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국에 빼앗긴 문화재는 돌려받을 수 있을까

[백세희 변호사의 '컬처 로(Law)'] 예술, 대중문화, 게임, 스포츠, 여행 등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재미있는 법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편집자 주

 

백세희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이번 달 24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개전이 꼭 한 달 되는 날이다. 수일 내에 결판이 날 것이라는 개전 직후의 예상과는 달리 전쟁은 장기전으로 접어들고 있다.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이 죽고 다치고, 러시아군에 의한 약탈 행위 소식까지 이틀이 멀다 하고 들려온다. 사람의 생명이 가장 중한 문제지만, 한번 파괴되면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인 것은 소중한 문화재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크라이나 문화계는 초비상이다. 러시아군의 포화로부터 문화예술유산을 지켜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 파괴되면 끝… 그렇다면 약탈 되어 국외로 반출된 문화재는?

전쟁으로 문화재가 파괴되면 그로 인한 손해는 종전 후 배상 처리 문제의 항목 중 하나로 다뤄진다. 돈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한 문화재의 수난은 비단 손상과 멸실 문제에 국한하지 않는다. 형태가 온전히 보존된 채로 침략국 정부 또는 개인에 의해 국외로 반출되는 일도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출 이후 시간이 흐르면 문화재는 타국에서 새로운 맥락을 부여받기도 한다. 이렇게 전쟁 등으로 반출된 문화재는 과연 돌려받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문화재 약탈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나라 중 하나다. 19세기 말 문호 개방을 요구하는 서구 열강을 비롯해 일본의 식민 지배에 따른 대대적인 수탈, 광복 직후 미 군정기의 미군과 미국 외교관에 의한 국보급 문화재의 반출 등 크고 작은 약탈이 수없이 자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분노한다.

하지만 다수의 분노와 반환에 대한 열망과는 달리 실제로 문화재의 반환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가져간 외규장각 의궤만 해도 2011년 4울 무려 145년 만에 되찾았지만, 완전한 ‘반환’이 아닌 5년 단위 갱신에 의한 ‘대여’ 형식으로 돌아온 것일 뿐이다. 프랑스는 의궤를 중국 서적으로 오인하고 국립 도서관의 파손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다.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던 남의 나라 문화재지만, 그 소유권을 넘겨주는 일에는 인색한 것이다.

약탈 문화재의 반환은 생각보다 많은 쟁점을 내포하는 복잡한 문제다. 문화 침략국과 피침략국의 역사에서 배어 나오는 감정적인 문제는 덮어 놓더라도, 정치·경제·법리적인 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 넘어 산이다. 무엇이 있을까?

■ 문화재 반환을 어렵게 하는 정치·경제·법리적 문제들

일단 정치·경제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자. 문화재는 자국의 관광 산업의 중요한 일부이다. 잘만 관리하면 앞으로도 수백 년 이상 지속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보물인 셈이다. 게다가 어느 한 나라가 전면적인 반환을 결정한다면, 이를 따르지 않는 다른 약탈국들의 입장이 난처해진다. 그러니 약탈국들끼리는 카르텔이라도 구성해서 절대 돌려주지 말자고 약속이라도 하고 싶을 것이다. 

카르텔이라는 표현이 좀 지나치다 싶은 감이 있지만, 실제로 이런 조직이 있다. 다만 그 구성원은 국가가 아니고 ‘박물관’이다. 2002년 18개의 세계 대형 박물관들이 모여 ‘인류 보편의 박물관 선언문(Declaration on the Importance and Value of Universal Museum)’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그들은 문화재는 한 국가에 속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라 주장하고, 자신들이 문화재에 새로운 맥락을 부여했다고 자랑하며, 이제 와 그러한 문화재를 반환하는 것은 이미 부여된 새로운 맥락을 파괴하는 일이라고도 말했다. 제국주의 시대의 최대 수혜자들이 나서서 선언문까지 발표하며 강력한 연대를 과시한 것이다.

2018년 11월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아프리카 식민지로부터 약탈한 문화재의 반환을 결정했을 때 주변국이 보인 태도들도 이와 비슷하다. 하르트비히 피셔 영국박물관 관장은 “영국박물관 규정도 영국 법률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독일 훔볼트포럼 하루트무트 도겔로 관장은 “로마 유적 대부분도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에서 훔쳐 온 것”이라며 “일부 문화재는 유럽과 세계 역사의 결과로 봐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선을 긋고 나선 바 있다. 약탈국 내부의 반발도 고려해야 하는 요소다. 대개 국가는 문화재의 반환을 위한 절차가 의회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등 까다롭다. 

법리적인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소유권에 기한 반환청구는 ①나에게 소유권이 있어야 하고, ②상대방이 그 물건을 점유할 권리가 없어야 한다. 법리는 비교적 간단하지만, 늘 그렇듯이 문제는 ‘입증’이다. 약탈당한 문화재가 어찌어찌하여 그것이 국내에 있었고 우리나라 누군가의 소유였다는 것을 어렵게 증명한다 하더라도, ‘선의취득’의 법리나 ‘시효취득’에 의해 약탈국의 누군가가 현재는 자신이 적법한 소유자라고 주장할 수 있다. 게다가 원칙적으로는 이런 골치 아픈 분쟁이 물건 하나하나 다 별개로 이루어져야 한다. 약탈은 한꺼번에 이루어졌는데, 오랜 시간이 흘러 지금은 약탈국 어딘가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점유 경위도 제각각이라 결국 하나하나 따져보아야 할 터이다.

나아가 각국의 문화재 보호 법률은 자국에 있는 문화재의 반출을 엄격히 금지하곤 한다. 우리 문화재보호법 제39조도 국내 문화재는 일체 외국으로의 반출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일시적으로나마 해외로 나가려면 정부 부처의 허가가 필요하다. 앞서 프랑스의 예처럼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 입법례도 있다. 산 넘어 산이다.

■ 그렇다면 국제법적 해결로는 가능할까

국가들은 국제법규를 제정해 해결을 시도하기도 한다. 1954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채택된 ‘무력 충돌시 문화재 보호에 관한 협약’, 1970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 1995년 유네스코가 사법통일국제연구소의 검토를 거쳐 채택한 ‘도난 및 불법 반출 문화재에 관한 협약’ 등이 그 예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국제법적 해결은 강제할 수단이 변변치 않고 가입을 하든 말든 맘대로라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실제로 위 1954년 헤이그 협약이나 1970년 유네스코 협약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예술품 시장을 가진 미국이 참여하지 않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그 실효성이 의문시되기도 했다. 

당사자가 다수인 국제협약 말고, 개별 국가 사이에 1:1로 협정이 체결되기도 한다.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문화재를 약탈해 간다면, 추후 이런 국가 간 협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약탈국과 피약탈국 단 두 나라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합의가 성사되기만 한다면 실제 문화재 환수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1965년 6월에 체결한 ‘한일문화협력협정’에 따라 1966년 5월 27일 반환된 우리 문화재 1324점이 그 예이다. 그렇지만 이런 협정들은 주로 일회성으로 이루어지고, 그나마도 두 나라 사이의 정치적인 기류에 의해 크게 좌우될 수 있어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일본도 위 1965년의 협정에 의한 회복 이후 별다른 문화재의 반환이 이뤄지지 않다가 90년대 들어 소량으로 드문드문, 그나마도 민간 차원에서 회복하고 있을 뿐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 전역의 예술가, 큐레이터, 박물관 관장들은 문화재들을 절박하게 포장해서 숨기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파손을 대비한 노력이다. 현재까지는 러시아군에 의한 문화재 약탈·반출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장기전으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는 또 모를 일이다. 아무쪼록 이 전쟁이 사람도 문화예술유산도 다치지 않게 신속하게 마무리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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