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시간 부적절 메시지, 집무실 신체접촉... 성적 굴욕감, 혐오감 느끼게 해"
"서울시 성인지 감수성 낮아"... 법원 이어 인권위도 성추행 피해 사실 인정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25일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 직권조사 결과보고' 안건 등을 상정해 논의한 뒤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25일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 직권조사 결과보고' 안건 등을 상정해 논의한 뒤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법률방송뉴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25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에 대한 직권조사를 통해 피해자에게 한 성적 언동 등을 사실로 인정하고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이날 2021년 제2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 직권조사 결과보고' 안건을 심의한 뒤 이같이 밝히면서 서울시와 여성가족부, 시도지사협의회 등 관계기관에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을 권고하기로 의결했다.

인권위 직권조사단은 지난해 8월부터 서울시청 내 시장실과 비서실 현장조사, 2차례에 걸친 피해자 면담조사를 진행하고 참고인 51명을 조사했다. 피해자 휴대폰 디지털 포렌식과 검·경 등 수사기관, 서울시, 청와대, 여성가족부가 제출한 자료를 분석했다.

인권위는 "박 전 시장이 늦은 밤시간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과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과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로 인정 가능하다"며 "이와 같은 박 전 시장의 행위는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으로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이러한 행위들을 제외하고 피해자가 주장한 다른 여러 피해 의혹들은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면서도 그것은 "피조사자(박 전 시장)의 진술을 청취하기 어렵고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반적 성희롱 사건보다 사실관계를 좀 더 엄격하게 인정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인정된 사실만으로 박 전 시장의 성적인 말과 행동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른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서울시 관계자들의 성희롱 묵인·방조 의혹에 대해 인권위는 "관련 정황은 발견하기 어려웠고, 피소사실 유출 경위는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인권위는 "동료 및 상급자들이 피해자의 전보 요청을 박 시장의 성희롱 때문이라고 인지했다는 정황은 파악되지 않는다"면서도 "지자체장을 보좌하는 비서실이 성희롱의 속성 및 위계구조 등을 인식하지 못하고, 두 사람의 관계를 친밀한 관계라고만 바라본 낮은 성인지 감수성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전 시장이 피소됐음을 인지하게 된 피해자의 고소사실 유출 경위에 대해 인권위는 "수사기관에서 자료를 받지 못하고 박 전 시장의 휴대폰 포렌식 결과를 입수하지 못했으며 유력한 참고인들이 답변하지 않는 등 조사에 한계가 있어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서울시가 지난 4월 발생한 서울시장 비서실 내 성폭력 사건, 피해자 A씨에 대한 동료 직원의 성폭력 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행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4월 사건 처리 과정에서 서울시는 일반적인 성폭력 형사사건 또는 두 사람 간의 개인적 문제라고 인식한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드러냈다"며 "이로 인해 비교적 잘 마련된 서울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인권위는 또 피해자가 박 전 시장 보좌 업무 외에 샤워 전후 속옷 관리, 약 복용 챙기기, 혈압 재기, 명절 장보기 등 사적 영역의 노무까지 수행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위와 같은 비서 업무의 특성은 그 업무를 수행하는 자와 받는 자 사이의 친밀성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공적 관계가 아닌 사적 관계의 친밀함으로 오인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전 시장은 지난해 7월 전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 A씨로부터 강제추행 등 혐의로 고소된 다음날 실종됐다가 북악산 인근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이날 인권위가 직권조사 결과 박 전 시장의 피해자에 대한 성적 언동은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규정함에 따라, 경찰이 박 전 시장 사망 후 5개월여에 걸친 조사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발표했던 성추행 의혹은 사실로 확인됐다.

앞서 법원도 A씨와 함께 서울시장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동료 직원에 대한 이른바 '4월 사건'에 재판에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는 판결을 한 바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1부(조성필 부장판사)는 지난 14일 A씨를 성폭행한 혐의(준강간치상)로 기소된 전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 B씨에게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B씨에 대한 판결을 통해 "B씨는 A씨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은 것은 자신의 범행이 아닌 박원순 전 서울시장으로부터의 성추행 피해 등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며 "피해자 진술 등에 비춰보면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입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 근본적 원인은 B씨의 범행"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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