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단체들도 강력 반대... "비판적 언론 위축시켜, 결국 권력·기업 보호막"

[법률방송뉴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언론과 포털의 명예훼손 허위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방침을 정하면서 거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가짜뉴스 근절을 위해선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여당의 입장인데, 비판적 언론에 재갈 물리기라는 반론도 강합니다.

설 연휴가 끝나면 민주당이 본격적으로 법안 추진 논의에 나설 예정이어서 격론이 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이슈를 짚어봤습니다. 장한지 기자입니다.

[리포트]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지난해 6월 대표발의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입니다.

법안은 제안이유에서 "언론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의 경우 원고 승소율은 39.74%에 불과하다"며 "미국의 경우 위법성, 의도성, 악의성이 명백한 경우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통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법안은 이에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로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에 법원은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않은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여 실효성 있는 구제제도를 확립하고자 한다"고 제안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개정안은 이에 따라 언론중재법 제30조의 2 '손해배상 책임' 조항을 새로 신설했습니다.

30조의 2, 1항은 "법원은 언론사가 악의적으로 인격권을 침해한 행위가 명백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명할 수 있다"고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의 근거를 명시했습니다.

같은 조 2항은 "제1항에서 '악의적'이란, 허위사실을 인지하고 피해자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힐 목적으로 왜곡보도를 하는 것을 말한다"고 '악의적 보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관련해서 민주당은 유튜브 등 정보통신망을 포함해 언론과 포털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3월 임시국회 내에 처리한다는 방침입니다.

이낙연 대표는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고의적 가짜뉴스와 악의적 허위정보는 피해자와 공동체에 대한 명백한 폭력으로,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을 영역이 아니다"라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민주당 노웅래 '미디어·언론상생 TF' 단장도 "배상금 수준이 턱없이 낮다 보니 이를 악용해 허위 왜곡보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며 "언론 탄압이라는 야당 비판은 명백한 왜곡"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고의와 중과실이 입증되는 경우에만 국한해 적용하겠다는 것"이라며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하나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노웅래 단장의 말입니다.

언론중재법을 대표발의한 정청래 의원도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언론의 징벌적 손해배상법은 명백한 가짜뉴스, 명백한 허위보도에 대한 손해액의 3배를 물리는 법안이다"라며 "가짜뉴스, 허위보도 안 하면 쫄거나 떨 필요가 없다"고 적었습니다.

정청래 의원은 그러면서 "깡패질, 도둑질 안 하는 사람은 파출소 생기면 안전하니까 더 좋고 환영한다"며 "반대하는 당신들은 깡패 아니면 도둑이냐"고 되물었습니다.

민주당의 이같은 주장에도 야당인 국민의힘은 정권 비판적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9일 "언론에 대해 중압감을 더 주기 위해 그런 시도를 하는 것 같다"며 "형벌도 가하고 재산상 피해도 줘서 언론에 대해 위축을 시도하려는 것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제대로 된 방향이 아니다. 왜 그렇게 조급하게 모든 걸 지금 하려고 그러는지 잘 납득되지 않는다"는 게 김종인 위원장의 비판입니다.

IT 시민단체 '오픈넷'도 표현의 자유 위축과 공적 사안에 대한 의혹 제기 차단을 우려하며 법안 추진 중단을 촉구했습니다.

오픈넷은 9일 성명을 내고 "해당 법안이 보호하는 것은 결국 권력자나 기업이 될 것"이라며 "고액의 배상금을 청구해 비판적 언론을 위축시키고자 하는 전략적 봉쇄소송을 남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오픈넷은 그러면서 '이명박 BBK 실소유주설', '최태민-최순실 부녀와 박근혜 유착관계' 의혹 제기 등을 거론하며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있었다면 이 사건들에 대한 의혹 제기와 검증, 단죄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황정근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 / 법무법인 소백]
"징벌적 손해라는 게 결국 기업의 부담으로 가는 것인데 언론사라는 게 재정적인 부담을 의식하게 되면 보도가 위축되는 게 가장 현실화될 거예요. 언론사는 광고에도 민감하잖아요, 영업구조가. 돈을 버는 기업이 아니잖아요, 실제로. 그런데 징벌적 손해배상이 생기면 보도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언론단체들도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한국신문협회와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방송인편집회는 △'악의적'이라는 기준이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점, 이로 인해 △언론사의 자기검열이 과도하게 강화될 수 있는 점, 결과적으로 △언론자유가 훼손될 수 있는 점 등을 들어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와 함께 우리 법체계상 허위보도에 대해선 명예훼손 등 형사처벌이 가능한데, 여기에 형벌적 성격을 갖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는 경우 이중 처벌, 위헌 소지가 있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됩니다.

[황정근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 / 법무법인 소백]
"거기(명예훼손 처벌)에다가 징벌적인 것까지 그것은 심각하죠. 그러면 진짜 언론이 감당이 되겠어요. 징벌적 손해배상이 생기면 (손해배상액을) 감당 못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위축효과'가 기자들에게 가죠. (그래서) 미리 사전검열하는, '어휴 큰일나지. 내가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면 안 되지' 기사 자기검열을..."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있습니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특허법,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조물책임법 등에서 일정한 위법행위나 고의적 침해, 중대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엔 실손해의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이미 도입돼 법제화되어 있다는 반론입니다.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처벌은 별론으로 하고, 악의적 허위보도의 경우 고의적 침해나 중대한 손해를 일으킨 '하자있는 제품'이나 '위법행위'로 간주해 언론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장철준 단국대 법대 교수 / 한국언론법학회 연구이사]
"기본적으로는 국가가 형벌로써 규제하는 형사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그 우리의 규범현실은 형사규제를 기본으로 하고 또 민사규제를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국제적인 기준이나 차원에서 보자면 형사규제를 민사규제로 일원화하는 쪽이, 그런 쪽으로..."

언론 상대 손해배상 청구가 인용되는 경우가 40% 정도에 불과한 점, 그나마 액수도 2018년의 경우 전체 인용사건의 2/3가 500만원 이하인 점도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필요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장철준 단국대 법대 교수 / 한국언론법학회 연구이사]
"손해배상액 액수 자체가 실질적으로 현실화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규범의 위하력 자체가 굉장히 약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언론 보도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적은 손해배상액을 물어주고라도 나의 보도의 뜻을 관철하겠다는 그런 의도가 가능한 정도의 상황이기 때문에..."

찬반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정청래 의원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검토보고서도 판단을 유보하고 있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악의적 보도 예방과 언론사 책임성 강화라는 긍정적인 측면과 언론 자유 제약 등 부정적인 측면이 있어, 도입 여부 및 범위 등 구체적 내용은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입법 정책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보고서 내용입니다.

관련해서 영미법 국가에선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일반적으로 도입돼 있고, 언론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 미국 일리노이주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김익태 변호사의 말입니다.

[김익태 미국 변호사 / 법무법인 도담]
"징벌적 손해배상이라고 하는 것은 영미권 사법제도에서 손배해상액이 충분치 않을 때 혹은 너무 악의적이고 고의적인 행위로 손해를 입혔을 때 배상을 명령하는 제도입니다. 언론사도 여기에 예외는 아니죠. 미국에서는..."

다만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이 내려지는 경우가 자주 있는 건 아니지만 악의적 허위·왜곡 보도라고 판단이 되면 단순히 '손해액의 몇 배' 이 정도가 아니라 천문학적인 "말 그대로 징벌적 배상이 내려진다"는 것이 김익태 변호사의 설명입니다.

[김익태 미국 변호사 / 법무법인 도담]
"한 예로 1991년에 텍사스의 한 검사가 뇌물 혐의가 있다고 해서 지역 방송국이 보도했는데 이 보도가 나가고 수사가 이어졌습니다. 검사는 무죄판결을 받았고 이후 방송국에 대해서 손해배상 소송을 냈는데 배심원이 당시 돈으로 5천800만불, 한화로 600억, 지금으로 치면 1천억이 넘어갈 거대한 금액의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을..."

언론계에선 공영방송사 지배구조 개선, 신문법 개정 등 현실적으로 시급하고 중요한 법안들이 있는데 가짜뉴스 퇴치용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언론개혁의 전부인 것처럼 비춰지는 것을 경계하며 선후와 경중을 가려 언론 관련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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