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의 변호사 "공소시효 지나 법적 구제 어렵지만, 경험 공유에 감사"

법률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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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방송뉴스] 지난 15일 새벽 6시경 고려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에 ‘나는 나를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성폭행 피해 사실을 고백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자신을 국어국문학과 졸업생이라고 밝힌 김모(47)씨는 “내가 침묵함으로 해서 고통받았던 시간들을 참회한다”며 “나는 나를 고발한다. 과거의 용기 없던 나를, 침묵과 회피로 외면했던 나를, 불의와 맞서지 못했던 나를, 악과 싸우지 못했던 나를 나는 고발한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지난 1993년 2월 설악산의 한 콘도에서 열린 문과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한 김씨. 당시 “몸 조심하라”는 어머니의 당부를 들으며 집을 나서 대학 첫 행사에 참여한 김씨는 이곳에서 처음 술을 마셨다고 밝혔습니다.

술 기운에 취해 잠에 든 김씨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는 “창문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저는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며 “청바지는 단추가 풀어져 있고 지퍼가 끝까지 열려 있었으며 몸은 기운이 하나도 없고 손 하나 까닥하지 못 할 정도로 무기력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잠시 후 김씨는 ‘어둠 속에서 코를 골고 자고 있는 짐승’을 발견하고 사태를 파악하게 됐고, 방에서 나와 맞은 편 화장실에서 오랫동안 샤워를 했습니다. “씻어도 씻기지 않는 치욕을 오래오래 씻었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김씨의 말입니다.

화장실에서 나와 학우들과 일상의 대화를 나누던 김씨는 곧 가해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당시 군복 바지를 입고 행사에 참여한 학과 선배였고, 아무렇지 않은 척 현장을 빠져나갔습니다.

김씨는 자작시를 통해 “축축한 늪을 헤집고 헤집었다, 처음 마셔 본 알코올이 갑옷처럼 소녀를 누르고 있었다, 차마 버스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내달리듯 집으로 돌아 왔지만 태연하게, 재미있는 오티였다 말하고 말았다”며 그때의 심정을 표현했습니다.

해당 사건 이후 김씨는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양극성 정동장애를 앓았고 힘들게 대학을 졸업했다”는 그는 “소송을 준비해 보기도 했지만 부모님은 제가 상처를 입는다고 반대했다. 지금도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며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세월이 흐른 28년 만에 성폭력 피해를 고백한 것 과 관련 "또 다른 가해자를 향한 경고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서지현 검사 성추행 사건이나 고대 의대 성추행 사건, 정의당 김종철 당대표 성추행 사건을 볼 때 나는 왜 적절하게 행동하지 못했을까 후회가 밀려온다”며 “용기있게 맞서 싸웠다면, 내가 93년에 미리 선례를 만들었다면 이런 미친 짐승들이 덜 날뛰지 않았을까 그런 후회를 한다”고 밝혔습니다.

관련해서 성범죄 전문 이은의 이은의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법률방송과의 통화에서 “당시 피해자가 미성년자였다고 가정하더라도,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나 민형사상으로 구제를 할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해당 사건의 피의자 A씨가 한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술에 취해 실수를 했지만 성폭행은 아니었고 10년 전쯤 찾아가 사과를 했다”고 해명한 것, 당시 김씨의 연령, 피해 장소, 사회 문화 등을 종합해보면 김씨가 충분히 성폭행으로 느낄만한 상황이었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단이 가능해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현재와 비교했을 때 사건이 발생했던 시기에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얘기해봤자 학교나 수사기관, 사법기관에서 원활한 처리를 했다고 볼 수 있는 시절이 아니”라면서 “김씨의 이야기가 다른 피해자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성폭력을 당한 것이)피해라고 인식하는 게 맞다는 공유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준강간이 제대로 인정되지 못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김씨를 비롯한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공론화를 하거나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을 경우가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뒤늦게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 피해자 김씨에게 사회는 위로와 감사를 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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