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사건 진행해야 하는데 겁난다... 인력 충원, 각하제도 도입 등 시스템 개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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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방송뉴스] 서울의 한 일선 경찰서가 3개월간 민원인의 고소장 접수를 지연시키며 참고인 조사 등 경찰이 해야 할 일을 민원인과 변호사에 떠넘겼다는 지난 21일 법률방송 보도와 관련해 변호사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논란과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비슷한 사건들이 줄을 이으면서 각종 커뮤니티와 단체대화방에서는 "나도 당했다"는 반응이 쇄도하고 있다. 

변호사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한 변호사는 "혹시나 해서 고소장 내용을 많이 보충했는데도 또 반려가 됐다"며 "수사관이 하는 말은 범죄사실을 더 세부적으로 기재하고 증거자료를 더 확보하여 제출하지 않으면 자기가 조사하기 힘이 많이 든다는 것이었는데, 경찰이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사실까지 고소인에게 떠넘겨면서 고소 자체를 반려하니 당황스러웠다"며 곤혹스러워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고소장 들고 가면 경찰이 '변호사 통해서 오세요'라고 반려하곤 해서 우편접수란 팁을 이용했던 것인데, 이젠 우편접수도 반려하고 변호사 통한 고소도 반려하는 지경에 이르렀군요. 저도 고소사건 진행해야 하는데 겁이 나네요"라는 글을 올리며 허탈함과 답답함을 동시에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관련해서 형사사건을 대리하는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경찰의 무성의한 대응이 도를 넘었다"며 대한변협 등 변호사 단체 차원에서 경찰을 상대로 시정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경찰 측은 "부족한 인력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수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사건 접수 등에 있어 일선 수사관들의 재량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모든 사건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없는 상황임을 감안해달라"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주위 검찰지인분들은 확연하게 업무가 줄었다고 하더라. 수사관 인력의 전환을 청 차원에서 이야기하는데 단기적으로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라는 글을 올린 변호사도 있고, "과거 변호사들이 검사직으로만 갔던 것이 이제는 경찰 쪽으로도 가는 게 좀 활성화되나요" 같은 기대와 자조가 섞여 있는 글들도 눈에 띈다.  

경찰의 고소장 접수 거부와 관련된 일선 변호사들의 반감과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수사 인력을 합리적인 수준까지 늘리거나 경찰 접수 사건에서 각하 제도를 도입하는 등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해 국민 권익보호에 누수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 고소장 제출하면 '임시접수' 후 면담... "편법" vs "정당 절차" 

현행법상 경찰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민원인의 고소·고발장 접수를 거부할 수 없다. 경찰청 범죄수사규칙 제50조는 ▲고소·고발 사실이 범죄를 구성하지 않을 때 ▲공소시효가 완성된 경우 ▲피의자의 사망·법인격 소멸 ▲권한 없는 자의 고소 등 고소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고소장을 반려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단 고소장이 접수되면 경찰은 담당 수사관을 배정하고 조사 및 수사에 착수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현재 경찰은 고소를 접수하기 전에 수사관과 고소인이 면담을 진행한 뒤 정식으로 사건을 접수할지 말지 결정하는 '임시접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임시접수 상태에서는 정식 사건번호가 부여되지 않고, 담당 수사관도 지정되지 않는다. 

이같은 임시접수 제도에 대해서는 "옥석을 가리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견해와 "국민의 재판청구권 침해를 야기하는 편법"이라는 견해가 첨예하게 엇갈린다.  

한 경찰 관계자는 "터무니없는 사유로 고소를 하거나, 민사사건을 형사사건화 시켜 상대방을 압박하려는 용도로 활용하려고 하는 등 악성 민원인이 많은 게 현실"이라며 "(임시접수 없이) 모든 사건을 접수해 세세하게 살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경찰관도 "무분별하게 고소장이 접수되면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죄없는 사람들이 피의자 신분이 되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며 "인권보호 차원에서 임시접수 제도를 만들어 운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대검찰청이 지난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2월 한 달 동안 접수된 고소·고발 사건은 모두 5만545건으로 11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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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경찰의 임시접수 제도가 일종의 게이트키퍼(gate keeper) 역할을 하며 '허가제'처럼 운영될 경우 국민 권익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사실상 경찰이 각종 민원 사건의 유일한 창구가 됐다"면서 "경찰이 처음부터 기소될 가능성이 큰 사건만 골라내 편의적으로 소장을 접수하면 그 피해는 억울한 일을 당한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고 비판했다. 

다른 변호사도 "임시접수 제도는 어렵고, 힘든 사건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며 "법률대리인 조차 선임하지 못하는 힘없는 서민들은 경찰의 '안 된다'는 말 한마디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도 지난 20일 고소장을 내려고 한 민원인에게 경찰이 "이건 형사사건이 아니라 민사사건"이라며 반려한 것은 위법한 직무집행에 해당하므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려 변호사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2019다29790).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경찰관은) 고소장을 접수한 후 심사해 이를 처리할 의무가 있는데, 고의 또는 중과실로 기본적인 고소장 접수 절차도 밟지 않고 이를 거부하는 것은 경찰공무원으로서의 직무상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라며 "공무원의 성실의무, 친절·공정의무는 단순한 도덕상의 의무가 아니라 법적 의무"라고 판시했다. 

 ■  근본적 개선방안 없나... "인력충원, 각하제도 도입 필요"    

한편 경찰의 고소장 접수 지연·반려 현상의 배경에는 만성적인 수사인력 부족과 재량권 부족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이론적으로 경찰은 요건만 맞는다면 100건이든 1천건이든 고소장을 접수하고 바로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오히려 경찰 수사가 꼭 필요한 사건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져 전반적인 경찰의 수사력 약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인력 보충 등 경찰의 수사여건과 환경을 대폭 개선하는 한편 민원인이 경찰의 반려 처분에 대해 납득할 수 있도록 '각하 제도'를 도입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찰의 임의적인 고소장 접수 거부나 반려행위는 국민들에 대한 실질적인 재판청구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면서도 "제한된 수사인력으로는 수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수사관 충원 등 합리적인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 고소·고발이 왜 이렇게 남발되고 있는지,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해 해결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 로스쿨 교수는 "경찰 사건에서 각하 제도를 도입해 일단 고소장을 접수한 뒤 수사를 진행하기 어려운 사항이 있는 경우에 각하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각하 결정을 하면 그 이유를 적어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민원인이나 대리인 입장에서도 경찰 처분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소지가 넓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련해서 한 변호사는 "경찰들은 옛날부터 검사 수사 지휘를 받아서 사건을 처리하는 걸 제일 편하게 여겼다"고 꼬집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권한이 확대된 경찰이, 부여받은 권한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선 일선 수사경찰에 대한 교육, 자질 향상과 함께 제도 개선도 반드시 함께 병행되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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