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는 '법조계 유령'... 판결문 공개, 배심제 확대로 상식을 복원해야"

[법률방송뉴스] 오늘(18일) 오후 열린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 6개월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이 소식은 잠시 뒤 ‘뉴스 사자성어’에서 알아보고, 오늘 ‘LAW 투데이' 첫 소식은 ‘책과 사람들’ 코너로 시작하겠습니다.

공고 기계정비과를 나온 용접공 출신 변호사의 눈에 비친 전관예우 문제, ‘법조계의 투명가면-전관예우 보고서’를 쓴 안천식 변호사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들을 들어봤습니다. 신새아 기자입니다.

[리포트]

대한민국 법조계의 중심 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안천식 변호사는 공고 기계정비과를 나온 ‘용접공’ 출신입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포항제철 공고를 갔고, 졸업 후 5년 6개월간 용접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나도 대학을 가서 다른 세계를 알고 싶다’라는 생각에 경희대 법대에 진학해 늦깎이 법대생이 됐고, 30대 중반에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습니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뿌듯했습니다.

[안천식 변호사 / 법무법인 씨에스]
“변호사 개업하고 어느 때보다도 굉장히 희망이 있고 정의감이라기보다 상식으로 이제 법률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사회에 봉사도 봉사지만 자기 할 일을 다 함으로서 사회에 기여할 것이다...”

법률을 최소한의 상식이라 생각하고 믿었던 안천식 변호사는 그러나, 개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사건을 맡으면서 그 믿음이 뿌리에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안천식 변호사 / 법무법인 씨에스]
“2005년도에 대기업 A건설회사가 김포에 사는 기을호(가명)씨에게 소송을 겁니다. 이유는 당시 기을호씨 소유의 전답 약 1천여평, 당시 시가로 한 70억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걸 (A건설이 기을호에게) 9억4천만원에 넘겨달라고 소송을...”

자신은 해당 건설사에 그 같은 금액에, 그 같은 계약을 한 적이 없다는 의뢰인의 말을 신뢰해 안천식 변호사는 사건을 맡습니다.

그게 15년이나 가는 긴 소송이 될 줄은 안천식 변호사는 그때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안천식 변호사 / 법무법인 씨에스]
“이것은 잘못됐다는 게 눈에 보이거든요. 그래서 보이는 걸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려고 했는데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건이 점점 왜곡되고 점점 수렁에 빠지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이럴 수도 있구나...”

그럼에도 안 변호사가 사건을 포기하지 않은 건 의뢰인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길 수 있을 것이란 믿음도 있었습니다.

[안천식 변호사 / 법무법인 씨에스]
“아, 이게 사법 현실이 바로 이런 거구나... 그런데 이제 생각해보세요. 저는 사법 현실이 이런 것이라고 할 순 있지만 의뢰인은 어떻겠어요. 저는 사법 현실이 이런 것이라고 하고 끝내면 그만이에요, 그냥. 순응하면 그만인데 의뢰인은 그리고 사실 저는 그 당시에는 될 수 있다고 믿었어요. 당연히 될 수 있다고 믿었고 상식적으로 이거는 뭐 시간이 지나면...”

이 같은 믿음에도 안 변호사 주장에 따르면 계약서 등 상대 건설회사의 증거와 증언들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찾아내도,

[안천식 변호사 / 법무법인 씨에스]
“그런데 나중에 확인된 바에 의하면 그 계약서에 기재돼 있는 계좌번호 글씨는 이지학(가명)의 글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글씨로 나타납니다. 결국 거짓말이죠. 그리고 그 계약서에 기재돼 있는 계좌번호가 있는데 예금 계약을 해지한 계좌번호입니다. 그러니까 계약을 해지한 계좌번호를 불러줬다는 말이 되는 거거든요. 결국은 모두 거짓말이 탄로 납니다.”

그럼에도 무슨 이유에선지 법원은 안천식 변호사가 제시하는 주요 증거나 논거를 받아들이지 않고 안 변호사는 결국 재판에서 졌습니다.

[안천식 변호사 / 법무법인 씨에스]
“(재판이) 큰 건으로서는 한 10건이 되고요. 10여 건이 되고요. 나머지 가처분, 고소 뭐 이렇게 사건해서 총 30건이 넘게 소송이 진행됩니다. 그런데 A건설의 잘못된 주장, 거짓 주장, 거짓 증거 그런 부분을 모두 받아들이더라고요. 정말 이런 일이 대한민국 법원에서 일어날 수 있구나.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어났구나, 정말 저도 충격을 많이...”

이 일련의 소송 과정을 안천식 변호사는 지난 2012년 12월 ‘18번째 소송’, 그리고 지난 2015년 ‘고백 그리고 고발’, ‘찢어진 예금통장’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낸 바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소송이 패소로 끝난 지난해 2월 안천식 변호사는 지난 15년의 경과를 ‘법조계의 투명가면-전관예우 보고서’라는 책으로 정리합니다.

네 번째 저서 ‘전관예우 보고서’ 서문에 안천식 변호사는 “법관을 너무 믿지 마세요. 사법 독립, 법관의 재판 독립도 너무 믿지 마세요”라고 적어 넣었습니다.

[안천식 변호사 / 법무법인 씨에스]
“저는 당연히 첫 번째 재심소송에서 A건설 측 핵심증인의 위증죄를 받아냈고요. 두 번째 (재심소송)에도 A건설 측 핵심증인의 위증죄를 또 받아냈어요. 그러면 A건설이 주장하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게 되는데 그럼 당연히 판결이 바뀌겠다 싶었는데 안 바뀌더라고요. 아 이거는 뭔가 정말 법원에서..."

안 변호사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 법원이 왜 이렇게 유독 안 변호사 사건에 대해서 가혹했을까.

법원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을 되돌리는 데 인색했기 때문이라고 안 변호사는 말합니다.

[안천식 변호사 / 법무법인 씨에스]
“해결이 안 되고 점점 왜곡되고 이런 부분이 15년 간 쌓이다 보니 법원도 상당부분 너무 자기들이 잘못했다. 그런 부분을 ‘아, 이거 밝히기가 지금 두렵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까지 느껴지고요. 그리고 ‘이 사람 한 사람만 조용하게 하면 되는데 그럼 자기들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얘가 왜 이럴까. 결국 얘도 포기하겠지’ 뭐 이런 식으로...”

바로 그런 보이지 않는 압박과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 안 변호사가 일련의 책을 펴낸 이유이기도 합니다.

[안천식 변호사 / 법무법인 씨에스]
“혹시 이러다가 정말 밥벌이도 못 하는 것 아닌가, 변호사 사회에서 왕따당하는 것 아닌가 이런 두려움이 굉장히 컸고요. 그런데 내가 이걸 안 하고 이런 부분을 밝히지 않고 그대로 침묵했을 때 내가 편할 수 있을까, 스스로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걸 생각했을 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재판 진행과 판결, 안 변호사는 ‘전관예우 보고서’에서 판사들의 권한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안천식 변호사 / 법무법인 씨에스]
“재판에 관한 권한이 판사한테 모두 집중돼 있어요. 재판진행권, 사실확정권, 법리적용권, 재판에 대한 3대 권한인데 이 모든 게 판사가 다 좌지우지합니다. 판사가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판사의 권한을 견제할 만한 별다른 장치가 없어요. 판사가 잘못하더라도 그냥...”

억울함을 풀어줘야 할 법원에서 억울함을 더 얻어오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이라는 것이 안 변호사의 지적입니다.

[안천식 변호사 / 법무법인 씨에스]
“예컨대 판사가 뱀을 보고 ‘생선이다’라고 판단하면 그게 뱀이 생선이 되는 겁니다. 돌을 갖고 ‘떡이다’라고 하면 그게 떡이 되는 거예요. 떡인 줄 알고 돌을 먹어야 하는 거예요. 돌을 먹어야 하는 거예요. 국민들은 그것을 못 먹는다는 걸 뻔히 아는데도 불구하고 판사들이 그게 떡이라고 하면 그걸 먹든 못하든 자기 집에 가져와야 하는 거예요. 그걸 견제할 기능이 없다는 거예요.”

이해도 수긍도 어려운 판결, 뭔가 넘어서기 어려운 견고하고 높은 벽, 느끼고 있지만 만져지진 않는 ‘유령’ 같은 존재, 안 변호사는 책 곳곳에서 전관예우 문제에 대해 얘기합니다.

[안천식 변호사 / 법무법인 씨에스]
“전관예우라는 게 이른바 법조계에서는 ‘법조계 유령’이라고 하거든요. 분명히 사람들이 인식하고 다 알고 있는데 ‘전관예우가 뭐냐’ 하면서 ‘실체를 대라’고 하면 순간적으로 없어져요, 그냥. 없어지고 변호사들도 그 부분에 대해서 90%는 전관예우가 있다고 하면서도 증거를 대라고 하면 아무도 증거를 못 댑니다. 사라져 버립니다."

보이진 않아도 만져지진 않아도 전관예우는 분명히 있고, 그 수요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안 변호사의 말입니다.

[안천식 변호사 / 법무법인 씨에스]
“전관예우를 선호하는 수요가 계속 있다는 거예요. 가령 재벌, 대기업, 정관계 인사들 이런 사람들이 이른바 ‘전관예우’ 받는 변호사들을 끊임없이 원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재판받는 현실 보면 대기업, 재벌 이런 사람들 할 땐 항상 전관예우를 대동하고 다니죠. 심지어...”

현직 판사나 검사가 수십년 몸담다 현직을 떠나면 언젠가는 전관이 되고, 그런 전관을 향한 수요는 계속 이어지고, 전관예우가 없으면 오히려 이상하다는 것이 안 변호사의 지적입니다.

[안천식 변호사 / 법무법인 씨에스]
“심지어 사법개혁을 외치는 정치인들조차도 자기들 재판에서 항상 전관 출신 변호사들 항상 대동하고 다닙니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수요가 발생하고 그런 사람은 계속 발생하고 법원 내에서 일어난 일을 견제도 못 하고 이런 상태에서 전관예우가 없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죠. 이건 마치...”

이렇게 영원히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같은 전관예우 문제를 포함한 뿌리 깊은 사법 불신을 해소하려면 적어도 2가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안 변호사는 강조합니다.

하나는 헌법 제109조 판결문 공개 원칙에 따른 판결문 공개입니다.

판결문만 제대로 공개해도 법원 판결에 대한 불신이 상당 부분 해소될 거라고 안 변호사는 거듭 강조합니다.

[안천식 변호사 / 법무법인 씨에스]
“우리 현실은 대부분의 판결이 공개되지 않고 있죠. 참혹한 일입니다. 헌법에서 그렇게 정해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을 가장 먼저 실천해야 될 법원이 그 부분을 전혀 실행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나쁜 재판 혹은 잘못된 재판 같은 경우엔 일반에 공개함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재판을 보면서 ‘아 이거는 잘못됐다’고 생각하면서 전체 사법제도가 올바르게 갈 수 있는 길이 있죠. 그런데 그걸 다 지금...”

다른 하나는 전면적인 국민참여재판, 배심제 확대를 통한 법관 권력 분산입니다.

[안천식 변호사 / 법무법인 씨에스]
“국민참여재판이나 배심제도를 통해서 법관에게 집중돼 있는 권한을 일반 국민들에게 나눠줘서 일반 국민들이 판단하게 하자, 일반 국민들의 상식으로 판단하자. 그래서...”

특히 지금처럼 진영논리가 법원 판결까지 흔드는 현실에선 배심제를 통한 상식의 복원이 중요하다는 것이 안 변호사의 말입니다.

[안천식 변호사 / 법무법인 씨에스]
“사람들이 올바른 판결을 해도 그걸 안 믿어요. 편을 갈라서 서로 조롱하고 니들이 언제 올바른 판결을 했냐, 과거에 누구 판결은 어떻다 하면서 서로 안 믿고 이전투구로 가거든요. 사법 불신이 극심하기 때문에 이 부분이 해결될 수 없는 경지까지 갔다는 거죠. 이럴 때는 배심제도나 이런 부분을 반드시 도입을 검토해야...”

안 변호사는 자신은 특별한 문제의식을 가진 것도, 투사도 아니라며 다만 법률과 상식을 믿는 변호사로서 불의와 비합리에 익숙해지진 않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안천식 변호사 / 법무법인 씨에스]
“사실 저는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뭐 특별한 신념을 가졌다는 생각을 정말 한 번도 한 적이 없고요. 그냥 정상적인 변호사 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상적인 변호사 생활이고 눈앞에 보이는, 아무리 법원의 판결이라고 해도 눈앞에 보이는 불의와 왜곡된 판결 이것을 모르고 지나치면 앞으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될 것이고 제가 거기에 익숙해지면...”

법률방송 신새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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