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를 위한 변호사모임' 산파 역할... "과실 입증책임 반드시 전환해야"

[법률방송뉴스] 모든 사고는 다 일어나지 않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그중에서도 당사자와 가족들을 정말 힘들고 피폐하게 하는 대표적인 게 바로 '의료사고' 아닌가 합니다.

이 의료사고와 관련해 법조계에는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이라는 단체가 있는데, 지난 4년간 의변 대표로 의변을 이끌어온 이인재 변호사가 이달 말 임기가 끝난다고 합니다.

의료소송에 천착해 온 이인재 변호사를 만나 관련 얘기들을 들어봤습니다.  'LAW 투데이 인터뷰' 장한지 기자입니다.

[리포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의료사고'를 검색해봤습니다.

"말 한마디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님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같은 제목으로 가슴을 쥐어뜯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들이 가득합니다.

그럼에도 병원 측의 반응은 대동소이합니다.

[사망의료사고 논란 A병원 관계자 / 2020년 5월 14일 법률방송 보도]
"그런 일이 불가항력적으로 생긴 것에 대해서 최선의 응급처치를 하고 했단 말이에요. 하지만 안타깝게 사망을 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는 식의 병원을 향해 피해자나 가족이 뭘 더 어떻게 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실제 최근 5년간 1심 판결 기준 환자 측의 전부승소율은 단 1%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피해자들에게 의료소송의 벽은 높기만 합니다.

[이인재 변호사 /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대표]
"'아, 이게 환자가 의료사고로 병원 상대로 소송한다는 게 참 어렵다. 참 기울어진 운동장이다'라는 것을 많이 느꼈죠."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 서리풀홀에서 만난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대표 이인재 변호사.

의료소송 관련 산전수전 다 겪어봤지만 "의료소송은 정말 억울한 일이 많다"는 말로 이 변호사는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이인재 변호사 /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대표]
"억울한 사건들이 정말 많죠. 특히 산부인과 같은 경우는 분만과정에서 아기는 뇌성마비, 산모는 식물인간 되는 케이스도 있어요. 아기가 뇌성마비이고 산모가 식물인간 되면 그 남편 같은 경우는 어떤 심정이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기가 또 아주 힘든 게 의료소송입니다.

소송 결과는 억울함의 정도나 양이 아닌 제시되는 '증거'에 달렸고, 그 증거라는 것들은 사실상 전부 의사나 병원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인재 변호사 /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대표]
"아까 말했던 것처럼 기울어진 운동장이잖아요. 예를 들어서 수술방에서 사고가 났어요. 보호자 입장에서는 환자는 사망했는데 기록도 안 돼 있고 의사가 설명도 안 해주고 도대체 수술 중 뭐가 잘못됐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요."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은 의료사고와 소송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난 2008년 발족한 '국내 전문변호사 1호 단체'입니다.

이인재 변호사는 이 의변 발족에 산파 역할을 한 의변의 산 증인입니다.

[이인재 변호사 /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대표]
"'우리도 이런 거 한 번 해보자' 그렇게 해서 준비모임을 하게 됐던 것이고 처음에는 20명, 30명, 40명, 이렇게 2005년부터 2006년, 2007년 준비모임을 한두 차례씩 가지다가 2008년도에 제가 서상수 변호사님 찾아봬서 우리 대표를 맡아달라고 하고 아직은 제 경력에 대표를 하기는 그래서 그렇게 해서 시작이 됐던 것이죠."

현재는 250여명의 변호사가 의변에서 활동 중인데 이 변호사는 지난 2017년부터 5대, 6대 대표를 연이어 맡아 4년째 의변을 이끌어오고 있습니다.

[이인재 변호사 /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대표]
"지나고 나서 보면 사실상 많이 도망치고 싶었죠. 이게 의료(소송)이라는 게 이게 쉬운 일이 결코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리고 그 내용도 어렵고 품도 많이 들고 소위 말해서 인풋(Input) 대비 아웃풋(Output)이 안 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그 중대성에 비해 어떻게 보면 법률시장에서 가장 전문적이면서도 이른바 마이너 한 분야가 의료소송 분야라는 것이 이인재 변호사의 말입니다.

[이인재 변호사 /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대표]
"많은 사람들이 사실상 하려고 했다가도 막상 돈이 안 되니까 철수하는 게 본질이기 때문에 의사 출신들이 많이 왔지만 아무도 그 사람들이 '환자 베이스 의료소송'을 거의 안 하거든요. 그 이유는 뭐냐 하면 결국 돈이 안 되기 때문이거든요."

사법연수원 31기인 이인재 변호사는 연수원 동기 700명 가운데 성적이 상위 3% 안에 들었지만, 연수원 수료 이후 판검사가 아닌 의료전문 변호사의 길을 줄곧 걸어오고 있습니다.

이 변호사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데에는 연수원에 있을 당시 아내의 유산 등 개인적 경험과 1세대 의료전문 변호사인 신현호 변호사(법률사무소 해울)와의 만남 등 여러 상황과 인연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이인재 변호사 /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대표]
"연수원 2년차 때 전문기관 연수를 하는 곳이 있는데 그때 제가 선택한 곳이 대한의사협회였어요. 그래 전문화의 길을 가자, 그렇게 해서 남들은 로펌 가고 할 때 저는 전문화된 사무실로 취업을 하게 됐던 거죠. 그렇게 해서 신현호 변호사님하고 인연이 돼서..."

아련한 표정으로 개인사를 얘기하던 이인재 변호사가 의료사고 소송 얘기가 나오자 다시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앞서 언급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바로잡으려면 환자가 아닌 의사나 병원으로.

의료사고 과실 여부에 대한 입증책임 전환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인재 변호사 /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대표]
"기록이 안 돼 있는 상황에서 환자에게 거기(과실)까지 다 주장, 입증하도록 하는 것은 정말 어떻게 보면 완전 무장해제를 시킨 다음에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필패죠. 무조건 지는 것이죠. 그게 현실이에요. 이것을 이제 좀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입증책임 전환과 관련해 이 변호사는 구체적으로 독일식 '과실추정 조항'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이인재 변호사 /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대표]
"독일 같은 경우는요. 민법에 지배 가능한 위험이 현실화하면 의료과실은 추정된다는 명문 규정이 있어요, 민법에. 그러면 그런 상황이 되면 실질적으로 다 실무에서는 어떻게 되겠죠, 다 과실추정을 해버리는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독일에 있는 민법 조항이 우리는 사실은 도입돼야 한다..."

의료사고가 나면 무조건 병원 측 과실로 추정하자는 게 아니라 "피해자나 그 가족의 입증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에 한해 먼저 과실추정 원칙을 도입하자"는 것이 이 변호사의 설명입니다.

[이인재 변호사 /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대표]
"모든 사고를 다 과실추정을 해달라는 게 아니에요. 수술방이나 수술실, 중환자실, 시술실 등 밀실성이 전제된 곳에서 일어나는 의료사고에 대해서 진료기록의 그 경과에 대해서 왜 그런 악결과가 왔는지에 대한 기록이 안 돼 있는 경우에 한해서 과실추정을 하려는 것이거든요."

"의료인을 잠재적 범법자 취급하자는 것이 아니고 의사와 환자 사이 굳건한 신뢰 형성을 위해서도 과실 입증책임 전환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 이인재 변호사의 말입니다.

[이인재 변호사 /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대표]
"대신 의료인 입장에서는 (과실) 추정을 번복시킬 수 있도록 하면 돼요. 나는 이런 사고에서는 이러이러한 절차에 따라서 이러 이렇게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라는 것을 오히려 반증하게끔 해서 수정을 번복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게 이게 맞는 거예요, 사실은."

수술실 CCTV 설치 논란에 대해선 의료인들과 병원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고 말합니다.

의료사고는 차제하고 대리수술에 성추행 논란까지. 오죽하면 CCTV를 설치하자는 말까지 나왔는지 의료인들이 돌아볼 부분이 분명 있다는 겁니다. 

[이인재 변호사 /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대표]
"뭘 봐야 주장도 하고 입증도 할 수 있을 텐데 '아무것도 없는데 기록도 없고 설명도 안 해주면 우리가 무엇을 근거로 주장을 입증하냐' 그래서 결국 나온 게 수술실 CCTV란 말이죠. 사실 이 수술실 CCTV 설치 요구에 대해서 의료계가 사실은 할 말이 없어요. 그동안에 어떻게 보면..."

이인재 변호사는 그러면서 CCTV 설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거듭해서 과실추정 조항과 입증책임 전환을 강조합니다. 

관련해서 이 변호사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처럼 의료사고의 경우에도 민사적 합의를 강조하는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을 제안합니다.

[이인재 변호사 /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대표]
"제 개인적인 생각은 의료과실 추정된다는 조항을 넣고 그러면 의료계에도 뭔가 당근을 줘야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을 만들어서 합의가 되거나 보험이나 공제 가입돼 있는 경우에는 형사책임 특례를 주는 거예요. 우리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하고 똑같이 가는 것이죠."

이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의변은 지난해 11월 '의료법 주석서'라는 서적을 발간했습니다.

'의료전문 변호사 20년 외길' 이 변호사 개인의 경험과 의변 10년의 문제의식과 성과를 고스란히 집대성한 의료문제 관련 법률 전문서입니다.

[이인재 변호사 /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대표]
"우리가 사실 의변 10주년 기념사업으로 의료법 주석서를 출간했는데 여전히 지금도 진료기록부 열람복사 이런 거 하면 '그런 거 해주나요?' 이렇게 물어보는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당연히 법에 보장돼 있는 권리인데 그런 것처럼 의료법상에 있는 우리가 환자들이 설명을 들을 권리라든지 진료기록을 열람 복사할 권리라든지 이런 기본적인..."

의료사고 소송과 함께 이 변호사가 새롭게 천착하고 있는 문제는 '간병인' 문제입니다.

간병이 필요한 환자에 국가가 도움을 주는 것, 그래서 가족이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막아주는 것, 그것이 국가의 역할이라고 이 변호사는 강조합니다. 

[이인재 변호사 /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대표]
"우리가 교통사고든 산재사고든 의료사고든 사고를 당해서 내가 거동할 수 없는 상태가 됐을 때 누군가가 도움을 줘야 한단 말이죠. 사고를 당한 사람도 당한 사람이지만 가족이 같이 묶임으로써 가족의 삶도 같이 파괴가 되는 거예요. 이것을 어떻게 좀 위험을 분산시켜보자, 사회가 같이 떠안아 보자, 그래서..."

이달 말 4년 동안 맡아왔던 의변 대표직을 내려놓은 이인재 변호사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이인재 변호사 /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대표]
"제가 의변 대표를 물려주고 사실은 이쪽에 대해서 하고 싶은 것 시민과 함께하는 의료법 교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국민들 속으로 들어가서 의료법을 많이 같이 공부하고 알리는 이런 것들을 권리와 의무를 쉽게 끄집어내서 국민들에게 홍보해주는 이런 것들도 한번 해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저의 기본적인 생각은 억울한 사람은 없어야 하거든요, 사실은요."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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