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장 여부 미정... 靑 "가능하지만 절차 필요"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사진은 1990년 1월 22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김영삼 민주당 총재(왼쪽), 김종필 공화당 총재(오른쪽)와 청와대에서 긴급 3자회동을 갖고 3당 합당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사진은 1990년 1월 22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김영삼 민주당 총재(왼쪽), 김종필 공화당 총재(오른쪽)와 청와대에서 긴급 3자회동을 갖고 3당 합당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법률방송뉴스] 대한민국 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오늘(26일) 향년 89세로 별세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고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이후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요양해왔다. 오랜 병상 생활을 해온 노 전 대통령은 최근 병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서울대병원은 이날 사인과 관련해 "장기간 투병 중 여러 질병이 복합된 숙환"이라며 "허약한 전신 상태와 장기간의 와상 상태에 여러 합병증이 발생해 지병으로 인해 사망하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희귀병 소뇌 위축증과 천식까지 더해져 투병 생활을 하면서 공개석상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못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 장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지난 4월 노 전 대통령이 호흡곤란 증상으로 고비를 겪은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소뇌 위축증이란 희귀병인데 대뇌는 지장이 없어서 의식과 사고는 있다"며 "이것이 더 큰 고통"이라고 적은 바 있습니다.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이날 낮 12시 45분께 서울대병원 응급실으로 내원한 후 의료진의 치료를 받았으나, 상태가 악화돼 오후 1시 46분 결국 사망했습니다. 전날부터는 저산소증, 저혈압 증세를 보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병마와 싸우던 고인은 우연의 일치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일(1979년 10월 26일)과 같은 날 세상을 떠나게 됐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1932년 12월 4일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 신용리(현 대구 동구 신용동)에서 면 서기였던 아버지 노병수 씨와 어머니 김태향 씨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경북고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안사령관과 체육부·내무부 장관, 12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대표를 지냈습니다.

육군 9사단장이던 1979년 12월 12일 육사 11기 동기생 전두환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신군부 '하나회' 세력의 핵심으로서 군사 쿠데타를 주도하기도 한 노 전 대통령은 정변 성공으로 신군부의 2인자로 떠오른 바 있습니다. 수도경비사령관, 보안사령관을 거친 뒤 대장으로 예편, 정무2장관으로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이어 초대 체육부 장관,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민정당 대표를 거치면서 군인 인식에서 탈색하고 정치인으로 변신합니다.

5공화국 말기 전 전 대통령을 이을 정권 후계자로 부상, 1987년 6월 10일 잠실 체육관에서 치러진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로 지명됐습니다.

이후 전두환 정권의 간선제 호헌 조치에 반발하는 시위가 확산하자 직선제 개헌을 약속하는 '6·29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이른바 '1987년 체제' 탄생을 가져왔습니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성과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져 야당으로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부상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야권 후보 분열에 따른 '1노(盧)3김(金)' 구도의 반사 이익을 보면서 같은 해 연말 대선에서 김영삼·김대중·김종필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보통사람 노태우'를 의제로 직선 대통령에 선출된 뒤 민주주의 정착과 외교적 지위 향상, 토지공개념 도입 등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 사면복권과 시국사범 석방 등을 담은 6·29 선언을 통해 신군부에 대한 공포 인식을 희석하고 '민주주의를 수용한 온건 군부' 이미지를 구축, 위기에 처했던 군사정권을 안정시키고 대선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다는 평가입니다.

그러나 퇴임 후엔 12·12 주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무력 진압, 수천억원 규모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전 전 대통령과 함께 수감됐습니다. 법원에서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600억원을 선고받는 등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한 면을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1997년 12월 퇴임을 앞둔 김영삼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됐지만, 오랫동안 추징금 미납 논란에 시달리다가 지난 2013년 9월에야 뒤늦게 완납했습니다.

국가장과 국립묘지 안장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사망 후 국가장으로 치러진 것은 2015년 11월 별세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유일합니다.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장으로, 최규하·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민장으로 진행했습니다.

이승만·윤보선 전 대통령은 국장이나 국민장이 아닌 가족장을 진행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국가장 여부는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한 이들 중 생존한 전두환·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장례 형식을 결정하는 기준이 될 전망입니다.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이 가능하다"며 "다만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국립묘지 안장에 대해선 "국민 수용성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한 정무적 판단이 필요할 수 있다. 내부 절차에 따라 논의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여야는 애도를 표했습니다.

이용빈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독재자였던 노 전 대통령은 12·12 군사 쿠데타의 주역이자 5·18 광주민주화운동 강제 진압에 가담한 역사의 죄인"이라면서도 "재임 기간 북방정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중국 수교 수립 등은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또 "퇴임 이후 16년에 걸쳐 추징금을 완납하고 이동이 불편해 자녀를 통해 광주를 찾아 사과하는 등 지속적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그의 마지막은 여전히 역사적 심판을 부정하며 사죄와 추징금 환수를 거부한 전두환 씨의 행보와 다르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내일(27일) 빈소를 찾아 애도를 표할 예정입니다.

국민의힘에선 허은아 수석대변인이 구두논평을 통해 "고인은 후보 시절인 1987년 6·29 선언을 통해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여 직선제 하에서 대통령에 선출됐다"며 "재임 당시에는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 북방외교 등의 성과도 거두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12·12 군사쿠데타로 군사정권을 탄생시킨 점, 그리고 5·18민주화운동에서의 민간인 학살 개입 등의 과오는 어떠한 이유로도 덮어질 수 없다"며 "국민의힘은 불행한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전했습니다.

국민의힘 지도부도 내일 조문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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