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사라진 사회에는 기득권 추한 욕망만이... 존엄 유지해야"

신평 변호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신평 변호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최근에 필자는 ‘공정사회를 향하여’라는 책을 새로 내었다. 우리가 인간적 존엄을 유지하며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공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내년 대선에서 공정사회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면 하는 염원을 담은 책인데, 책의 말미에서 새 대통령이 최소한 세 가지의 공정성 회복을 위한 방안을 정부 출범 초기에 수용해주었으면 하고 소망했다.

그 세 가지를 언급하자면 ① 기득권층의 자녀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짜인 현행 대학입시제도를 되돌린다. ② 사무관급 이상의 공무원 특채를 과감하게 과거처럼 획기적으로 줄이고, 그 여분을 공정한 선발기준에 따라 선발한다. ③ 우리 현실에 맞는 법조인 양성제도를 시급히 고안하되, 우선 당장 로스쿨 학비를 지금의 반액으로 낮추며, 로스쿨을 통하지 않고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작은 문’을 만든다.

잘 아는 대로 한국의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은 2009년 3월에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벌써 12년이 훌쩍 지났다. 한동안 사법시험존치론이 기세를 올렸으나 이제 지나간 옛일처럼 되어버렸다. 로스쿨은 법조인 양성의 독점권을 확실하게 확보하였다.

근현대국가에서 전문직 자격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변호사와 의사가 아닐까 한다. 자격이 없는 사람이 변호사와 의사의 업을 하는 경우 국가의 법률인 변호사법과 의료법-나아가서 가중처벌법률인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으로 엄한 처벌을 한다.

이렇게 중요한 변호사자격을 취득하는 필수불가결의 전제가 된 로스쿨이 과연 그에 맞는 기능과 역할을 하는지에 관하여 지금까지 적지 않은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그중에서 로스쿨이 우리 사회의 중·하위 계층 자녀들의 법조인 진입을 상당히 어렵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로스쿨 측은 로스쿨이 생겨서 로스쿨내의 제도적 장치인 특별전형이나 많은 장학제도를 통해 오히려 사회적, 경제적 약자의 법조진출이 쉬워졌다고 강변한다. 

어느 쪽 주장이 사실일까에 관하여 판단할 때 현재의 로스쿨 학생의 현황을 참고하면 쉽다. 대부분 로스쿨 학생들의 출신 가정이 경제적으로 가장 상위계층에 속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는 불문가지이다. 왜 이렇게 되는지 그 이유를 간단히 살펴보자.

로스쿨의 입학시에 학부성적과 함께 법학적성시험인 리트(LEET)성적, 영어의 공인성적이 삼대 요소가 되어 수험생이 평가받는다. 그런데 영어성적은 로스쿨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사실상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결국 리트 성적과 학부성적이 입학을 좌우할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치는데, 넉넉지 못한 집안의 자제들은 학부과정을 거치며 아르바이트로 고단한 대학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이것이 학부성적에도 여파를 미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렇게 학부성적이 좋지 않은 이는 로스쿨을 아예 못 올라가는 나무로 보게 된다.

또 로스쿨의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는 지적이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사립대학의 경우 6개월 등록금이 대체로 1천만원을 넘고, 국립대학의 경우에는 500만원을 훌쩍 넘는다.

혹자는 로스쿨에 들어오면 풍부한 장학금이 있어 학비는 로스쿨 입학에 큰 장애요소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장학금을 받을지 못 받을지 알 수 없는 단계에서 입학원서를 제출해야 하는 수험생의 입장으로선 로스쿨의 비싼 등록금은 당연히 심리적 저항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그중에서 우리 눈에 확 드러나는, 로스쿨의 비싼 등록금을 완화시킬 방도는 없는가? 그래서 중하위계층 자녀들도 큰 부담감 없이 로스쿨을 목표로 삼을 수 없겠는가?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로스쿨의 반값등록금-이것은 일반 학부의 등록금 수준이 된다-은 로스쿨 제도에 적당한 수정을 가하면 바로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의 로스쿨 제도는 학생 12인당 한 명의 교수를 계산하여 교수 숫자를 맞추도록 하되 최저 20인의 교수를 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대체로 30인 전후의 교수들이 각 로스쿨에 채용되어 있다. 과거 법학부 시절과 비교하면 교수가 월등하게 불어났다.

그런데 지금 25개 로스쿨 중 한 학년 인원이 40명, 50명, 60명, 70명, 100명, 120명, 150명으로 차등화되어 있다. 

필자가 오랫동안 근무하던 로스쿨은 한 학년 120명의 정원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개설되었으나 수강신청하는 학생이 없어 폐강되는 강의과목이 속출한다. 1명이 수강신청해도 폐강되지 않는 쪽으로 운영됨에도 말이다. 그러니 소규모의 로스쿨에서는 어떤 형편일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단적으로 교수 숫자가 너무 많다. 기껏 한, 두명이라는 소수가 수강하는 대단히 특수한 과목이 왜 존재해야 할까? 법철학 같은 기초법은 말할 것 없고 국제법 과목 같은 중요과목도 로스쿨 학생들이 외면하는 현실에서 말이다. 

한국 로스쿨의 중요한 폐단 중 하나가, 일관된 학습의 체계를 결한 채 교수들의 희망을 우선시하여 교과목이 개설된다는 점이다. 한국 로스쿨 설계의 중대한 실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처럼 대륙법체계의 법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밟아나갈 과정을 순차적으로 제시하는 형태로 커리큘럼을 미리 짜놓고 학생들이 이를 따라가게 하면, 지금보다 훨씬 적은 교수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그리고 로스쿨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대단히 바람직한 제도의 개선이다. 참고로 독일에서는 수강과목이 법률로 정해져있기도 하다. 일본과 같은 표준교과과정제의 실현과 함께 너무 학생숫자가 적은 영세한 규모의 로스쿨은 통폐합한다면, 반값 등록금은 쉽게 우리 눈앞에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지금 사회적 경제력에 의해 신분의 고착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비극을 곳곳에서 목도하고 있다. 소위 ‘사회적 사다리’가 빠르게 없어지고 있다. 로스쿨은 그 대표적 현상의 하나로 지목된다. 이제 다시 반전을 꾀할 때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

공정의 이념이 사라진 사회에는 기득권자 집단의 추한 욕망만이 휘젓고 다닌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존엄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가 없다.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