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경찰, 피해아동 보호와 접근금지 등 조치 지자체 통보 20건 중 1건에 불과

 

[법률방송뉴스] '정인이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이번엔 30대 이모 부부라는 사람들이 10살 조카를 마구 폭행하고 심지어 개 대변을 먹이고 물고문까지 저질러 숨지게 한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져 또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런 아동학대 사건을 좀 체계적이고 유기적으로 다루기 위해 지난해 10월 '아동학대 사건 지자체 통지·통보 제도'라는 게 시행됐는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로 나타났습니다.

법원과 경찰 등 유관기관들의 무관심 때문인지 게으름 때문인지 제도 시행이 아주 미흡하다고 하는데, 장한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해 10월, 양모의 학대와 양부의 방임 속에 입양 8개월 만에 췌장 절단 등 끔찍한 상흔을 남기고 사망한 정인이 학대 사망 사건. 

사망 당시 정인이의 나이는 불과 16개월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입양기관과 어린이집, 소아과 의사 등 세 차례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됐지만 제대로 된 조치도, 수사도 이뤄지지 않아 더욱 더 큰 안타까움과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아동학대 방지와 관리에 구멍이 뚫린 건데, 지난해 10월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으로 '아동학대 사건 관련 지자체 통지·통보제도'가 시행됐습니다.

개정 아동학대처벌법 제19조 '아동학대 행위자에 대한 임시조치' 조항 7항은 "법원은 임시조치를 결정한 경우에는 시장·군수·구청장 및 피해아동 등을 보호하고 있는 기관의 장에게 통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아동학대 행위자에 대한 임시조치'는 피해아동 등 주거로부터 격리, 100m 이내 접근 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등의 조치를 말합니다.

같은 법 제21조 '임시조치의 집행' 조항 2항은 "집행 담당자는 아동학대 행위자의 임시조치 이행 상황에 대하여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에게 통보해야 한다"고 통보의무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집행담당자는 가정보호 사건 조사관이나 법원공무원, 교정직공무원, 보호관찰관, 수탁기관 직원, 경찰 등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아동학대 임시조치와 관련된 기관 종사자들에게 법원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졌는지, 결정사항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지자체 통보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겁니다.

개정 아동학대처벌법은 또 접근 행위 제한, 사회봉사·수강명령, 보호관찰, 보호시설에의 감호위탁, 의료기관에의 치료위탁 등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보호처분' 결정의 경우에도 '임시조치'와 동일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동법 제36조와 38조에서 법원 보호처분 결정의 지자체 통지 및 보호처분 결정의 집행 이행 상황에 대한 지자체 통보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법원, 교정 및 아동보호 당국, 경찰과 지자체가 각각 따로따로가 아닌 아동학대 문제에 유기적·총체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도입된 조항들입니다.

[문지선 검사 / 법무부 아동인권보호 특별추진단 팀장]
"지자체장이 아동학대 관련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면서 보호처분 관련 상황까지 정보를 갖고 있어야 그에 필요한 아동보호 조치를 취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정보를 갖도록 한 것이고요. 그동안 문제가 됐던 사법영역과 행정영역의 분절적 대응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도입된 제도입니다."

법무부가 이에 제도가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6개월간 전국 228개 지자체로부터 임시조치·보호처분 결정 통지 및 이행상황 통보 현황을 전수 취합해 조사해봤습니다.

일단 아동학대 사건을 담당하는 전국 89개 지방법원 및 가정법원의 경우 임시조치·보호처분 결정 등을 지자체에 통지·통보한 곳은 26곳에 그쳤습니다.

경찰의 경우 전국 273개 시·도 경찰청 및 경찰서 가운데 집행담당자로서 임시조치·보호처분 이행상황을 지자체에 통보한 곳은 단 17곳에 불과했습니다.

보호처분 이행상황을 통보한 보호관찰소는 전국에서 딱 한 곳밖엔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문지선 검사 / 법무부 아동인권보호 특별추진단 팀장]
"이번에 저희가 조사를 해보니까요. 전국 228개 지자체 중에서 관련해서 통지나 통보를 받은 지자체가 54곳에 불과했고 이 통지 통보를 담당하고 있는 법원하고 경찰청 등 기관에서 충분히 이 제도를 알고 통지 통보를 해오지 못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요."

전국 경찰서나 법원들이 전부 아동학대 사건을 다 다루는 건 아닐 수 있어 사건별로 다시 분석해 봤습니다.

일단 대검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 사건 임시조치 결정 건수는 3천 867건에 이릅니다.

6개월로 평균하면 1천 930여건 정도 됩니다.

관련해서 서울경찰청은 정인이 사건을 기점으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접수된 서울 지역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50%가량 늘어났다고 지난 2월 밝혔습니다.

법무부 이번 분석 대상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6개월입니다.

해당 기간 지자체에 통보된 임시조치 결정 통지는 365건에 불과합니다.

수평 비교는 어렵지만 아동학대 신고 건수가 최근 크게 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보수적으로 지난해 6개월 평균 1천 930여건을 기준으로 잡아도 통지 건수가 5분의 1 정도 밖에는 안 됩니다.

법원 임시조치 결정 사건 5건 가운데 1건만 지자체에 통지되고, 4건은 그냥 묻힌다는 얘기입니다.

또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6개월간 임시조치 이행상황 통보는 101건밖에는 안 됩니다.

지난해 6개월 평균 임시조치 결정 1천 930여건의 거의 20분의 1밖에는 안 됩니다.

격리나 접근 금지 등 법원 임시조치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임시조치 결정 20건 가운데 겨우 1건 넘는 정도만 지자체에 통보된 겁니다.

그나마 같은 기간 보호처분 결정과 이행상황이 지자체에 통지·통보된 건 각각 42건과 39건에 불과합니다.

2019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보호처분 결정 건수는 2천 343건에 이릅니다.

'아동학대 사건 관련 지자체 통지·통보제도'라고 법은 바꿔서 제도는 있는데 그 실행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겁니다.

[문지선 검사 / 법무부 아동인권보호 특별추진단 팀장]
"내막은 정확히 모르지만 아마 작년 10월부터 시행은 됐는데 이게 전국의 89개 법원이고 경찰이 273개 경찰서가 보내야 하다 보니까 일선에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경위와 이유를 떠나 법원과 경찰 등 아동학대 사건 방지와 관리에 매진해야 할 기관들이 법 개정 취지를 몰각하고 아동학대 사건 관련 지자체 통지·통보에 소홀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승재현 /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이 아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이냐는 정말 전적으로 지자체가 감당해야 할 몫인데 그것을 만들어놓기 위해서 그 법이 개정됐고 (그런데) 결국 법원은 임시조치 하고 난 다음에 나몰라라, 경찰의 입장에서도 아이를 분리하고 난 다음에 나 몰라라 하는..."

국가가 아동학대로부터 아동을 보호하는 책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대응 시스템을 촘촘하게 설계하는 것은 기본이고,

각각의 대응 기관들이 시스템상 의무를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승재현 연구위원은 거듭 강조합니다.

[승재현 /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이러한 법제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그 아이에 대한 임시조치와 적극적인 분리조치 이후에 경찰과 법원은 '나몰라라' 하지 않고 그것을 반드시 지자체에 알림으로써 지자체가 이 아이를 더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인 안전망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와 관련 법무부는 '아동학대처벌법' 소관 부처로서 제도 운영실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결과를 관계기관들과 공유하는 등 지자체 통지·통보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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