 이철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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