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법철학자 스미요시 마사미 교수 '위험한 법철학' 출간
"법률-인간-사회의 이상적 관계는 무엇인지 의문을 가져야"

'법'이라는 이름 아래 의심없이 수용되고 있는 통념에 의문을 던지는 일본 법철학자 스미요시 마사미 교수의 '위험한 법철학'. /들녘 제공
'법'이라는 이름 아래 의심없이 수용되고 있는 통념에 의문을 던지는 일본 법철학자 스미요시 마사미 교수의 '위험한 법철학'. /들녘 제공

[법률방송뉴스] 일제 패망 얼마 후인 1947년, 도쿄지방법원의 한 젊은 판사가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야마구치 요시타다(山口良忠) 판사는 당시 34세였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는 쌀과 설탕 등 생필품을 국가가 지급하는 '식량관리법'을 실시했다. 하지만 전쟁 말엽부터 배급제는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다. 당장 먹거리가 없어진 일본 국민들은 실정법 위반을 무릅쓰고 암시장을 통해 식료품을 구해야 했다.

야마구치 판사는 터무니없이 적은 배급품으로만 연명하다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그는 사망 직전 "재판관인 나는 살기 위해서라도 법을 어길 수는 없다"는 취지의 메모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법과 원칙에 충실했던 법관의 전형으로 현재까지도 일본 법조계에서 칭송을 받는다.

하지만 '실정법 준수'를 하나의 신앙처럼 여겼던 야마구치 판사의 태도는 여러 의문을 동시에 던진다. 이러한 태도가 정말로 시민들에게 귀감이 되는 행동일까, 시대착오적 법률이나 명백한 악법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올바른 시민의 자세일까, 하는 의문이다.

일본의 법철학자 스미요시 마사미(住吉雅美·60) 아오야마가쿠인대학 법학부 교수는 저서 '위험한 법철학'(들녘 발행)에서 야마구치 판사를 예로 들면서,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별다른 의심없이 수용되고 있는 통념을 뒤집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스미요시 교수는 이 책에서 "법률은 왜 강제력을 갖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면서 현행 법 체계의 근본 원리와 그것을 지지하고 있는 인간사회의 습속을 하나하나 파헤친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서부터 롤즈, 노직, 드워킨에 이르기까지 오랜 철학적 담론을 거쳐 형성된 법률의 기원과 해석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자발적인 매춘은 해도 되는가 ▲복제(클론)인간은 제작해서는 안 되는가 ▲목숨을 파는 것은 개인의 자유인가 ▲국가는 꼭 필요한가 ▲평등은 과연 절대선인가 등 도발적인 질문을 통해 그동안 터부시돼 오던 상식의 '그림자'를 벗기려 한다. 

스미요시 교수는 담백하고도 유머러스한 필치로 법실증주의와 자연법 사상, 공리주의와 정의론 같은 딱딱한 주제를 친근하게 전달하면서 독자의 법철학 사이의 거리 좁히기를 시도한다. 그는 사고(思考)마저 외주화되고 있는 현상을 경계하면서 "인간에게는 의심하고 반항하는 능력이 있으며, 그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 법철학"이라고 강조한다. 

"법률은 사회에 질서를 가져다 주지만, 법률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인간의 힘을 쇠퇴시킬 가능성이 있으며, 법률과 인간-사회의 이상적 관계는 어디쯤 있는 것인지 사고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책 제목 '위험한 법철학'은 이런 그의 사상을 집약한 표현이다. 사회통념에 의심의 잣대를 들이대고, 새로운 각도에서 사유할 것을 권하는 행동을 '위험하다'고 규정하는 사회적 편견을 비꼰 셈이다. 법학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을 원하는 법학도뿐 아니라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도 '사유의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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