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히 재판받고 제때 권리구제 받는 날, 언제 오나... '재판지연보상법' 해답 될까
신속히 재판받고 제때 권리구제 받는 날, 언제 오나... '재판지연보상법' 해답 될까
  • 장한지 기자
  • 승인 2021.09.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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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지연으로 피해침해 상태 고착화... 그 사이 사망도"
"재판지연보상법 제정해야" vs "법관 증원이 우선돼야"

▲신새아 앵커= 한국전쟁 때 포로로 잡혀 북한에서 수십 년간 강제 노역을 한 국군 포로들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는데, 현재 이 사건이 1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소송 결과를 기다리던 고령의 국군 포로 중 2명은 그사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러한 해묵은 '재판지연 문제'는 법정 안팎에서 늘 문제가 제기되는데요. 어제(15일) '법원의 재판지연,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제목으로 재판지연 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LAW 인사이드' 장한지 기자와 얘기해 보겠습니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헌법상 보장된 인간의 기본 권리입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재판지연 문제 현주소는 좀 어떤가요.

▲장한지 기자= '민사소송법' 제199조는 판결은 소가 제기된 날부터 5개월 이내에 선고하도록 하는 이른바 '종국판결 선고기간' 관련 규정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만약 오늘 제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면 내년 2월 15일에는 선고가 내려져야 한다는 건데요.

법원행정처에서 발간한 '2020 사법연감'에 따르면, 제1심 민사 합의부 사건의 경우 매년 약 30% 정도의 사건만이 법정기간인 5개월 이내에 처리되고 나머지 사건은 기간 내 처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판이 지연되면서 피해 침해 상태가 고착화되거나 심지어 재판이 지연되는 도중 아까 앵커님 말씀하신대로 최악의 경우 원고 사망으로 사정변경이 발생해 판결이 사실상 효과가 없게 되는 사례도 발생하는데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유명한 법언도 있죠. 대다수 국민들이 신속한 재판을 통한 권리구제를 제때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인데, 관련해서 토론회를 주최한 최기상 의원의 말을 들어보시죠.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가 법원에서 20년 넘게 일하면서 늘 마음이 무거웠던 주제 중에 하나입니다. 재판을 신속하게 마무리지어드리지 못한 것이 마음이 많이 걸렸는데요. 국회에 와서 법원의 현실을 좀 더 들여다봤는데 여전히 개선이 안 되고 있어서..."

▲앵커= 법적으로 명백히 규정돼 있는데, 왜 재판지연이 계속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는 건가요.

▲기자= 네, 종국판결 선고기간 관련 조항이 '훈시규정'이기 때문입니다.

'훈시규정'이란 위반하더라도 그 위반 행위의 효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규정을 말하는데요. 쉽게 말해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적용하는 규정입니다.

관련해서 이종엽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축사를 통해 "사안에 따라서는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장기간 심리를 필요로 하고, 그래야만 공정한 재판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며 "그러나 대부분의 사건은 특별한 이유 없이 재판처리가 지연되면 소송 당사자는 실효성 있는 권리구제를 받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앵커= 실효성 있는 권리구제를 받지 못한다, 대표적인 예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 중 '강제징용 사건 재판 지연' 의혹이 생각나는데요. 장단이 극명하게 나뉘는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기자= 토론회 참석자들은 '재판지연 관련한 입법 공백'을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현재에도 재판이 열리지 않고 있는 경우, 민사소송법 제165조에 따라 재판 당사자는 재판부에 기일지정을 신청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이에 대해서 재판부가 응답할 의무는 없어서 기일지정 신청은 아무런 효과가 없는 등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이에 따라 토론회에서는 민사소송법 165조와 관련해 크게 3가지의 개정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재판 당사자가 기일지정을 신청하면 재판장은 지체 없이 기일을 지정하고, 특별한 사정상 기일을 지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기일지정 불가 이유를 고지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재판 중 선고기간을 도과하게 된 경우 재판장은 그 사유를 당사자에게 설명하고 해당 내용을 변론조서에 적도록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고기간을 도과한 경우, 재판장은 선고 시 판결서에 그 이유를 기재하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앵커= 재판지연을 할 경우 판사에게 불편함, 번거로움을 주겠다는 건데, 직접적인 제재 장치는 언급되지 않았나요.

▲기자= 현재 과도하게 지연된 재판에 대한 구제수단으로 국가배상법상 '국가배상청구권'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공무원의 위법 행위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을 입증해야 하는 까다로운 성립요건이 있어서 국가에 책임을 묻기가 상당히 어려운데요.

어제 토론회에서는 독일식 '재판지연보상법' 제정이 제시됐습니다. 법안은 '재판지연손실보상청구권' 보장이 핵심입니다.

재판지연손실보상청구권의 성립요건은 '재판절차의 상당하지 않은 진행'으로, 국가배상청구권보다는 성립요건을 상대적으로 단순해 보입니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중권 중앙대 로스쿨 교수는 "사실상 장식적인 것이 돼버린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하루바삐 실체적인 것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김중권 교수 / 중앙대 로스쿨]
"장식적인 것이 돼버린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를 하루빨리 실체적인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롭게 '시간'에 대해서 인식을 고쳐먹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이 말로써 치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재판지연손실보상법 제정의 필요성은 있어 보이는데, 비판적인 시각은 없었나요.

▲기자= 입법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이 많이 나왔습니다.

김형준 대한변협 부협회장은 "재판을 신속, 정확하게 하는 판사에 대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민사소송법 등 여러 법률에는 재판의 신속함을 위한 조항이 여럿 존재한다"며 "법은 존재하는데 법이 지켜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신속·정확한 재판을 함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고 법원도, 변호사도 타성에 젖은 기존의 재판 형태를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 변호사의 지적입니다.

황선기 민변 변호사는 "신속 재판을 위한 시스템과 훈련의 강화"를 제시했습니다.

황 변호사는 "오히려 OECD의 분석에 의하면, 재판의 신속성은 사법부에 투입되는 예산의 규모와는 무관하고, 재판절차의 전산화, 재판통계의 적극적 수집과 활용, 전문재판부의 활용, 재판장에 의한 법원행정의 운용 등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제언했습니다.

▲앵커= 재판을 진행하는 주체인 재판부, 판사의 입장은 어떤가요.

▲기자= 네, 토론회엔 박종환 서울행정법원 판사가 참석했습니다. 박 판사는 먼저, 법안이 실효성이 없음을 주장했습니다.

"선고기간의 도과 이유는 결론 부분인 주문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소송 절차에 대한 것일 뿐이어서 이를 판결서에 기재하도록 하는 것은 판결서가 갖고 있는 본질적 기능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설명입니다.

그 다음으로 법관의 과도한 업무량을 호소하며 법관 증원, 인적·물적 지원 등을 강조했습니다.

과도한 업무량과 턱없이 부족한 법관 등 현재의 재판 환경을 그대로 방치한 채 재판지연보상법이 도입된다면, 결국 기계적, 소극적 재판을 진행하는 이른바 '졸속재판' 우려가 있다는 겁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박종환 서울행정법원 판사]
"법관 및 재판연구원이 획기적으로 증원되지 않고 법관의 고령화는 계속 진행된다면 결국 두 가지밖에 없거든요. 형식적으로 사건 처리만 하면서 통계만 예쁘게 만들고 그리고 졸속재판을 하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면 재판 기간이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두 가지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앵커= 우리나라는 사법제도가 비슷한 독일, 일본에 비해 판사 1인당 사건 수가 많게는 2.5배라고 하는데요, 재판지연으로 인한 피해보상과 판사의 업무량 과중 사이에서 '재판지연보상법'은 상당한 논의가 필요해 보이네요. 오늘 잘 들었습니다.

 

장한지 기자 hanji-jang@law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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