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발의 이상헌 의원 "이용자 알 권리"... 게임업계 "영업비밀 침해" 반발

/법률방송

온라인 게임 등에서 어떤 내용물이 담겼는지 알수 없는 '확률형 아이템'의 습득률 정보 등을 공개하도록 규정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법)' 전부 개정안을 놓고 게임업계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법안을 발의한 여당과 정부는 이용자 보호와 사행심리 억제를 위해 꼭 필요한 규제라고 밝혔지만, 넥슨과 엔씨소프트 등 대형 게임사들은 이같은 정보가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편 정부의 게임산업 규제를 탐탁지 않게 여겨오던 게임 이용자들이 이번만큼은 정부의 규제를 지지하고 나서 법안 통과에 무게 추가 실리는 모양새다.   

■ '확률형 아이템'이 뭐길래... 정치권·게임업계 '힘겨루기'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이 지난해 12월 15일 대표발의한 게임법 개정안이 이달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에 상정됐다. 

개정안은 ▲등급분류 절차 간소화 ▲확률형 아이템 표시 의무화 ▲게임 내용 수정신고 규정 완화 ▲비영리게임 등급분류 면제 ▲중소 게임사 자금 지원 ▲위법 게임의 광고 금지 ▲해외 게임사의 국내 대리인 지정제도 등의 내용을 골자로 삼고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된 사항이다. 

개정안은 먼저 '직·간접적으로 게임 이용자가 유상으로 구매하는 아이템 중 구체적 종류, 효과 및 성능 등이 우연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확률형 아이템으로 정의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를 경우 현재 넥슨과 넷마블, 엔씨소프트 등이 제공하는 다중접속 역할수행 게임(MMORPG)에서 '가챠'(ガチャ)로 불리는 아이템들이 확률형 아이템으로 포섭된다. 

일본어 '가챠'는 작은 기계에서 나는 금속음의 의성어로 우리말로는 '철컥','철거덕' 등에 해당한다. 이 소리는 뽑기 기계의 레버 당기는 소리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현재 랜덤 형식으로 제공되는 아이템을 통칭하는 뜻으로 외연이 확장됐다. 

개정안 제59조는 사업자에게 이같은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공급 확률정보를 공개하는 표시의무를 부과하고 있는데, 이에 게임사들이 거세게 반대하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게임사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지난 15일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대한 게임업계의 검토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협회는 의견서를 통해 "수백 개에 달하는 아이템들은 게임 내 차지하는 비율·개수 등에 맞춰 밸런스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같은 밸런스는 게임의 재미를 위한 본질적인 부분"이라며 "이같은 내용은 영업비밀에 해당하므로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정보를 공개하는 입법은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GSOK)도 26일 '바람직한 게임규제'를 주제로 온라인 세미나를 열고 정부 주도의 규제보다는 게임사들의 자율규제를 유지·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 조치에 분명하게 반대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날 발표를 맡은 심우민 경인교대 교수는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표시 의무가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며 "게임사들의 자율규제를 활성화시켜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새로운 입법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법안을 발의한 이상헌 의원은 "강원랜드의 슬롯머신도 당첨확률과 환급률을 공개하고 있다"며 "확률 공개는 이용자들이 원하는 최소한의 알 권리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 의원은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세계적인 추세와 부합한다"며 ▲확률형 아이템의 위험성을 경고한 EU 내수시장 소비자보호위원회 보고서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으로 분류한 영국왕립공중보건학회 보고서 ▲ 확률형 아이템 판매를 금지한 벨기에 정부의 조치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정보 공개를 의무화한 중국 정부의 조치 등을 언급했다.   

26일 국회 문체위에 참석한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정보를 공개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며 "합리적이지 못한 부분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밝혀 게임법 개정안 통과를 지지했다. 
   
■ 청와대 청원에 트럭시위까지... 이용자들 "개정안 적극 지지"   

실제 게임을 이용하는 유저들은 대부분 게임법 개정안 통과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게임산업 규제 조치에 게임사들과 힘을 합쳐 반대의 목소리를 내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심지어 일부 이용자들은 조직적으로 트럭시위를 벌이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게임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호소문을 작성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이용자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국내 최대 게임사인 넥슨이 제공하는 '메이플스토리'가 최근 아이템 조작 논란에 휩싸이면서 급속도로 확산됐다.  

2003년 출시돼 누적 이용자 수만 1천800만명에 달하는 메이플스토리는 넥슨의 핵심 수입원이다. 그런데 메이플스토리에 등장하는 확률형 아이템인 '환생의 불꽃'을 놓고 이용자와 게임사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원래 '환생의 불꽃'은 자신이 보유한 장비의 성능을 무작위로 강화시켜 주는 아이템인데, 넥슨은 지난 18일 게임 업데이트를 하면서 '환생의 불꽃'을 통해 부여되는 추가 옵션을 동일한 확률로 수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이용자들은 확률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원칙대로라면 '환생의 불꽃'은 무작위로 성능 강화 옵션을 부여해야 한다. 하지만 18일에 이르러서야 "동일한 확률을 부여했"'는 넥슨의 발표 내용은 그동안 '환생의 불꽃'은 무작위가 아닌 다른 알고리즘에 따라 옵션을 부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인벤'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같은 의혹이 확산되자, 넥슨은 19일 자사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하고 "환생의 불꽃 아이템에 오류가 있었다"며 "빠른 시일 내에 보상 방안을 안내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24일에는 2019년 2월~2021년 2월 사이 이뤄진 이용분에 대해 일부 피해를 보상하는 보상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용자들은 과도한 결제를 유도하는 넥슨의 과금 정책에 큰 불만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확률조작과 부실대응 논란까지 맞물리면서 억눌려온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이러한 이용자들의 분노는 게임법 개정안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로 이어졌다.  

메이플스토리에서 '세계'라는 아이디를 사용하고 있는 한 이용자는 "그동안 '환생의 불꽃'을 통해 원하는 강화 성능을 얻기 위해서 수백에서 수천만원을 쓴 유저들도 있는데, 이 분들은 정상적인 확률로 나오는 경우와 비교했을 때 더 많은 돈을 쓴 것"이라며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정보가 공개되지 않으면 게임사들이 공정한 확률을 제공하고 있는지 알수가 없어 이용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임사들이 속이지 않는다면 확률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이용자들의 주된 입장"이라며 "게임사들이 개정안에 적극 반대하는 것을 보니 오히려 이용자들은 '무언가 속이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 이용자들은 트럭을 임차해 25일부터 3월 1일까지 국회와 홍대, 넥슨의 본사가 있는 판교 테크노밸리 일대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트럭에는 '카지노는 확률공개, 메이플은 영업비밀', '확률조작 해명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이밖에도 자발적으로 1인 시위 등을 전개하며 전방위적으로 게임사들을 압박해 갈 예정이다.  

■ "법리적 판단 논하기에는 이른 시점"... 법조계는 '신중 모드' 

한편 법조계는 게임법 개정안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개정안 관련 논의가 법리 쟁점보다는 정책 사항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다,  법안소위 검토 단계에서 당부당(當不當)을 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다만 게임산업협회가 제기한 위헌 논란에 대해서는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는 반응이 많았다.  

앞서 게임산업협회는 게임법 개정안이 ▲불명확한 개념 사용▲사업자의 영업의 자유 침해 ▲낮은 실현가능성 ▲다른 법과의 형평성 문제 ▲의무 조항의 신설로 인한 사업자 부담 강화 등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어 위헌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협회가 주장하는 개정안 각 조문에 대한 비판 의견은 해석 범위를 처음부터 축소한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전체적 법안의 맥락과 조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게임사들의) 원론적인 권리 주장에 그칠 뿐이어서 헌법재판소 등에서 구체적으로 판단한다 할지라도 위헌까지 나아가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변호사도 "게임 아이템이 어떤 방식으로 구체적인 옵션을 부여하는지 등의 핵심 알고리즘이 아닌, (개정안에 규정된) 단순한 습득 확률 공개는 영업비밀로 인정받기 어려워 보인다"며 "이를 재산권 침해라고 의율한 의견서 내용은 타당성을 얻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반면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개정안 내용이 실제로 적용돼 게임사들의 실적 저하가 가시화되는 등 피해가 나타나면 인과관계를 입증해 구체적인 권리 침해로 판단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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