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말하는데 형사처벌 대상인가" vs "개인 인격권 침해 방치 안돼"

[법률방송뉴스] 오늘(23일) 인터넷에선 '택시요금 안 내고 튄 거지'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집에서 택시요금을 가지고 나오겠다고 하고는 줄행랑을 놓은 승객의 행태와 얼굴을 그대로 다 공개해버린 건데요.

관련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여부가 법조계에선 '뜨거운 감자'인데, 헌법재판소가 25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립니다. 장한지 기자가 단독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택시요금 안 내고 튄 거지'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게시물입니다.

택시기사의 아들이 이른바 '먹튀'를 한 승객의 얼굴이 찍힌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온라인에 올려버린 겁니다.

[택시기사-승객]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아니, 직진, 직진. 좀만 직진해주세요."

이리저리 주택가 골목을 돌게 하더니,

[택시기사-승객]
"(여기로요?) 오른쪽이요, 오른쪽. (여기요?) 기사님, 여기 차 잠깐만 댈 수 있나요? 집이 바로 앞인데 현금 갖고 내려오려고 하거든요. 잠깐 딱 1분만 기다려주시면 돼요. 한 바퀴만 돌고 오시면 바로 앞이라..."

"돈 가져온다면서 도망가는 손님 많다. 휴대폰을 맡기고 가라"는 택시기사의 요청엔 "가족들과 연락을 해야 한다"며 피해갑니다.

[택시기사-승객]
"(휴대폰 하나 주고 가요.) 휴대폰이 있어야 제가 그게 되는데. 휴대폰이 있어야 제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현금을 빼 오는 거라서 전화기는 필요하거든요."

택시기사가 난감해하자 "자기는 그런 사람 아니"라고 강조하며, "갖다오겠다"고 쐐기를 박습니다.

[택시기사-승객]
"사장님 저 안 도망가요, 나이 이렇게 먹고. 바로 앞인데... (바로 앞이고 뭐고 다 그래요.) 돈 드리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바로 앞인데. 바로 갔다 올 수 있어서 믿어주세요. 진짜로. 돈 이런 거 갖다가 그러는 사람 아니에요."

택시기사가 마지못해 "네"라고 하자 이 승객은 택시를 떠나 아니나 다를까 그대로 줄행랑을 놓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택시기사의 아들이 "2만원도 안 되는 요금 아끼려고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뻔뻔하게 말 바꾸고 거짓말하고 있다"며 도망간 승객의 얼굴을 공개해버린 겁니다.

네티즌들은 "뻔뻔하다. 범죄자에 무슨 인권이냐"며 얼굴 공개를 지지하고 있지만, 법적으로 이는 도망간 승객의 잘잘못 여부를 떠나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사안입니다.

[손지원 변호사 /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 입법활동]
"특정된 사람이 택시요금을 지불하지 않고 도망갔다는 사실을 적시한 것이고, 그 사람이 잘못한 일이고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사실'이기 때문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소지가..."

형법 제307조 '명예훼손' 조항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습니다.

관련해서 법조계에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법'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습니다.

가령 용기 내 직장 내 성폭력 피해를 폭로했는데, 성폭력 가해자가 고소하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 받을 수 있는 겁니다.

"'사실'을 말하는 게 어떻게 처벌을 받아야 할 '죄'가 될 수 있냐"는 겁니다.

이와 관련 유엔(UN)도 지난 2011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우리나라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규정을 폐지하라고 권고한 바 있습니다.

[손지원 변호사 /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 입법활동]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라는 형벌조항이 폐지된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민사상의 불법행위는 성립할 수 있기 때문에 민사 손해배상 제도로 억제나 피해구제가 가능하다고 보고요."

이와 관련 헌법재판소엔 지난 2017년과 2018년, 형법 제307조 1항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위헌확인 심판이 각각 청구된 바 있습니다.

해당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헌법에 위배된다는 취지인데, 헌재는 두 사건을 병합해 지난해 9월 공개변론을 진행했습니다.

공개변론에서 청구인은 "자유민주 사회에선 어떠한 상황이라도 진실을 말하는 것 자체가 죄가 될 수는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습니다.

"일반적 행동의 자유가 있듯이 진실을 말할 일반 자유가 있다. 사실을 적시하는 행위를 형벌이 부과되는 범죄의 관점으로 보는 것은 헌법에 반한다"는 것이 청구인의 변론 요지입니다.

[김병철 변호사 /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헌법소원 청구인]
"의견을 형사처벌 하는 것은 모욕이고 사실을 처벌하는 것은 명예훼손인데 사실에 관련된 것이 진실한 사실이라고 한다면 처벌돼서는 안 되죠. 처음부터 처벌한다는 발상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봐지는 것이죠."

이에 대해 헌법소원 사건에서 국가를 대리하는 법무부는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중요한 가치이고 기본권이지만, 개인의 인격권 역시 헌법상 보호돼야 하는 중요한 기본권"이라고 맞섰습니다.

사실이라고 무제한 이를 적시하고 공표하게 내버려 둔다면 이로 인한 인격권 침해가 심각해, 제한이 필요하다는 취지입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공개변론 뒤에도 5개월가량 사건을 숙고해온 헌재가 모레 해당 사건에 대한 결정을 내립니다.

헌재는 앞서 지난 2016년 2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청구인 측에선 헌재가 공개변론을 연 점 등을 들어 이번엔 전향적인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김병철 변호사 /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헌법소원 청구인]
"나는 진실이라고 믿고 얘기했는데 이것을 처벌한다, 이것은 기득권에 관련된 문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적시 명예훼손과 관련된 위헌 판단이 나온다는 것은 우리나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한 획을 그을 거라고 저는 봐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 공고히 해서..."

다만 헌재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위헌 판단을 한다고 하더라도 법적 안정성을 고려해 위헌 대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릴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관련해서 질병이나 성적 취향 등 민감한 사생활이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공개돼 인격권이 침해되는 것을 막기 위한 보완 입법 마련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습니다.

[손지원 변호사 /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 입법 활동]
"개인의 성 이력이나 질병과 같이 개인의 내밀한 사적인 정보를 공개한 경우에는 단순히 명예훼손을 넘어서 사생활의 비밀, 프라이버시라는 또 다른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더라도 사생활의 비밀을 개인의 의사에 반해서 공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규정을 신설해야 한다는 논의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해 한 차례 합헌 결정을 내린 헌재가 이번엔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됩니다.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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