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출신 이탄희·최기상, 판사 3214명→4214명 증원법 발의
판사 1인당 연간 464건 담당... 지난 9년간 과로사 5명 발생도
1000명 늘려도 1인당 300건 책임... "처우 개선" 수용은 부담

/법원행정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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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방송뉴스] 판사 부족으로 인한 업무 과중과 재판 질 저하를 해소하기 위해 법관 정원을 1000명 더 늘리자는 증원법이 나왔습니다. 업무량이 과도해 재판 지연과 부실화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자는 취지이지만, 1000명 증원이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해선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판사 출신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과 최기상 의원은 현재 3214명의 판사 정원을 4214명으로 늘린다는 내용의 판사증원법을 오늘(1일) 공동 발의할 예정이라고 알렸습니다. 형사재판·소액사건 담당 판사를 현행의 2배까지 점진적으로 늘리기 위해 전체 정원을 확대한단 취지입니다.
 
지난 9월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민·형사 본안 접수 건수는 137만6438건으로, 법관 1명이 연간 담당하는 사건은 464.07건에 달합니다. 독일의 약 5.17배, 프랑스의 약 2.36배, 일본의 3.05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독일의 법관 수는 총 2만3835명, 같은 년도 기준 민·형사 본안 접수 건수는 213만6254건입니다. 법관 1명당 89.63건을 담당하는 겁니다. 법관 수가 7427명인 프랑스의 경우 1명의 판사가 196.52건을, 일본은 법관 1명이 151.79건을 맡습니다.

한국 판사 1인당 맡는 사건 수를 독일 수준으로 맞추려면 국내 법관이 약 1만5356명이 돼야 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1만2390명이 증원돼야 하는 겁니다. 프랑스와 일본 수준까지 업무량을 낮추기 위해선 각 4038명, 6102명이 늘어나야 합니다.

특히 형사재판의 경우 법정 중심의 투명한 재판 진행과 공판중심주의 구현을 위해 형사소송법이 정한 법정증거조사, 집중심리 원칙, 연일 개정 원칙 등을 준수하려면 형사 본안재판 담당 법관의 대폭 증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일선에서도 업무 부담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주최한 법관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법관 증원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 응답자는 전체의 89%에 달했습니다. '직무수행으로 인해 신체 건강에 영향을 받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65%였고, 직무수행으로 인한 '번아웃(무기력증)'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52%나 됐습니다.

이외에도 평균 근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한다는 응답은 48%였습니다.

이처럼 판사 1명에게 업무가 쏠리면서 과로사도 반복적으로 발생해 왔습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5명이 사망했는데, 과로와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지난 7월 이 같은 문제점을 의식해 '법관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법관대표회의 결의안'을 가결했습니다. "법조일원화를 시행하며 법원 인력 구조가 바뀌고 있다"며 "경력 법조인의 법관 지원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 계속돼 법관 인력 부족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소액 사건의 경우 전체 민사의 70%를 차지하는 소액재판(소송금액이 3000만원이 이하)을 담당하는 법관은 지난달 26일 기준으로 199명입니다. 전체 법관의 6%에 그칩니다.

지난 8월 국회 본회의에선 판사 임용 최소 법조 경력을 현쟁와 같이 5년으로 유지한다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부결됐습니다. 2013년 본격화한 법조일원화 정책으로, 판사는 일정 정도의 법조 경력이 있는 법조인 중에서 선발되는데, 판사 최소 법조 경력은 2013년 3년을 시작으로 2018년 5년, 2022년 7년, 2026년 10년으로 순차 확대됩니다. 과거 다른 법조 경험 없이 사법연수원을 수료 후 곧바로 판사로 임용되던 시스템에 변화를 준 겁니다.

하지만 법원 내부에선 현실을 반영해 법조 경력 확대를 현재와 같이 5년으로 유지해줄 것을 강력 희망했습니다. 법조 경력 10년 이상 법조인이 법원으로 자리를 옮길 유인이 크지 않단 이유가 작용했습니다. 임금은 적고 업무 강도는 훨씬 강한 법원으로 누가 오겠냐는 현실적 우려입니다.

이같은 우려의 현실화 때문인지 실제 법조일원화 시행 후 경력 10년 이상 법조인 지원자는 8년간 총 147명으로, 연평균 18명에 불과했습니다.

임용된 신입 판사 내 비율은 △2013년 0명 △2014년 1명(1.4%) △2015년 3명(2.8) △2016년 0명 △2017년 0명 △2018년 5명(13.9%) △2019년 5명(6.3%) △2020년 5명(3.2%)에 그칩니다. 지원자 수도 적고, 이 가운데 판사 자격을 갖춘 사람도 별로 없다는 지적입니다.

나아가 7년 미만 법조인 지원이 불가능해지는 내년부터는 당장 판사 수 감소가 예상됩니다. 판사 증원이 필요한 시점에 퇴직 판사 수보다 임용 판사 수가 작아지는 상황이 이어져 올해 3000명대의 판사 수가 2029년엔 2900명대까지 감소할 것이란 게 대법원 전망입니다.

이같은 실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 의원 측은 "법관 부족이 소액재판에서 '5분 이하 변론'과 '판결서 이유 미기재'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두 의원은 과거 연간 배출 신규 변호사 수가 1000명이던 시절 최대 120명씩 법관을 증원했던 사례를 참조해 본 개정안 부칙의 시행 방안을 매년 200명씩 늘리는 것으로 제안했으나, 이는 추후 중‧장기 법관 증원 지침 마련을 위한 논의 상황에 맞춰 변경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본 개정안의 제안 설명에서 '형사재판과 소액사건 이외에 민사‧가사‧소년‧행정재판 등을 포함한 보다 다양한 영역에서 포괄적인 중‧장기 법관증원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피력했습니다.

이 의원은 "최근 법원조직법 부결 이후 더 다양한 판사를 더 많이 충원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높다"며 "최근 발의된 '신규임용판사정보공개법'과 본 법안은 위와 같은 요구를 반영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 의원은 "소액사건은 전체 민사사건의 70%를 넘을 정도로 국민 다수가 소액재판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 있다"며 "소액사건에서 국민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충실한 변론 시간을 보장하고, 판결서 이유를 보다 충실하게 기재하도록 하려면 소액사건 담당 법관의 대폭 증원이 절실하다"고 표명했습니다.

하지만 1000명 증원이 현재의 과도한 업무량을 해소할 수 있을진 의문입니다. 법관 1인당 맡는 사건 수가 400건대에서 300건대로 떨어지지만, 여전히 업무량이 과도하고, 향후 부작용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법원 안에선 기존 법조일원화를 유보하되, 우수한 경력 법조인을 법원으로 끌어올 수 있도록 제도와 처우 개선을 우선하자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다만 변호사 등을 포함한 법조계가 고액 연봉을 받는 직군으로 포함돼 있다는 걸 고려하면 여론이 이를 용납할 지도 미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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