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추정 원칙 지킬 수 있을 것" vs "유전석방 무전구금 심화될 것"

[법률방송뉴스]  대법원이 구속영장 단계에서 조건부 석방제 도입을 추진한다고 알려지며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지 67년 만에 구속제도가 개편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법관과 변호사 측은 제도 도입에 찬성하는 반면, 검찰 측은 강하게 반발해왔는데요.

조건부 석방제가 어떤 제도이고, 찬성과 반대 이유는 무엇인지 김해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3월, 대법원 사법행정자문회의는 영장 단계에서 조건부 석방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조건부 석방제는 판사가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보증금 납부나 주거제한, 제3자 출석보증서, 전자장치 부착, 피해자 접근 금지 등 일정한 조건을 붙여 피의자를 석방하는 제도입니다.

구속된 피의자에 대해 일정한 조건을 내걸고 풀어주는 보석제도를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단계에 도입해 구속 없이 바로 풀어주겠다는 겁니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할 경우, 판사는 구속영장 ‘발부’과 ‘기각’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도주 우려에 대한 판단이 모호할 때 대체적으로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하곤 했지만, 이는 '일도양단'식이고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어왔습니다. 

이에 조건부 석방제가 도입되면 영장을 발부한 뒤 일정한 조건으로 구속을 대체할 수 있어 무죄 추정의 원칙이나 불구속 수사 원칙을 지킬 수 있다는 대안 역시 함께 제기됐습니다. 

이런 이유로 법조계에서는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지배적입니다. 

지난 5월 사법행정자문회의 재판제도분과위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법관의 81.8%, 변호사의 94.4%가 조건부 석방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정지혜 법무법인 기세 변호사는 이러한 조건부 석방제도에 찬성한다며 해당 제도가 도입되면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정지혜 변호사 / 법무법인 기세]
“사실 변호사 입장에서는 원래는 형사소송법상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니까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이잖아요, 아직은. 그 사건에서는 불필요한 구속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조건부 석방제도가 사실 잘만 활용하면 긍정적 효과가 더 클 것 같기는 하거든요.”

하지만 이와 반대로 검찰은 조건부 석방제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큽니다. 

그간 국내에서 여러 차례 영장 단계서 조건부 석방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검찰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습니다. 

검찰은 해당 제도가 도입되면 보석금을 조건으로 석방되는 경우가 많아 이른바 '유전석방 무전구금'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즉 보석금을 조건으로 석방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주거가 일정하고 도주의 우려가 없는 부유층 인사들은 보석 조건을 쉽게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또한 구속 후 수사하는 것과 보석 등으로 석방된 상태에서 수사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어 수사의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는 게 검찰 측 주장입니다. 

이런 검찰 반대 의견에 대해 “피의자가 구속되지 않은 상황에서 밖으로 나가면 변호인과 접촉해 전략을 짜는 등의 우려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정지혜 변호사는 공감했습니다.  

[정지혜 변호사 / 법무법인 기세]
“검사들은 아무래도 수사가 힘들어지니까 그것이 가장 클 것 같아요. 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하는 것과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하는 것은 수사의 속도도 그렇고 또 심리적인 부분에서도 당연히 차이가 크기 때문에. 아무래도 구속 상태에 있으면 그런 부분에 있어서 조금 더 제한적으로 운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수사의 편리성을 위해서는 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출신 변호사 역시 “아무래도 검찰 수사에 방해가 되긴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검찰 출신 변호사]
“사후영장에 해당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전영장은 어차피 신변이 풀려있는 상태에서 영장청구 되는 거니까. 체포영장에 의해서 체포된 거는 긴급체포 되거나 현행범 체포된 피의자에 대해서 사후영장이 청구된 경우에 해당될 수 있는 것 같긴 하거든요. 검찰 측에서는 사후영장 체포영장, 긴급체포에 의해 체포된 피의자를 그냥 중간에 석방해버리면 아무래도 수사에 방해가 생기겠죠.” 

이 외에도 조건부 석방으로 인한 처벌 약화, 영장을 기각해야 할 사건에서 되려 조건부 석방을 명하는 변형적 형태로 운영될 수 있다는 등의 우려들도 함께 제기됐습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재범의 위험성 등 부작용을 고려한 안전장치가 마련돼야만 제도의 효과성이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습니다. 

[승재현 연구위원 /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그 조건이 어떻게 되었든 결국 만약에 이 사람이 나가서 도망가거나 증거인멸의 우려 혹은 주요 참고인 등의 위해. 그 다음에 재범의 위험. 재범을 범한다면, 범죄를 또 범한다면 그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조건을 붙였을 때 그 조건이 결국 구속된 사람이 사회에 나왔을 때 도망가서도 안 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서도 안 되고, 또 다른 범죄를 범해서도 안 되고. 주요 참고인 등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도록 완벽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지만 이 제도의 효과성이...”

조건부 석방제도가 도입이 되는 것으로 결론나면 바로 법 개정을 위한 입법 절차가 진행될 예정인 가운데,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67년 간 이어진 구속 제도가 개편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법률방송 김해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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